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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70화 — 왕은 아직 없었다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70 / 370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싸움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시작됐다.

상대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적었다.

하지만 공격에 익숙했다.

벽 낮은 곳을 바로 찾았다.

불을 던졌다.

경비가 소리쳤다.

신호가 이어졌다.

사람들이 자기 위치로 움직였다.

51~60화 동안 만든 모든 귀찮은 규칙이 그날 실제로 작동했다.

누가 물을 나르는지.

누가 아이를 안쪽으로 보내는지.

누가 창고를 지키는지.

누가 벽 쪽으로 가는지.

내가 하나씩 지시하지 않아도.

그게 좋았다.

그리고 바로 문제가 생겼다.

벽 한쪽에서 사람들이 밀렸다.

경비 책임자가 나를 봤다.

나는 칼을 뽑았다.

밖으로 나갈지 안에서 버틸지 순간 고민했다.

밖은 위험했다.

하지만 상대 시선이 한곳으로 모이면 안쪽 경비가 움직일 공간이 생길 수 있었다.

나는 몇 명과 같이 나갔다.

혼자는 아니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훗날 사람들이 이 싸움을 이상하게 크게 이야기한 기록도 있었다.

내가 혼자 수십 명을 막았다는 식.

[기록]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강했고,

싸움 경험도 많아지고 있었지만,

그날 살아남은 건 조직과 숫자와 벽과 다른 사람들 덕분이었다.

첫 사람의 창을 옆으로 흘렸다.

손목을 잡아 당겼다.

뒤에서 우리 경비가 밀었다.

두 번째가 칼을 휘둘렀다.

막았다.

손목이 울렸다.

세 번째는 피하지 못했다.

어깨가 찢어졌다.

통증.

그래도 움직였다.

상처가 빨리 낫는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을 넘어뜨렸다.

죽였는지는 기억이 흐리다.

다른 경비가 옆에서 창을 찔렀다.

밖으로 나온 목적은 오래 싸우는 게 아니었다.

상대를 벽 한쪽으로 끌어당기는 것.

안쪽에서 경비 책임자가 신호를 냈다.

옆 통로가 열렸다.

우리 사람들이 측면으로 나왔다.

공격자들이 흔들렸다.

피난민 출신 젊은이들도 싸웠다.

그들은 자기 가족이 있는 곳을 지켰다.

강 건너 쪽에서 먼지가 보였다.

처음에는 또 적인 줄 알았다.

하렌 쪽 사람들이었다.

66화 합의 이후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싸움 소리를 듣고 온 것.

그들의 목적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격 무리가 커지면 다음은 자기들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왔다.

전투는 길지 않았다.

공격자들은 물러났다.

우리 경비 몇 명이 쫓아가려 했다.

“멈춰!”

내가 소리쳤다.

경비 책임자가 나를 봤다.

“도망가잖아.”

“가게 둬.”

“다시 오면.”

“그때 막아.”

그는 불만이었다.

그래도 멈췄다.

그 순간 내 명령이 먹힌 이유가 무서웠다.

싸움 직후.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다.

내가 “쫓아”라고 했으면 갔을 것이다.

몇 명은 죽었을 수도.

나는 칼을 내려다봤다.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몰랐다.

해가 높아질 무렵 피해를 확인했다.

우리 쪽 사망자는 있었다.

두 명.

한 명은 벽 위에서 맞았다.

한 명은 밖에서.

부상자는 더 많았다.

나는 그 얼굴을 봤다.

승리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죽은 사람 가족 앞에서 승리는 너무 가벼웠다.

상대 쪽도 시신 몇을 남기고 갔다.

이번에도 묻었다.

피난민 대표가 울었다.

죽은 우리 사람 중 하나가 처음 자신들을 받아주자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세나는 부상자 수를 셌다.

아렘은 곡물과 벽 피해를 확인했다.

테멘은 물길이 불 때문에 막힌 곳을 봤다.

모두 자기 일을 했다.

나는 어깨 상처를 천으로 묶었다.

세나가 내 옆에 왔다.

“깊어.”

“괜찮아.”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들이 당신 그 말 싫어할 것 같은데.”

네라가 떠올랐다.

나는 웃었다.

“맞아.”

세나는 상처를 다시 봤다.

“지난번 칼 맞은 것도 빨리 나았다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전투가 끝난 뒤 하렌과 둘이 잠깐 이야기했다.

“당신네 사람 왜 왔어.”

내가 물었다.

“도와줬는데 첫 말이 그거야?”

“고맙다는 말도 할 거야.”

하렌이 웃었다.

“우리 다음일 수도 있으니까.”

예상한 답.

“그리고.”

그가 덧붙였다.

“약속했잖아.”

“물 약속.”

“강 건너 사람 죽으면 물 약속도 없어져.”

그 말이 현실적이었다.

합의는 종이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관계가 살아 있어야 했다.

하렌은 죽은 우리 사람 장례에도 남았다.

강 건너 사람 몇도.

몇 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웠다.

세나는 부상자와 손실을 세었다.

그녀는 죽은 사람 이름도 적으려 했다.

“왜.”

내가 물었다.

“수만 적으면 사람 없어지잖아.”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죽은 두 사람 이름을 따로 남겼다.

공동체 기록 비슷한 것에.

아주 짧게.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 가족인지.

그 기록이 실제로 얼마나 오래 남았는지는 모른다.

[모름]

하지만 그때에는 중요했다.

전투 다음 날 내 어깨 상처는 이미 조금 닫히기 시작했다.

세나가 다시 봤다.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이상한데.”

“뭐가.”

“어제 이 정도 아니었어.”

“잘못 봤겠지.”

“나 숫자 세는 사람인데 눈도 세.”

