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81화 — 약속지기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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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약속지기가 된 다음 날에도 해는 똑같이 떴다.
그 사실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왕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하늘이 색을 바꿔줄 만큼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평소처럼 물을 길었다.
정확히는 길으려고 했다.
문을 나서자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시장 상인.
둘째는 경비 책임자.
셋째는 하렌 쪽에서 온 연락자.
나는 물그릇을 든 채 그들을 봤다.
“왜.”
상인이 말했다.
“시장 지붕.”
경비 책임자는 말했다.
“야간 순번.”
연락자는 말했다.
“다음 공동회의 날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침부터?”
테멘이 멀리서 지나가다 말했다.
“약속지기잖아.”
나는 그에게 그릇을 던질 뻔했다.
첫 며칠 동안 가장 힘든 건 일이 많다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지금 당장 중요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시장 지붕도 중요했다.
경비 순번도.
강 건너 일정도.
누군가의 땅 경계도.
곡물 표식도.
나는 처음에는 오는 순서대로 처리했다.
곧 실패했다.
중요한 일과 먼저 온 일이 같지 않았다.
세나는 내 앞에 놓인 표식을 한참 보더니 말했다.
“순서부터 정해.”
“지금도 하고 있어.”
“아니. 오는 순서잖아.”
“그럼.”
그녀는 세 묶음으로 나눴다.
오늘 안 하면 사람 다칠 일.
며칠 안에 하면 되는 일.
다음 회의까지 기다려도 되는 일.
“이런 것까지 세?”
내가 물었다.
“안 세면 당신이 다 오늘 하잖아.”
맞았다.
나는 하루 안에 끝낼 수 없는 일을 하루 안에 끝내려고 했다.
사무와 이라가 살아 있을 때도 그랬다.
남이 천천히 하면 내가 대신했다.
이제 그 버릇이 공동체 전체를 상대로 나오고 있었다.
첫 주에 나는 밤마다 지쳤다.
몸은 지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머리가 지쳤다.
사람 말이 겹쳤다.
누가 어느 밭인지.
어느 표식이 언제였는지.
누가 누구 친척인지.
기억이 섞였다.
나는 기록을 늘리고 싶어 했다.
세나는 오히려 일부를 버리라고 했다.
“왜.”
“필요 없는 것까지 들고 있잖아.”
“나중에 필요할 수도.”
“그 말 제일 위험해.”
그녀는 필요한 기록과 참고 기록을 나눴다.
합의.
공동부담.
경비 사건.
물길.
나머지는 담당자에게.
모든 정보가 나한테 모이지 않게.
80화에서 세나가 했던 말.
다른 사람도 보게 해.
이번에는 한 걸음 더 갔다.
“당신도 다 보지 마.”
나는 기분이 나빴다.
“왜.”
“보면 끼어들잖아.”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날 처음으로 담당자가 내게 보고하려 하자 말했다.
“그건 당신 쪽에서 끝났으면 됐어.”
상대가 당황했다.
“안 보세요?”
“응.”
“진짜?”
“응.”
그는 어색하게 돌아갔다.
나는 바로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었는지.
참았다.
저녁이 되자 세나가 물었다.
“어땠어.”
“뭐가.”
“모르고 있는 거.”
“싫어.”
“좋네.”
“뭐가 좋아.”
“연습해야지.”
약속지기의 첫 공부는 결정하는 법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알지 않는 법이었다.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약속지기 역할을 맡고 처음 며칠은 사람들의 태도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문 앞에 와서 바로 말했다.
이제는 멈칫했다.
“지금 말해도 돼요?”
나는 그게 더 불편했다.
“왜 안 돼.”
“바쁘다면서.”
“말해.”
사람은 직위 하나 생기면 상대 시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내 시간도 전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가 늘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 하나가 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왜.”
“엄마가 방해하지 말랬어.”
“뭐 때문에 왔는데.”
“공이 지붕에 올라갔어.”
나는 한참 봤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그걸 왜 나한테.”
“잘 올라가잖아.”
나는 웃었다.
지붕에 올라 공을 내려줬다.
아이 어머니가 달려와 죄송하다고 했다.
“왜.”
“약속지기한테 이런 걸.”
그 말이 싫었다.
