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90화 — 한 해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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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끝나는 날에 특별한 천문 현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정한 시점.
큰 계절 순환이 한 번 지나고,
수확과 물길 일정이 다시 돌아오는 때.
나는 매듭끈을 풀었다.
세나가 줬던 것.
회의 소집.
합의 확인.
기록 전달.
긴급 연락.
그 역할을 뜻하는 매듭.
사람들이 모였다.
하렌.
테멘.
아렘.
경비 책임자.
벽 안과 밖 대표.
피난민 대표.
작은 마을.
새로 관심을 보인 큰 정착지의 사절까지.
나는 매듭끈을 가운데 놨다.
“끝.”
사람들이 웃었다.
아렘이 말했다.
“뭐가.”
“내 임기.”
“알아.”
“그럼 다음 사람.”
침묵.
나는 준비한 안을 말했다.
한 사람 대신 셋.
회의 진행.
기록.
긴급 연락.
서로 다른 사람이 맡는다.
각 공동체 대표들이 같이 확인.
사람들은 들었다.
질문이 나왔다.
“전쟁처럼 급하면.”
“긴급 연락 담당자가 모아.”
“합의 안 되면.”
“대표들이 정해.”
“그래도 안 되면.”
나는 대답했다.
“그때 다시 생각해.”
테멘이 웃었다.
“없어지네.”
내가 물었다.
“뭐가.”
“당신 자리.”
그 말이 좋았다.
정말로.
회의는 길었다.
결국 새 구조를 한 계절 동안 시험하기로 했다.
나는 약속지기에서 내려왔다.
아무도 절하지 않았다.
환호도 없었다.
세나가 매듭끈을 집었다.
“누구 줘.”
나는 세 명을 봤다.
“나눌 수 있나.”
세나는 매듭을 풀었다.
끈 하나가 세 개가 됐다.
조금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직위 자체가 분해되는 모습.
좋았다.
나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정말 아무 일도 안 했다.
강가에 갔다.
세나가 따라왔다.
“이제 바다 가?”
“당장?”
“그럼 언제.”
나는 웃었다.
“조금 준비하고.”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뭐가.”
“당신의 조금.”
우리는 물가에 앉았다.
나는 오랜만에 가벼웠다.
테멘이 멀리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그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첫 시험이 왔다.
큰 정착지 사절과의 협상.
새 세 사람 구조가 회의를 열었다.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사절이 거부했다.
“약속지기 없으면 안 하겠다.”
사람들이 설명했다.
직위가 나뉘었다고.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누구와 약속해.”
“셋과.”
“셋이 다 바뀔 수 있어?”
“응.”
사절은 불편해했다.
그의 공동체는 한 사람과 약속하는 방식에 익숙했다.
“그 젊은 사람 불러.”
결국 나를 찾으러 왔다.
나는 거절했다.
“내 자리 아니야.”
사절은 돌아갔다.
협상도 미뤄졌다.
아렘이 화냈다.
“큰 시장 놓치게 생겼어.”
“다음 사람들이 하면 돼.”
“저쪽이 싫다잖아.”
하렌도 난감해했다.
세나는 내 편이었다.
테멘은 아무 말도 안 했다.
며칠 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강 상류에서 물 사용 분쟁.
세 사람 구조가 결론을 못 냈다.
각 담당자가 자기 범위 밖이라고 했다.
대표들도 갈렸다.
사람들이 다시 나를 찾았다.
나는 안 갔다.
다음 날도.
셋째 날 물막이가 밤에 무너졌다.
사람 둘이 다쳤다.
그때 갔다.
화가 났다.
“왜 아무도 결정 안 해.”
아렘이 소리쳤다.
“당신 없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화가 났다.
“그래서 만들었잖아!”
“안 되잖아!”
정적.
나는 망가진 물길을 봤다.
사람들 얼굴.
새 구조가 실패한 건가.
아니면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건가.
시간을 더 줘야 하나.
문제는 물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테멘이 기침하다 말했다.
“한 명 필요할 때도 있어.”
나는 그를 봤다.
“당신이 해.”
“죽어.”
여전히 같은 답.
세나는 말했다.
“다시 맡아도 제한 유지해.”
나는 그녀를 봤다.
“또?”
“임시로.”
나는 웃었다.
“다들 임시 좋아하네.”
그날 밤 두 번째 제안이 나왔다.
이번에는 ‘한 해’도 아니었다.
새 구조가 자리 잡을 때까지.
끝이 더 모호했다.
나는 싫었다.
정말 싫었다.
그리고 이미 마음 한쪽에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음 날 매듭끈 세 개가 다시 내 앞에 놓였다.
세나는 말했다.
“묶을래?”
나는 오래 봤다.
“이번에는 쉽게 안 풀리게 하지 마.”
세나가 말했다.
“푸는 법은 남겨둘게.”
나는 세 끈을 하나로 묶었다.
완전히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매듭이 세 갈래였다.
회의.
기록.
긴급.
각각 다른 사람이 계속 확인하는 구조.
나는 다시 약속지기가 됐다.
사람들이 안도했다.
