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80화 — 한 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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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나는 중앙 공간에 갔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모여 있었다.
공동 모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까지.
소문이 이미 퍼졌다.
“뭐라고 부를 건데.”
아렘이 물었다.
나는 그게 첫 질문이라는 게 싫었다.
“아직 안 받았어.”
“받을 거잖아.”
“왜 다 정해.”
테멘이 말했다.
“얼굴.”
나는 욕했다.
역할 이름을 놓고 또 싸웠다.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은 너무 넓었다.
나는 절대 싫다고 했다.
하렌 쪽 사람은 ‘약속을 확인하는 사람’ 비슷한 표현을 제안했다.
세나는 ‘회의를 묶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테멘은 “말 많은 놈”이면 된다고 했다.
결국 지금의 언어로 옮기면 ‘약속지기’에 가까운 칭호가 남았다.
정확한 고대 소리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추정]
뜻은 중요했다.
왕이 아니다.
주인도 아니다.
각 공동체가 합의한 것을 확인하고 이어주는 사람.
나는 사람들 앞에서 범위를 다시 말했다.
“내가 혼자 전쟁 못 정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곡물도 마음대로 못 써.”
“알아.”
“사람 처벌도.”
“알아.”
“물도.”
테멘이 말했다.
“그건 원래 내 거.”
사람들이 웃었다.
“한 계절 순환 끝나면 다시 정해.”
하렌이 말했다.
“알아.”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진짜 왜 나야.”
잠깐 조용했다.
작은 마을 대표가 말했다.
“다 아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뭘.”
“사람들.”
나는 부정하려 했다.
모든 이름도 기억 못 했다.
그는 계속했다.
“하렌 쪽도 알고, 우리도 알고, 시장도, 물도, 경비도.”
세나가 덧붙였다.
“그리고 모르면 물어.”
그 말이 의외였다.
테멘은 말했다.
“틀리면 고치고.”
아렘은 말했다.
“귀찮게 기록하고.”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그들이 나를 믿는 이유가 ‘항상 맞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안도됐다.
그리고 부담스러웠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해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환호하려 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런 거 하지 마.”
더 크게 웃음이 났다.
그날 나는 왕이 되지 않았다.
왕관도 없었다.
무릎 꿇는 사람도.
내 집도 이전과 같았다.
저녁에는 직접 물을 길었다.
세나가 보고 물었다.
“약속지기가 물도 들어?”
“왜 안 들어.”
“그냥.”
“무슨 말 하려는 건데.”
“없어.”
그녀는 웃었다.
그날 첫 공식 일은 아주 사소했다.
하렌 쪽과 작은 마을 사람이 다음 회의 날짜를 다르게 알고 있었다.
나는 세 사람을 불러 확인했다.
표식을 다시 맞췄다.
끝.
아렘이 말했다.
“위대한 첫 업무네.”
나는 돌을 던질 뻔했다.
약속지기 역할을 받은 뒤 가장 먼저 바꾼 것은 내 자리가 아니라 기록 보관 방식이었다.
세나 말대로 같은 내용을 여러 곳에 두었다.
우리 정착지.
하렌 쪽.
작은 마을.
모두 똑같은 표식과 합의 요약을 가지게.
완전히 같은 복제는 어려웠다.
사람 손으로 다시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서로 비교하는 날도 정했다.
“왜 이렇게까지.”
아렘이 물었다.
“한쪽이 바꾸면.”
“누가 바꿔.”
“사람.”
테멘이 웃었다.
“이제 사람 못 믿네.”
“그래서 여러 사람 믿는 거야.”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원칙이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기억보다 여러 기록.
한 장소보다 여러 장소.
한 권한보다 여러 확인.
훗날 내 왕권이 커질수록 이 원칙이 자꾸 깨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 가장 좋은 단일 기록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왕이 기억하니 됐다.’
그 말이 나중에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이때는 몰랐다.
약속지기가 된 뒤 사람들은 나를 더 공손하게 대하려 했다.
특히 외지인.
한 상인이 허리를 너무 깊게 숙였다.
나는 불편했다.
“그러지 마.”
그가 당황했다.
“왜.”
“그냥 말해.”
사람들은 웃었다.
하지만 며칠 뒤 또 다른 상인이 똑같이 했다.