“이런 게 뭐.”
나는 일부러 그날 시장에서 짐도 조금 날랐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봤다.
아렘은 말했다.
“이제 일 분배하라니까.”
“이것도 일.”
“당신이 할 필요 없는 일.”
“왜.”
“당신 시간 비싸졌어.”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 시간에 값이 다르다는 생각.
현실적으로는 맞을 수 있었다.
내가 회의 중이면 자루 하나 옮기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기다린다.
그래도 싫었다.
나는 일부러 자루를 끝까지 옮겼다.
아렘은 고개를 저었다.
며칠 뒤 정말 문제가 생겼다.
내가 시장에서 일을 돕는 동안 하렌 쪽 연락자가 기다렸다.
중요한 물 협상 일정이 늦어졌다.
아렘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봤다.
나는 인정했다.
“알아.”
그날 처음으로 내 시간을 분배하는 일도 공동체 문제라는 걸 느꼈다.
이후 아침 일정 일부를 세나와 같이 정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하루인데.”
“그럼 혼자 다 하든가.”
나는 바로 조용해졌다.
세나는 시간을 칼같이 나누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어 있는 구간을 남겼다.
“이건 뭐.”
“아무것도.”
“왜.”
“일 생기니까.”
“안 생기면.”
“쉬어.”
나는 그 빈칸을 다른 일로 채우고 싶었다.
몇 번 채웠다.
세나가 지웠다.
“왜 지워.”
“쉬는 것도 일정이야.”
테멘이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드디어 누가 얘 좀 잡네.”
나는 둘 다 싫었다.
그래도 빈 시간이 생겼다.
처음엔 불안했다.
뭘 놓친 것 같았다.
그 시간에 강가를 걷거나,
아이들 노는 걸 봤다.
어느 날은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해가 움직이는 걸 봤다.
그날 저녁 머리가 덜 아팠다.
세나가 말했다.
“봐.”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주에도 빈칸은 남겼다.
권력을 맡으면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남의 문제가 자기 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는 걸 그때 배웠다.
그리고 자기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모든 시간을 직위가 먹는다.
며칠 지나자 사람들은 내 문 앞이 아니라 아예 정해진 시간에 오기 시작했다.
세나가 만든 방식이었다.
“아무 때나 오지 마.”
사람들은 처음엔 불편해했다.
“급하면?”
“급한 건 바로.”
“급한 게 뭔데.”
또 정의.
세나는 나를 봤다.
“당신이 정해.”
나는 웃었다.
결국 사람 목숨,
불,
큰물,
공격,
그 정도만 즉시.
나머지는 기다린다.
기다림 자체가 제도가 됐다.
놀랍게도 많은 문제는 기다리는 동안 사라졌다.
가족끼리 화해하거나,
담당자끼리 해결하거나,
애초에 그렇게 큰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나는 그걸 보며 씁쓸했다.
내가 즉시 대답해주던 시절에는 그런 자가 해결 기회를 내가 빼앗았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정해진 시간이 아닌데 왔다.
“급해.”
“뭔데.”
“이웃이 내 염소 가져갔어.”
나는 그를 보냈다.
“기다려.”
그는 화냈다.
몇 시간 뒤 다시 왔다.
염소가 자기 발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웃었다.
남자도 민망해했다.
테멘은 말했다.
“좋은 제도네. 염소가 해결하네.”
나는 웃었다.
이런 사소한 사건들이 내 역할을 조금씩 바꿨다.
답을 주는 사람에서,
답을 언제 줄지 정하는 사람.
그것도 권력이었다.
세나는 말했다.
“시간 배분이 제일 큰 권한일 때 많아.”
“왜.”
“누구 문제 먼저 듣는지 정하잖아.”
그 말을 듣고 더 조심했다.
부유한 상인이라고 먼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먼저.
경비라고 먼저.
그런 순서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완벽하지 않았다.
아렘은 시장 문제가 중요하다고 계속 밀어붙였다.
테멘은 물.
세나는 기록.
사람마다 자기 급함이 있었다.
약속지기의 일은 급한 사람 목소리 크기에 휩쓸리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 아침 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없으면 조금 기뻤다.
그리고 조금 허전했다.
두 감정 모두 여전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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