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61화 — 부르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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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칭호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농담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찾을 때 이름 대신 일을 붙였다.
“물길 보는 사람 어디 있어?”
“곡물 창고 정한 사람.”
“벽 쌓자고 한 외지인.”
“칼 맞고도 걸어다니는 놈.”
마지막은 싫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름보다 역할을 더 빨리 기억했다.
내가 길 위에서 바꿔 쓰던 이름은 이곳에서도 발음이 조금씩 달랐다.
외지 상인은 자기 말에 맞게 줄여 불렀다.
아이들은 더 짧게 불렀다.
테멘은 이름보다 “야”를 많이 썼다.
어느 날 강 아래에서 온 상인이 나를 보더니 다른 말을 썼다.
정확한 소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모름]
지금의 언어로 옮기면 대략 이런 뜻이었다.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랐다.
통역하던 젊은이가 설명했다.
“여기서 마지막에 말하는 사람.”
“내가?”
“다들 그러던데.”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름 불러.”
상인은 내 이름을 한 번 따라 했다.
틀렸다.
두 번째도.
결국 다시 그 칭호를 썼다.
사람들이 웃었다.
테멘은 특히 좋아했다.
그날 저녁 물길 회의에서 일부러 말했다.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은 뭐래?”
나는 그를 노려봤다.
“한 번만 더 하면 물에 던질 거야.”
“그럼 물길은 내가 더 잘 아니까 살아나겠네.”
사람들이 웃었다.
처음에는 그 정도였다.
문제는 말이 편했다는 것이다.
나를 모르는 외지인에게 설명하기 쉬웠다.
어느 정착지에서 왔고 무슨 가문이고 누구 아들인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
그러면 상대는 내가 협상 자리에 앉는 이유를 이해했다.
나는 그게 싫으면서도 편했다.
편한 말은 빨리 퍼진다.
시장에서도 들렸다.
경비도 장난처럼 썼다.
아이들까지 따라 했다.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
뒤에서 누가 소리치면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대부분 결국 돌아봤다.
아렘이 말했다.
“이미 네 이름이네.”
“아니야.”
“돌아보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칭호가 불편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역할을 이름으로 만들면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나는 아직 떠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짐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푸른 펜던트.
아버지의 칼.
길에서 쓸 도구.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개인 이름보다 역할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로 들어온 가족의 아이가 물었다.
“왜 그렇게 불러요?”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말을 안 들어서.”
아이가 웃었다.
“반대잖아요.”
“뭐가.”
“사람들이 당신 말 듣잖아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테멘이 멀리서 들었는지 크게 웃었다.
며칠 뒤 나는 외지 협상 자리에 일부러 맨 끝에 앉았다.
테멘과 아렘을 앞에 뒀다.
상대가 들어오자 잠깐 당황했다.
나를 찾는 눈이 보였다.
나는 모른 척했다.
회의가 시작됐다.
처음 십여 분은 정말 내가 없어도 됐다.
테멘이 물을 말하고,
아렘이 물건을 말하고,
상대가 반박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편했다.
조금 서운했다.
결국 두 문제가 겹치면서 모두 나를 봤다.
“그래서?”
상대가 물었다.
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날 회의 뒤 테멘이 말했다.
“끝에 앉아도 끝에 말하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정말 권한을 나누고 싶다면,
사람들이 내 말 없이 끝내는 결과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게 더 어려웠다.
며칠 뒤 강 건너 정착지에서 사람들이 왔다.
물 문제 때문이었다.
그들의 대표가 내 앞에 앉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얼굴에 강한 햇빛을 오래 맞은 흔적이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외지 상인이 쓰던 그 칭호를 바로 말했다.
“앞에서 결정하는 사람?”
나는 잠깐 멈췄다.
“아니.”
통역하는 사람이 당황했다.
“그럼 누구랑 말해야 하지.”
나는 테멘을 가리켰다.
“물은 저 사람.”
대표가 테멘을 봤다.
테멘은 바로 나를 다시 가리켰다.
“마지막은 저놈.”
나는 그를 죽이고 싶었다.
대표는 웃지 않았다.
“그럼 맞네.”
협상은 시작도 전에 내 역할을 정해버렸다.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칭호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건,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게 점점 싫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칭호가 퍼지면서 웃기지 않은 일도 생겼다.
외지인이 내게 곡물을 빌려달라고 했다.
“왜 나한테.”
내가 물었다.
“당신이 여기 앞에서 결정한다며.”
“창고는 아렘.”
“그럼 아렘한테 빌리라고 허락해줘.”
나는 짜증이 났다.
“왜 내가 허락해.”
그는 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이 결정하는 사람 아니야?”
칭호 하나가 실제 권한보다 먼저 나를 키우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렘에게 말했다.
“누가 내 이름 대면서 곡물 달라면 주지 마.”
아렘이 웃었다.
“누구 이름.”
“내 거.”
“어느 거.”
나는 잠깐 멈췄다.
길에서 바꾼 이름.
사람들이 붙인 칭호.
정착지 별칭.
내가 실제로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도 이미 여러 개였다.
“아무거나.”
아렘이 더 웃었다.
“편하네.”
그 뒤 사람들 앞에서 역할을 더 명확히 하려고 했다.
창고는 아렘.
물은 테멘과 담당자들.
경비는 경비 책임자.
시장 분쟁은 상인들끼리 먼저.
나는 모든 게 겹칠 때만 앉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물과 시장이 겹친 문제가 생겼다.
바로 나를 불렀다.
그 다음날은 경비와 가축.
또 나.
나는 포기했다.
테멘은 말했다.
“세상 일은 다 겹쳐.”
“그래서.”
“당신 계속 부르겠네.”
“기분 좋아?”
“응.”
나는 진짜 물에 던질 생각을 했다.
그 무렵 외지 사절 비슷한 사람이 처음으로 작은 선물을 가져왔다.
좋은 천.
말린 과일 비슷한 것.
“왜.”
내가 물었다.
“인사.”
“누구한테.”
“당신.”
나는 받지 않으려 했다.
상대가 당황했다.
“싫어?”
“왜 나한테만 줘.”
그는 자기 뒤 사람을 봤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대표와 이야기하려면 대표에게 선물을 준다.
나는 말했다.
“여기 여러 사람이 같이 결정해.”
상대는 또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결국 선물을 공동 식사에 내놓았다.
사람들이 좋아했다.
아렘은 말했다.
“다음에도 그렇게 해.”
테멘은 말했다.
“그러다 아무도 너한테 선물 안 가져와.”
“좋지.”
내가 말했다.
실제로 몇 번 지나자 사람들이 선물을 공동에 주기 시작했다.
나는 만족했다.
그런데 아주 작은 개인 선물이 하나 들어왔을 때는 돌려주지 않았다.
좋은 칼집이었다.
아버지 칼에 잘 맞았다.
그걸 밤에 보다가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원칙은 늘 작은 예외에서 흔들렸다.
다음 날 칼집을 경비 장비로 내놓았다.
아렘이 물었다.
“왜.”
“그냥.”
테멘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웃고 있었다.
나는 못 본 척했다.
칭호는 여전히 싫었다.
하지만 칭호 때문에 오는 존중,
선물,
사람들의 시선까지 전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걸 인정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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