형식은 한 번 생기면 복제됐다.
나는 일부러 시장에서 평소처럼 물건을 날랐다.
아렘이 말했다.
“이제 그런 거 안 해도 되잖아.”
“왜.”
“사람 쓰면.”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손 멀쩡해.”
“그러다 회의 늦어.”
실용적인 반론.
나는 결국 자루를 내려놓고 회의에 갔다.
그 순간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다.
내가 직접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하고,
나는 결정하는 자리에 더 오래 앉았다.
시간 배분이 권력을 만들었다.
몸이 강해도 행정이 많아지면 칼과 삽보다 말을 더 쓰게 된다.
세나는 그 변화를 봤다.
“손 부드러워지겠네.”
“안 돼.”
“왜.”
나는 내 손을 봤다.
굳은살.
아버지 손보다 훨씬 젊지만 일한 흔적은 있었다.
그걸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며칠에 한 번은 현장 일을 했다.
사람들은 보여주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맞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도 증명하고 싶었다.
아직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 해만.
그 말을 자주 했다.
누가 장기 계획을 말하면.
“그건 다음 사람도 할 수 있어.”
“한 해 뒤 다시 정해.”
테멘은 들을 때마다 웃었다.
나는 매번 화냈다.
세나는 어느 날 물었다.
“만약 다음 사람이 망치면.”
“그 사람이 고치겠지.”
“못 하면.”
“사람들이 바꾸고.”
“당신한테 다시 해달라면.”
나는 대답했다.
“그때 생각해.”
세나가 웃었다.
“벌써 ‘안 한다’에서 바뀌었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날 밤 펜던트를 만졌다.
네라에게 약속했던 것.
어디 가든 처음부터 신 같은 거 하지 마.
나는 신이 아니었다.
왕도.
그냥 한 해짜리 약속지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네라가 들었다면 물었을 것이다.
한 해가 당신한테 얼마나 긴데?
나는 그 질문에 아직 답할 수 없었다.
며칠 지나 역할이 익숙해졌다.
회의를 시작할 때 사람들은 내 말을 기다렸다.
나는 발언 순서를 정했다.
합의된 내용을 반복했다.
누가 기록을 가져갈지 확인했다.
생각보다 행정적이었다.
권력이라는 느낌보다 잡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방심했다.
어느 날 긴급 신호가 왔다.
강길에서 작은 무장 무리가 보였다는 말.
사람들이 나를 찾았다.
“약속지기.”
처음으로 칭호가 다급하게 들렸다.
나는 각 공동체 사람을 불렀다.
하렌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정찰 정보를 확인했다.
결국 위협은 아니었다.
다른 곳으로 가는 무리.
사람들이 흩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기록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회의.
경비.
물.
시장.
하나씩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정보가 한 번 내게 모였다.
그게 힘이었다.
명령권보다 먼저 생기는 힘.
누가 무엇을 알고,
누가 누구와 싸우고,
어디에 곡물이 있고,
경비가 몇 명이고,
강 건너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점점 많이 알았다.
세나는 그날 내 기록을 보더니 말했다.
“이거 위험하네.”
“뭐가.”
“당신이 다 보잖아.”
“일이라서.”
“그래.”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니까 위험하다고.”
나는 펜을—정확히는 당시 쓰던 기록 도구를—내려놨다.
“그럼 어떡해.”
세나는 말했다.
“다른 사람도 보게 해.”
단순했다.
다음 회의부터 기록 일부를 각 공동체에도 똑같이 남기기로 했다.
내가 가진 정보가 나만의 것이 되지 않게.
나는 그 결정을 좋아했다.
적어도 그때는.
한 해가 끝나면 이 역할을 내려놓을 생각이었다.
정말로.
[기억]
당시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사람이 첫 번째 임시직을 받아들일 때,
그 자리에 이백 년 가까이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물론 아직 거기까지는 멀었다.
그날 밤 세나가 내게 물었다.
“한 해 뒤 진짜 그만둘 거야?”
나는 바로 말했다.
“응.”
테멘이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
“왜.”
내가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아닌데.”
나는 그를 노려봤다.
세나는 웃었다.
불빛이 흔들렸다.
그날의 나는 아직 인간들 가운데 앉아 있었다.
누구도 내게 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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