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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79화 — 첫 번째 제안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79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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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모임이 몇 번 반복된 뒤 하렌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계속 이렇게 할 거면 사람 하나 정하자.”

나는 물었다.

“뭘.”

“회의 시작하고 끝내는 사람.”

테멘이 나를 봤다.

나는 모른 척했다.

하렌은 계속했다.

“누가 문제 순서 정하고, 합의됐는지 확인하고, 다음에 뭘 할지 남기고.”

세나가 말했다.

“좋네.”

나는 싫은 예감이 들었다.

작은 마을 대표가 바로 나를 가리켰다.

“저 사람.”

나는 말했다.

“싫어.”

모두가 웃었다.

“왜.”

하렌이 물었다.

“이미 하고 있잖아.”

“그래서 더.”

“그러면 다른 사람.”

나는 테멘을 가리켰다.

테멘은 바로 말했다.

“죽어.”

아렘.

“시장 봐야 해.”

세나.

“난 계속 여기 있을지 아직 안 정했어.”

경비 책임자.

모두 고개를 저었다.

결국 시선이 다시 나에게 왔다.

“왜 꼭 한 명이야.”

내가 물었다.

세나는 말했다.

“기록 책임이 흩어져서.”

“같이 하면 되잖아.”

“지금도 같이 해.”

“그럼 문제 없네.”

하렌이 웃었다.

“회의 끝날 때 누가 마지막에 ‘이렇게 됐다’고 말하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부분 나였다.

‘한 해’라는 제한을 내가 먼저 말한 이유는 단순했다.

끝이 필요했다.

역할을 받는 순간부터 내려놓을 날짜를 정하고 싶었다.

네라가 살아 있을 때 떠날 준비를 미루다 계속 남았던 기억.

사무와 이라 때문에.

가족 때문에.

여기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았다.

세나는 말했다.

“한 해 뒤 아무 문제 없으면.”

“그만둬.”

“문제 있으면.”

나는 답을 못 했다.

그녀가 웃었다.

“벌써 조건 붙네.”

“아니.”

“거짓말.”

테멘은 더 직설적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하라면 할 거잖아.”

“안 해.”

“아닌데.”

나는 화냈다.

그날 밤 하렌과도 이야기했다.

“당신은 왜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해.”

하렌은 잠깐 생각했다.

“당신이 우리 편이 아니어서.”

의외였다.

“무슨 뜻.”

“완전히 우리 편도, 완전히 저쪽 편도 아니잖아.”

“나는 여기 사는데.”

“태어난 건 아니지.”

그는 내 외지인 출신이 오히려 중재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작은 마을 대표는 반대로 말했다.

“이제는 여기 사람이니까.”

서로 반대 이유로 나를 고르고 있었다.

세나는 기록을 잘 이어가기 때문.

테멘은 내가 실제로 이미 하고 있기 때문.

아렘은 거래 상대가 나를 알기 때문.

경비는 전투 때 명령을 들었기 때문.

사람마다 이유가 달랐다.

그게 오히려 위험하다고 느꼈다.

각자가 자기 필요에 맞는 ‘나’를 만들고 있었다.

훗날 신격화도 비슷했다.

농부가 보는 왕.

병사가 보는 왕.

사제가 보는 왕.

상인이 보는 왕.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역할 범위를 문장마다 다시 확인했다.

“이거 넘어가면 안 해.”

세나는 말했다.

“그럼 적어.”

우리는 역할 자체도 기록했다.

할 수 있는 것.

못 하는 것.

기간.

다음에 다시 정한다는 조건.

내 권한을 적는 동시에 제한도 적었다.

그때의 나는 제한이 오래 남을 거라고 믿었다.

역할이 커질수록 제한 문장보다 현실이 빨리 커질 수 있다는 걸 아직 몰랐다.

제안은 ‘왕’이 아니었다.

명령권도 아니었다.

군대를 혼자 움직일 권한도.

세금을 마음대로 걷는 권한도.

그저 공동 모임의 진행과 합의 확인.

지금 생각하면 작아 보인다.

당시에는 아주 컸다.

공식적으로 역할을 받아들이는 첫 순간이니까.

나는 거절했다.

“돌아가면서 해.”

그렇게 정했다.

첫 회의는 하렌.

두 번째는 우리 쪽 아렘.

세 번째는 작은 마을 대표.

결과는 흥미로웠다.

하렌은 물 문제에 너무 오래 시간을 썼다.

