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68화 — 도망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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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이 처음 온 것은 해 질 무렵이었다.
아이들이 먼저 보였다.
걷기보다 끌려오는 것 같은 모습.
여자.
노인.
젊은 남자 몇 명.
짐은 거의 없었다.
가축도 적었다.
몇 사람은 다쳤다.
경비가 벽 밖에서 멈췄다.
“어디서 왔어.”
대답이 엉켰다.
말도 조금 달랐다.
세나가 알아들었다.
강 아래쪽 더 먼 정착지.
무장한 사람들이 습격.
집 일부가 불탐.
곡물과 가축을 빼앗김.
사람 몇이 죽음.
더 올 수도 있음.
우리 사람들은 바로 갈렸다.
“들여.”
“안 돼.”
“아이들이잖아.”
“저 사람들 쫓아온 놈들도 오면?”
“먹을 거는.”
“벽 밖에 둬.”
나는 사람들 얼굴을 봤다.
겁.
동정.
분노.
계산.
모두 이해됐다.
피난 온 아이 하나가 앉아 있었다.
발바닥이 갈라져 피가 났다.
나는 고향 큰물을 떠올렸다.
높은 땅에서 같이 자던 사람들.
그때 누가 ‘너희 집 사람만’ 받겠다고 했다면.
나는 말했다.
“들여.”
즉시 반대가 나왔다.
“왜 당신이 정해!”
말한 사람은 벽 안 오래 산 남자였다.
나는 멈췄다.
맞았다.
나는 혼자 결정했다.
“그럼 모이자.”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간단히 들었다.
반대 이유.
찬성 이유.
세나는 말했다.
“먹을 만큼 일 시키면 돼.”
누군가 화냈다.
“애들도?”
“일할 수 있는 사람.”
테멘은 물었다.
“아픈 사람은.”
“안 시켜.”
아렘은 창고 재고를 계산했다.
“한 달은 버텨.”
“그 뒤.”
“수확 봐야지.”
경비 책임자는 말했다.
“무장한 사람들 섞였을 수도 있어.”
피난민 젊은 남자들이 얼굴을 굳혔다.
분위기가 나빠졌다.
나는 말했다.
“무기 맡겨.”
“왜.”
“안쪽 들어오려면.”
그들은 반발했다.
“우릴 못 믿어?”
나는 대답했다.
“아직 모르니까.”
내가 외지인일 때 들었다면 화났을 말.
그래도 지금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며칠 동안 무기를 따로 보관.
경비와 같이 필요할 때 돌려줌.
완벽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피난민들은 벽 바깥과 안쪽 빈 공간에 나눠 머물렀다.
일을 시작했다.
벽 보수.
밭.
창고.
그중 한 남자는 가죽을 아주 잘 다뤘다.
한 여자는 부상 치료 경험이 많았다.
사람들은 며칠 지나 ‘피난민’ 대신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좋았다.
하지만 긴장은 남았다.
어느 밤 기존 주민 창고에서 작은 물건이 사라졌다.
바로 피난민 탓이 나왔다.
나는 54화 외지인 사건이 떠올랐다.
증거부터 보자고 했다.
범인은 기존 주민 아이였다.
먹을 걸 몰래 가져간 것.
사람들이 민망해했다.
피난민 쪽에서는 화가 났다.
“우릴 처음부터 도둑으로 봤잖아.”
맞았다.
나는 사과했다.
내가 직접 의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만든 경비 구조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부터 피난민 대표도 회의에 들어오게 했다.
기존 사람 일부가 싫어했다.
“온 지 며칠인데.”
나는 말했다.
“자기 일 말하려면 있어야지.”
그 논리는 통했다.
피난민 중 어린아이들은 가장 빨리 적응했다.
며칠 지나 기존 아이들과 같이 뛰었다.
말이 조금 달라도 놀이에는 문제가 적었다.
어른들이 서로 경계하는 동안 아이들은 이름부터 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한편 어른들은 더 느렸다.