그 안도하는 얼굴이 좋았다.
그 사실이 가장 싫었다.
다시 약속지기를 맡은 첫날 나는 예전처럼 중앙 자리에 앉지 않았다.
세 갈래 매듭을 탁자 비슷한 돌 위에 놨다.
회의 진행 담당.
기록 담당.
긴급 연락 담당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 셋 위가 아니라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합의 안 될 때 조정.”
“외부가 한 사람을 요구할 때 대표.”
“비상시 연결.”
그 이상은 아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일부러 말했다.
“이 역할도 다시 나눌 방법 찾는다.”
아렘은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또 시험.”
세나는 웃었다.
테멘은 기침했다.
그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두 번째 임기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기간도 모호했다.
‘새 구조가 자리 잡을 때까지.’
끝을 정하지 않은 순간,
나는 처음보다 훨씬 위험한 자리에 들어섰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한을 더 만들었다.
공동 기록은 여러 곳.
공동 곡물은 복수 확인.
전쟁 결정은 대표들 동의.
경비 권한 기록.
내가 단독으로 바꿀 수 있는 규칙 최소화.
세나는 말했다.
“겁먹었네.”
“응.”
이제 나는 그 말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묶는 거야.”
“자기 자신을?”
“응.”
테멘이 말했다.
“끈으로 되겠냐.”
“당신이 있잖아.”
그가 웃었다.
“나 죽으면.”
나는 바로 화를 냈다.
테멘은 손을 들었다.
“알았어.”
하지만 그 질문은 피할 수 없었다.
테멘이 없어지면.
세나가 떠나면.
하렌이 늙으면.
새 사람들이 나를 처음부터 ‘약속지기’로만 알게 되면.
한 해짜리 역할은 세대 하나를 넘기지 않았는데도 벌써 관성이 생겼다.
나는 그 관성을 제도로 꺾으려고 했다.
동시에 관성이 주는 편리함을 사용했다.
외부 사절은 나를 찾았다.
내가 나가면 협상이 빨랐다.
사람들도 안심했다.
“약속지기가 왔다.”
그 말을 들으면 분위기가 정리됐다.
나는 그 효과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이용했다.
회의가 너무 시끄러우면 그냥 앉았다.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말하지 않아도.
그 힘이 좋았다.
인정해야 했다.
어느 날 세나가 말했다.
“당신 요즘 중앙 자리 다시 쓰네.”
“필요할 때만.”
“처음에도 그랬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 회의에는 다시 옆에 앉았다.
사람들이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리보다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권력은 돌이나 끈에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대 안에 있었다.
그 기대를 바꾸는 일은 규칙 몇 개보다 오래 걸릴 것이다.
◆줄리언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봤다.
새벽이었다.
회고록 안에서 아버지는 자신을 묶기 위해 규칙을 계속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줄리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이 사람은 왕이 된다.
제목부터.
다음 부의 구조부터.
금고 자료의 분류부터.
“그럼 어디서 실패했는데.”
줄리언이 혼잣말했다.
질문을 검색창에 넣을 수는 없었다.
대신 다음 파일 목록을 봤다.
91.
92.
93.
숫자가 이어졌다.
한쪽에는 현대 연구자의 답장도 와 있었다.
A-17 원본 일부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면 방문 연구가 가능하다는 내용.
스위스 보관소 접근 권한을 묻는 문장.
줄리언은 답장을 쓰려다 멈췄다.
보관소 권한은 자신에게 있는가.
가족사무소 문서를 열었다.
일부 열람권은 있었다.
원본 반출은 불가.
현장 열람 가능.
펜던트와 같은 A-17 계열.
줄리언은 처음으로 실제 이동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회고록 밖으로.
실물 기록 쪽으로.
그는 달력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닫았다.
먼저 더 읽자.
왕이 되기 전 어디서 선을 넘었는지.
그걸 알고 가고 싶었다.
91번째 기록을 열었다.
첫 문장은 테멘의 기침으로 시작했다.
◆줄리언은 90번째 기록을 읽고 화면을 닫았다.
아버지는 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한 번은 실제로 내려왔다.
그런데 돌아왔다.
줄리언은 문서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했다.
약속지기
여러 시대의 번역명과 주석이 나왔다.
아버지는 훗날 이 직위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여러 번 바꾼 흔적이 있었다.
중재자.
조정자.
연합 대표.
약속 관리자.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다고 적었다.
첨부파일 하나에는 연구자가 번역해준 고대 표식 비교표가 있었다.
줄리언은 아직 외부 연구자에게 보여주지 않은 자료였다.
같은 기호가 여러 층위 자료에서 반복됐다.
모양은 조금씩 달랐다.
설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후대 연구자는 동일한 ‘직위명’이 여러 세대에 걸쳐 계승된 것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그 아래 아버지 손글씨.
이해할 만한 해석이다.
한 줄 더.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 자리는 정말 여러 세대를 건넜다.
줄리언은 스크롤을 내렸다.
마지막 문장.
다만 처음 몇 세대 동안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줄리언은 손을 멈췄다.
드디어 회고록이 ‘한 인간의 수명’을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