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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91화 — 테멘의 마지막 물길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91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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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테멘은 91번째 기록이 시작될 무렵부터 눈에 띄게 약해졌다.

기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걸음이 느려졌다.

말하다 숨을 고르는 일이 늘었다.

그런데 입은 그대로였다.

“거기 아니야.”

“그 돌 왜 옮겨.”

“그렇게 막으면 아래쪽 또 말라.”

젊은 물길 담당자들이 이제는 웃으면서 들었다.

예전에는 테멘이 말하면 그대로 따랐다.

이제는 반박도 했다.

“이번엔 다르게 해볼게요.”

테멘이 인상을 썼다.

“왜.”

“지난번 작은 구간에서 잘됐잖아요.”

그는 나를 봤다.

“네가 가르쳤냐.”

“아닌데.”

내가 일부러 그의 말을 흉내 냈다.

젊은 사람들이 웃었다.

테멘은 욕했다.

그날 오후 그는 나를 불렀다.

“강 위쪽 가자.”

“왜.”

“볼 거 있어.”

“당신 못 걸어.”

“누가.”

“내가 봤어.”

“네 눈이 문제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갔다.

다만 젊은 담당자 둘도 같이.

테멘은 예전처럼 빨리 걷지 못했다.

몇 번 쉬었다.

내가 부축하려 하면 손을 쳤다.

“넘어지면 잡아.”

“지금도 힘들잖아.”

“안 넘어졌잖아.”

사무와 똑같았다.

사람은 늙으면 다 비슷해지는 걸까,

아니면 내가 과보호를 하면 모두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걸까.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는 오래된 물길 하나에 도착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곳.

흙이 많이 쌓였고,

한쪽에는 풀까지 자랐다.

“여기 왜.”

내가 물었다.

테멘은 젊은 담당자들에게 말했다.

“파봐.”

둘은 흙을 조금 걷었다.

아래에서 오래된 돌 구조가 나왔다.

“이게 뭐예요.”

“옛날 둑.”

“왜 묻혔어요.”

테멘은 앉아서 숨을 골랐다.

“망해서.”

나는 웃었다.

“당신이 한 거?”

“내 아버지 세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 둑은 물을 더 많이 모으려고 만든 것이었다.

처음 몇 해는 좋았다.

그다음 큰물이 왔다.

물이 옆길을 파고,

아래 밭을 크게 망쳤다.

사람들은 둑을 부수고 다른 길을 냈다.

흙이 쌓이며 결국 묻혔다.

젊은 담당자 하나가 말했다.

“왜 기록 안 했어요.”

테멘이 웃었다.

“무슨 기록.”

“표식이라도.”

“그때는 내가 애였어.”

나는 묻힌 돌을 봤다.

48화의 내 실패와 너무 비슷했다.

“이걸 보여주려고 온 거야?”

테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면 기억하잖아.”

나는 화가 났다.

“말하면 되지.”

“말은 네가 자꾸 잊잖아.”

맞는 말이라 더 화가 났다.

테멘은 젊은 담당자들에게 돌 위치를 표시하게 했다.

새 물길 계획을 짤 때 건드리지 말 것.

큰비 뒤 땅이 내려앉는지 확인할 것.

그다음 다른 곳으로 갔다.

낮은 둔덕.

마른 수로.

오래된 집터.

테멘이 알고 있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하나씩 넘겼다.

나는 그걸 보며 깨달았다.

그는 물길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었다.

실패의 지도를 넘기고 있었다.

어디를 건드리면 안 되는지.

무슨 일이 반복됐는지.

젊은 사람들은 처음엔 지쳤다.

해가 낮아질 무렵에는 진지해졌다.

돌아오는 길 테멘이 정말 넘어졌다.

나는 바로 잡았다.

이번에는 손을 치지 않았다.

그가 내 팔에 기대었다.

몸이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기분이 나빴다.

“봤지.”

내가 말했다.

“뭘.”

“넘어졌잖아.”

“잡았잖아.”

테멘이 웃었다.

“그래서 같이 온 거지.”

마을 가까이 왔을 때 그는 말했다.

“너도 해야 돼.”

“뭘.”

“실패 넘기는 거.”

“내가 무슨.”

“성공 말고.”

그가 기침했다.

“사람들은 성공만 기억하려고 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가 오래 있으면.”

그가 말을 멈췄다.

나는 긴장했다.

“왜.”

“사람들이 네 성공을 더 많이 보겠지.”

그는 내가 얼마나 오래 사는지 몰랐다.

그냥 오래 역할을 맡는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실패도 남겨.”

나는 묻힌 둑을 다시 떠올렸다.

“알았어.”

테멘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멘이 멀리 나가지 않게 된 뒤 물길 담당자 둘이 처음으로 큰 결정을 맡았다.

강 한쪽이 계속 깎여 내려가 작은 둑을 옮겨야 했다.

두 사람 의견이 달랐다.

한 사람은 위쪽.

다른 사람은 아래쪽.

예전 같으면 테멘에게 바로 물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막았다.

“너희가 해.”

둘이 나를 봤다.

“그래도 테멘한테.”

“당신들이 앞으로 할 거잖아.”

그 말이 무거웠던 모양이다.

둘은 하루를 더 봤다.

흙을 만지고,

물속 돌 위치를 확인하고,

오래 산 농부들에게 물었다.

결국 중간쯤 위치로 정했다.

테멘은 나중에 결과만 들었다.

“어때.”

내가 물었다.

그가 말했다.

“망하면 알겠지.”

나는 화가 났다.

“좋다 나쁘다 말해줘.”

“내가 안 봤는데.”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그는 일부러 자기가 보지 않은 일에 권위를 쓰지 않았다.

나는 그 태도를 배워야 했다.

며칠 뒤 작은 비가 왔다.

새 둑은 버텼다.

젊은 담당자 둘이 테멘에게 찾아왔다.

“괜찮죠?”

테멘이 말했다.

“이번엔.”

나는 웃었다.

그 말까지 남아 있었다.

테멘은 자기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물건을 하나씩 넘겼다.

오래 쓴 막대.

특정 수로를 잴 때 쓰던 끈.

표식 판.

가족에게 주는 게 아니라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

“이건 당신 자식한테 안 줘?”

내가 물었다.

“쟤들이 이걸 왜 써.”

“기념으로.”

“기념은 알아서 해.”

테멘은 실용적이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칼 하나는 아들에게 줬다.

“그건 역할 아니야?”

“내 거야.”

구분이 명확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봤다.

공적 역할의 도구와 개인 물건.

내 펜던트와 약속지기 매듭끈.

앞으로 이 구분이 더 중요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멘은 어느 날 물길 담당자들에게 자기 집에서 식사를 먹였다.

나도 불렸다.

“왜 나까지.”

“네가 돈 내.”

“무슨 돈.”

“먹을 거 가져왔잖아.”

실제로 내가 가져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일 아닌 이야기를 했다.

젊은 담당자 하나가 어릴 때 테멘에게 혼난 일을 말했다.

다른 사람도.

테멘은 다 부정했다.

“난 그런 말 안 해.”

모두가 동시에 웃었다.

“했어요.”

나는 그 장면이 좋았다.

사람이 역할에서 내려오는 과정은 장례 직전에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 일을 맡고,

자기는 이야기 속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테멘은 그걸 비교적 잘했다.

나는 과연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날이 우리가 같이 긴 물길을 걸은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부터 그는 집 가까운 곳만 나왔다.

젊은 담당자들이 대신 멀리 갔다.

나는 처음으로 테멘이 없는 물길을 보기 시작했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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