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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52화 — 곡물은 썩는다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52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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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지가 커지면서 가장 먼저 부족해진 건 집이 아니었다.

곡물이었다.

정확히는 보관할 곡물.

사람이 늘면 먹는 양도 늘었다.

당연한 일인데 사람은 배고파진 뒤에야 그 당연함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해 수확은 좋았다.

사람들이 안심했다.

나는 반대로 불안했다.

고향의 흉년을 기억했다.

큰물 뒤 곡물을 한 알씩 주워 담던 아버지.

상한 곡물을 냄새 맡아 버리던 어머니.

“남는 거 저장하자.”

내가 말했다.

사람들은 동의했다.

문제는 얼마를 남길지였다.

“올해 잘됐는데.”

누군가 말했다.

“내년도 잘될지 어떻게 알아.”

“왜 안 좋아.”

“왜 좋아야 해.”

사람은 미래가 지금과 비슷할 거라고 쉽게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다만 오래 살수록 같은 계절이 반복되어도 결과가 다르다는 걸 조금 더 많이 봤다.

우리는 공동 창고를 늘리기로 했다.

아렘이 구조를 봤다.

“바닥 높여.”

“왜.”

“습기.”

그는 자루가 벽에 바로 닿지 않게 했다.

쥐구멍도 확인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과하다고 했다.

“먹을 곡물인데 뭘 그렇게.”

아렘은 화를 냈다.

“먹을 거니까.”

나는 그 편이었다.

창고를 한 곳에 크게 지을지,

작게 여러 곳에 나눌지로 또 싸웠다.

나는 처음에 큰 창고 하나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경비도 적게 필요하고,

관리도 쉽고,

재고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렘이 반대했다.

“불 나면?”

“안 나게 하면 되지.”

테멘이 옆에서 웃었다.

“또 시작했네.”

나는 인상을 썼다.

아렘이 말했다.

“쥐 퍼지면.”

“막으면.”

“물 들어오면.”

“높은 데 지으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도 둬.”

나는 계산했다.

노동이 더 들었다.

재료도.

그래도 홍수 때 작은 창고를 먼저 비웠던 경험이 떠올랐다.

결국 세 곳으로 나눴다.

사람들은 귀찮다고 했다.

특히 자기 집 가까운 창고에 넣지 못한 사람들.

“왜 저기까지 가져가.”

“분산하려고.”

“그게 뭔데.”

설명해도 표정은 그대로였다.

며칠 뒤 창고 하나에서 냄새가 났다.

아렘이 바로 곡물을 꺼냈다.

아래쪽 일부가 젖어 있었다.

바닥 한쪽이 예상보다 낮았다.

그 곡물을 골라내는 데 하루가 걸렸다.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말했다.

“봐. 여러 곳에 두길 잘했잖아.”

아렘이 나를 봤다.

“내가 그랬지.”

“같이 정했어.”

“내가 먼저.”

테멘이 끼어들었다.

“둘 다 조용히 해.”

우리는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공동 저장량을 늘리려면 각 집이 일부를 내야 했다.

문제는 같은 비율이 공정한가였다.

나는 처음에 단순하게 말했다.

“모두 같은 만큼.”

테멘이 바로 반대했다.

“집마다 사람 수 다른데.”

“그럼 수확량 비율로.”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말했다.

“밭 좋은 집이 더 내라고?”

“더 많이 얻잖아.”

“일도 더 했어.”

말이 얽혔다.

나는 짜증이 났다.

“그럼 굶을 때도 각자 알아서 해.”

정적.

말하고 후회했다.

공동 창고를 만들자는 사람이 나였다.

테멘이 나를 봤다.

“화났다고 구조 바꾸냐.”

나는 숨을 골랐다.

결국 여러 기준을 섞었다.

가구 크기.

수확량.

작년 손실.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집은 여전히 불공평하다고 했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공정한 규칙 하나라는 건 생각보다 만들기 어려웠다.

사람마다 출발점이 달랐다.

그해 늦은 계절에 작은 화재가 났다.

누군가 횃불 비슷한 것을 잘못 떨어뜨렸다.