아렘은 시장과 곡물.

작은 마을 대표는 큰 공동체 앞에서 말을 잘 못 했다.

회의가 매번 달랐다.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합의 기록 방식이 들쭉날쭉했다.

세나는 짜증냈다.

“형식 하나만 맞춰.”

“그럼 당신이 해.”

내가 말했다.

“싫어.”

“왜.”

“나는 내용에 끼어들잖아.”

“나도.”

세나는 나를 봤다.

“당신은 이미 다 끼어들어.”

다시 제안이 나왔다.

이번에는 역할의 범위를 더 좁혔다.

회의 시작.

발언 순서.

합의 확인.

기록 보관.

긴급 상황에서는 각 공동체 대표를 빠르게 모으는 것.

그 이상은 안 됨.

단독 처벌권 없음.

단독 전쟁 결정 없음.

공동 곡물 사용도 혼자 못 함.

나는 듣고 있었다.

테멘이 말했다.

“받아.”

나는 그를 봤다.

“왜.”

“안 받으면 몰래 하잖아.”

사람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 말은 정확했다.

공식 권한은 없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계속 마지막에 정리하는 것.

오히려 더 애매했다.

세나는 말했다.

“범위 적어두면 덜 커져.”

“진짜?”

그녀가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 알았다.

역할은 시간이 지나면 커질 수 있다.

다음 날 답을 주겠다고 한 뒤 나는 혼자 기록을 다시 읽었다.

내가 지난 몇 해 동안 한 일.

물길.

창고.

경비.

벽.

판단.

강 건너 합의.

공동 순찰.

피난민.

공동부담.

작은 마을.

이미 역할은 있었다.

이름만 없었다.

그 사실이 가장 불편했다.

공식 직위를 거부하면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책임은 지면서 제한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세나는 그걸 지적했다.

“지금이 더 위험해.”

“왜.”

“사람들은 당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모르잖아.”

“나도 모르고.”

“그러니까.”

권한 범위를 적는 것은 나를 키우는 동시에 묶는 일이었다.

테멘은 다른 이유로 받으라고 했다.

“그만둘 때도 이름 있어야 그만두지.”

나는 그 말을 듣고 멈췄다.

역할 이름이 없으면 후임도 없다.

그냥 ‘나’가 하던 일이 된다.

내가 없어지면 공백.

이름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있다.

그 논리는 강했다.

“그럼 이름이 사람보다 오래 가는 거네.”

내가 말했다.

테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낫지.”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왕 이름이 아니라 역할 이름.

한 사람이 아니라 자리.

그래서 수락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날 밤 세나가 작은 끈 하나를 가져왔다.

매듭이 몇 개 있었다.

“뭐야.”

“회의 순서.”

각 매듭은 역할 범위를 뜻했다.

공동회의 소집.

합의 확인.

기록 전달.

긴급 연락.

그 이상 없음.

“왜 이걸.”

“말로만 하면 또 늘리잖아.”

나는 웃었다.

“당신 진짜 못 믿네.”

“사람을 믿으니까 매듭 만드는 거야.”

그녀는 손목에 감아봤다.

“직위 맡는 동안 가지고 있어.”

“왕 장식 같잖아.”

세나가 바로 말했다.

“그러면 안 줘.”

나는 빼앗듯 받았다.

“그 정도는 괜찮아.”

그녀가 웃었다.

그 매듭끈은 왕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줄.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임기가 끝나면 다음 사람에게 넘길 수 있는 물건.

내 것이 아니라 자리의 것.

나는 펜던트와 나란히 두고 봤다.

하나는 네라가 준 개인의 기억.

하나는 아직 받지도 않은 공적인 역할.

두 물건은 아주 달랐다.

그 차이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얼마 동안.”

내가 물었다.

사람들이 서로 봤다.

임기라는 생각을 아무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한 해.”

정확한 달력 연도는 아니었다.

한 번의 큰 계절 순환.

그 정도.

“그 뒤 다시 정해.”

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멘도.

세나는 말했다.

“좋아.”

나는 그 순간 바로 수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 답하겠다고 했다.

밤에 잠이 안 왔다.

직책 이름도 아직 없었다.

그런데 몸은 이미 무거웠다.

푸른 펜던트를 손에 쥐었다.

네라가 뭐라고 했을까.

‘또 잘난 척하네.’

아마.

이번에는 그 상상이 조금 웃겼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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