“눈을 어떻게 세.”

“말 돌리지 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나는 내 얼굴을 오래 봤다.

“몇 살이야.”

질문이 왔다.

나는 웃으려 했다.

“왜 갑자기.”

“그냥.”

“몰라.”

“사람이 자기 나이를 몰라?”

“나는 몰라.”

세나는 내가 농담하는지 살폈다.

더 묻지 않았다.

“언젠가 말해.”

그녀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언젠가’가 오게 될지 나도 몰랐다.

장례가 끝난 뒤 사람들이 다시 일을 시작했다.

벽 수리.

가축.

곡물.

불탄 집.

전쟁은 하루였고,

복구는 훨씬 길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영웅적인 순간보다 생활이 더 길다는 사실.

저녁에 한 아이가 내 칭호를 불렀다.

이번에는 장난이었다.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 여기 돌!”

나는 돌을 옮겼다.

테멘이 말했다.

“칭호 좋네. 돌도 나르라고 하고.”

나는 웃었다.

그날은 그 말이 덜 무거웠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칭호는 계속 굳었다.

누군가는 존경으로.

누군가는 편의로.

누군가는 두려움으로.

나는 아직 거부했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줄리언에게 연구자의 답장이 온 것은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회고록 70번째 기록을 거의 다 읽은 뒤였다.

제목은 짧았다.

Re: River settlement sketch

줄리언은 바로 열었다.

연구자는 조심스러웠다.

첨부된 손그림만으로 특정 유적이나 지역을 식별할 수 없다고 했다.

강의 굽이와 옛 수로는 수천 년 동안 너무 많이 변했다.

그 정도는 예상했다.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자료 작성자가 상정한 환경은 후기 선사~초기 국가 형성기 나일계 정착지에 대한 현대적 고증과 크게 충돌하지는 않습니다.

줄리언은 다시 읽었다.

충돌하지 않는다.

맞다는 뜻이 아니었다.

연구자도 바로 그렇게 적었다.

이것만으로 고대 자료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 연구를 참고해 재구성한 문서일 가능성도 동일하게 열려 있습니다.

줄리언은 웃었다.

아버지가 좋아할 문장이었다.

단서 하나.

의심 하나.

이어지는 내용은 더 흥미로웠다.

그림 가장자리의 물 분배 표식 비슷한 부분.

연구자는 그것을 실제 고대 문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너무 개인적이고 체계가 불명확했다.

오히려 기억·수량·구역을 표시하는 개인 메모나 후대 재구성 표기처럼 보인다는 의견.

회고록 내용과 묘하게 맞았다.

주인공은 완성된 문자를 썼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표식과 그림과 기억을 섞었다고 했다.

줄리언은 화면을 내려갔다.

마지막 문장.

원본 재료, 필기층, 안료/매체가 있다면 훨씬 많은 판단이 가능합니다. 이미지 출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줄리언은 답장을 쓰지 못했다.

원본.

아버지 보관실 어딘가에 있을까.

그는 회고록 검색창에 초기 기록,

물길,

합의,

표식 같은 단어를 넣었다.

몇 개의 첨부 번호가 나왔다.

그중 하나.

A-17 연계 보관자료.

또 A-17.

푸른 펜던트 수기장부와 같은 분류.

줄리언은 의자에서 몸을 세웠다.

스위스 보관소.

그는 몇 초 동안 바로 연락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멈췄다.

아버지가 순서를 만든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도 먼저 읽기로 했다.

답장에는 짧게 적었다.

현대의 개인 아카이브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원본 접근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겠습니다. 검토 감사합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전부 말하지 않았을 뿐.

보내고 나서 줄리언은 화면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아버지가 길 위에서 새 이름을 쓰며 했던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버리는 게 아니라,

전부 설명하지 않는 것.

그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고록으로 돌아갔다.

다음 장에서 사람들은 전쟁 뒤 무엇을 만들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왕은 아직 없었다.

장례 준비를 시작하기 전 사람들이 중앙에 모였다.

누군가 내 칭호를 불렀다.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

한 명.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

처음에는 승리의 흥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만.”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감사.

안도.

두려움.

존경.

여러 감정이 섞였다.

나는 화가 났다.

“그만하라고!”

이번에는 조용해졌다.

테멘이 내 옆에 왔다.

“이제 못 없애겠네.”

“뭘.”

“당신 자리.”

“난 왕 아니야.”

테멘이 나를 봤다.

“누가 왕이래?”

나는 주변을 봤다.

왕관도 없었다.

왕좌도.

궁전도.

내 이름이 새겨진 법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내가 결정하기를 기다렸다.

내가 고른 사람들에게 권한을 줬다.

다른 공동체가 나와 협상했다.

피난민을 들일지 말지 내 말이 영향을 줬다.

전투 중 내 명령에 사람들이 멈췄다.

왕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왕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기에도 뭔가 달라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죽은 사람 장례를 준비했다.

나는 중앙에서 떨어져 혼자 앉았다.

세나가 옆에 왔다.

“언제 떠날 거야.”

“왜 다들 그거 물어.”

“짐 아직 있잖아.”

“조금.”

세나가 웃었다.

“당신의 조금은 길다며.”

테멘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때는 떠나면 끝이었다.

이제 떠나면 누가 물을 볼지,

창고를 누가 정리할지,

경비가 누구 말을 들을지,

강 건너와 누가 협상할지부터 떠올랐다.

그게 위험했다.

정착지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더 위험한 건 반대였다.

나도 정착지가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밤이 되자 장례 불빛이 멀리 보였다.

사람들은 죽은 이를 불렀다.

나는 칭호를 듣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이름을 불렀다.

죽은 사람의 이름.

한 명씩.

권력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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