창고 한쪽 벽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이 물을 날랐다.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그래도 곡물 일부를 잃었다.

사람들이 다음 날 검게 탄 벽을 봤다.

아렘이 나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했다.

“알아.”

“뭘.”

“나눠두길 잘했다고.”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말 잘하네.”

테멘이 말했다.

“이번에는.”

나는 그 말을 싫어했다.

“왜 꼭 이번에는을 붙여.”

“다음에도 맞을지 모르잖아.”

“그럼 매번 아무것도 확신 못 해?”

테멘은 탄 곡물을 손으로 집었다.

“확신해도 돼.”

그리고 버렸다.

“틀릴 수 있는 것만 기억해.”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공동 창고가 생기자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누가 곡물을 꺼낼 수 있는가.

처음에는 아렘이 열쇠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장치를 관리했다.

사람들이 불편해했다.

“아렘 없으면?”

“기다려.”

“급하면?”

“그래도.”

아렘은 자기 권한이 커지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가 가장 잘했다.

그래서 한동안 그냥 뒀다.

어느 날 아렘이 아팠다.

심한 건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그날 곡물이 필요한 집이 생겼다.

아이 하나가 열이 나서 먹을 것을 더 달라고 했다.

사람들이 아렘 집 앞에 모였다.

나는 그제야 문제를 봤다.

한 사람이 멈추면 창고가 멈췄다.

아렘이 누운 채 말했다.

“열쇠 가져가.”

“누구한테.”

“당신.”

나는 받으려다 멈췄다.

또 내가 갖는 구조였다.

“둘로 나누자.”

테멘이 말했다.

“뭘.”

“한 사람은 못 열게.”

아렘이 불만스러워했다.

“귀찮아.”

“당신 아프면 더 귀찮아.”

결국 두 사람이 함께 열게 했다.

아렘과 다른 관리자.

둘 중 한 명이 없을 때를 위한 셋째 사람도 정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번거롭다고 했다.

며칠 지나 익숙해졌다.

그 작은 장치 하나로 나는 이상한 걸 느꼈다.

사람을 믿는 것과,

사람 하나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나는 아렘을 믿었다.

그래도 창고를 아렘 한 사람 몸에 묶어두면 안 됐다.

이 원칙이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건 그때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

테멘은 생각한 것 같다.

어느 날 말했다.

“창고는 둘이 열게 하면서.”

“왜.”

“사람 일은 당신 혼자 마지막에 보네.”

나는 바로 반박했다.

“난 혼자 안 해.”

“그렇지.”

테멘은 아렘을 가리켰다.

“우리가 맨날 붙어 있으니까.”

그게 반박인지 동의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또 하나는 곡물의 질 문제였다.

공동으로 내면 좋은 것만 내는 집도 있었고,

상한 걸 섞어 넣는 집도 있었다.

아렘이 한 번 크게 화냈다.

“이건 먹으라는 거야 버리라는 거야!”

주인은 몰랐다고 했다.

정말 몰랐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들어올 때 바로 확인하기로 했다.

좋은 것.

말려야 하는 것.

버릴 것.

어머니가 곡물을 손바닥에 올려 냄새 맡던 장면이 또 떠올랐다.

나는 아렘에게 보여줬다.

“이렇게.”

그가 말했다.

“그건 나도 해.”

“우리 어머니가 더 먼저 했어.”

“당신 어머니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웃었다.

사람은 자기가 배운 기술의 역사를 잘 모른다.

어머니도 누군가에게 배웠을 것이다.

그 사람도.

작은 기술은 이름 없이 세대를 건넜다.

왕 이름보다 오래 가는 것도 그런 것들이었다.

그날부터 창고에는 물건만 쌓이지 않았다.

표식이 늘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어느 집에서 왔는지.

얼마가 나갔는지.

누가 열었는지.

아렘은 관리가 쉬워졌다고 좋아했다.

사람들은 귀찮아했다.

어떤 아이가 벽의 표시를 보며 물었다.

“이게 뭐야.”

아렘이 말했다.

“안 잊으려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안 잊으려고.

내가 평생 하려던 일과 같았다.

다만 곡물은 사람보다 조금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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