피난민이 공동 창고 곡물을 받는 문제로 싸움이 났다.
“우리가 넣은 거잖아.”
기존 주민이 말했다.
피난민은 아직 낸 것이 거의 없었다.
아렘은 계산상 일정량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계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그럼 굶게 해?”
아무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빚’ 형태로 기록했다.
지금은 받고,
수확이나 노동 뒤 일부 돌려놓기.
피난민 대표는 자존심 상해 했다.
“우린 거지 아니야.”
“알아.”
“그럼 왜 빚.”
나는 생각했다.
“당신들도 나중에 새로 오는 사람 먹일 수 있게.”
그 말에 그는 조금 누그러졌다.
공동 저장은 한 세대가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구조가 될 수 있었다.
그날 피난민 여성 하나가 치료에 도움을 줬다.
우리 쪽 아이가 깊게 베였다.
그녀는 상처를 씻고 묶는 방식이 달랐다.
기존 치료 경험자와 의견이 갈렸다.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둘이 이야기하게 했다.
결과는 좋았다.
새 사람을 받는다는 건 입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는 일이었다.
며칠 뒤 가죽 장인이 기존 장인과 함께 일했다.
처음에는 서로 기술을 숨겼다.
나중에는 조금씩 섞였다.
나는 그걸 보며 정착지가 이전과 다른 곳이 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우리 사람’의 정의도 달라졌다.
태어난 사람?
오래 산 사람?
공동 노동을 한 사람?
벽 안에서 자는 사람?
명확하지 않았다.
어느 회의에서 누군가 말했다.
“저 사람들은 아직 우리 아니잖아.”
피난민 아이 하나가 바로 옆에서 듣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언제부터 우리인데.”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테멘이 말했다.
“시간 지나면.”
세나는 반박했다.
“얼마나.”
테멘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는 그도 답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날짜를 정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규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곡물.
경비.
물.
판단 자리.
피난민에게 의무가 있으면 권리도 있게.
그 원칙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작이었다.
그들이 회의에 들어온 날 기존 주민 몇은 불만스럽게 나갔다.
나는 붙잡지 않았다.
모두가 한 번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벽 밖에서 노래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피난민들이 자기 고향 방식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세나가 조금 번역해줬다.
잃은 집 이야기.
나는 멀리서 들었다.
고향을 떠난 첫날 밤이 떠올랐다.
차이는 그들은 선택해서 떠난 게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피난민 아이 하나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우리 집 어디야?”
나는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 아이가 묻는 ‘집’이 잃어버린 고향인지,
지금 머무는 곳인지 몰랐다.
“어디가 집 같아.”
내가 되물었다.
아이는 벽 밖 임시 집을 가리켰다.
“저기.”
대답은 간단했다.
어른들은 고향을 기억과 권리와 묘지로 정의했다.
아이에게는 오늘 자는 곳이 집이 될 수 있었다.
그날 피난민 대표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빠르네.”
“뭐가.”
“사는 거.”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고향을 수십 년 지나도 놓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며칠 만에 새 친구와 새 길을 만들었다.
잊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해서.
그 차이를 배웠다.
며칠 뒤 정찰이 들어왔다.
멀리 무장한 사람 흔적.
피난민들이 말한 습격자일 가능성.
경비 책임자는 얼굴이 굳었다.
“쫓아온 거면.”
사람들은 피난민을 봤다.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은 공기 속에 있었다.
우리가 저 사람들을 받아서 전쟁이 오는가.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현실적이었다.
밤 회의에서 누군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내보내면.”
조용해졌다.
피난민 대표가 일어섰다.
“나갈게.”
나는 바로 말했다.
“앉아.”
“우리 때문에 싸우면.”
“아직 모르잖아.”
그가 나를 봤다.
나는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 내보내면 죽을 수도 있어.”
테멘이 물었다.
“그럼 싸울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69화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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