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51화 — 대답해주는 사람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기억]
큰물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나를 더 자주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해했다.
물길.
무너진 벽.
젖은 곡물.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
내가 홍수 때 몇 번 결정을 했으니 그 뒤까지 물어보는 건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물이 빠지고 한참 지난 뒤에도 사람들이 계속 왔다는 것이다.
아침에 문을 열면 누군가 기다렸다.
“저 집이 우리 물을 먼저 가져갔어.”
“가축이 밭에 들어왔어.”
“곡물 빌려줬는데 안 갚아.”
“외지인이 값을 속였어.”
나는 처음에는 다 들었다.
어떤 건 바로 답이 보였다.
어떤 건 테멘에게 보냈다.
어떤 건 아렘에게.
그런데 사람들은 돌아오며 꼭 물었다.
“당신 생각은?”
처음에는 별 뜻 없이 말했다.
“테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아렘이 더 잘 알아.”
그런 말.
며칠 뒤부터 이상해졌다.
사람들이 테멘이나 아렘 말을 듣고도 마지막에 나를 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야 끝나는 것처럼.
어느 날 아침 한 여자가 찾아왔다.
화가 많이 난 얼굴이었다.
“내 딸이 저쪽 집 아들이랑 살겠대.”
나는 한참 그녀를 봤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
“뭘.”
“막아야 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여자가 오히려 당황했다.
“다들 당신한테 묻잖아.”
“물길이나 창고를 묻지.”
“사람 사는 게 다 연결돼 있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았다.
테멘에게서 들었을 수도 있고,
네라가 비슷한 말을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결국 말했다.
“딸한테 물어.”
“물었지. 산대.”
“그럼.”
“그 집 마음에 안 들어.”
“그건 당신 문제네.”
여자는 화난 얼굴로 돌아갔다.
테멘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듣고 있었다.
“잘했네.”
“뭐가.”
“처음으로 안 해줬잖아.”
“내가 뭘 해줘.”
“대답.”
그는 내 옆에 앉았다.
“사람은 대답해주는 사람한테 자꾸 물어.”
“그럼 물길도 대답하지 마?”
“그건 네가 시작했잖아.”
“같이 했지.”
“그래도 네가 제일 말 많았어.”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테멘은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켰다.
누군가는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당신이 똑똑해서 오는 것도 있고.”
“또.”
“결정하면 안 도망가니까 오는 것도 있어.”
48화의 실패가 떠올랐다.
망가진 밭.
곡물 빚.
복구.
나는 말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테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잠깐 뒤 덧붙였다.
“많아지면 나빠질 수도.”
나는 그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도 사람을 세 팀 만났다.
가축 문제.
도구 문제.
마지막은 두 가족이 공동으로 쓰는 작은 창고 문제였다.
누가 얼마나 곡물을 넣었는지 기억이 달랐다.
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세었다.
다른 사람은 벽에 남긴 표식을 보여줬다.
표식 쪽이 더 믿을 만했다.
나는 말했다.
“다음부터 표시 남겨.”
그 말이 며칠 뒤 규칙이 됐다.
누군가 창고 벽에 간단한 선을 만들었다.
들어온 양.
나간 양.
아렘은 좋아했다.
“이제 내 방식 쓰네.”
“당신 방식 아니야.”
“내 창고에서 봤잖아.”
“그 전에도 비슷한 거 있었어.”
“어디.”
“몰라.”
아렘이 웃었다.
“그럼 내 거네.”
우리는 한참 다퉜다.
그날 저녁 나는 사람들을 한곳에 모았다.
매일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듣는 게 지쳤기 때문이다.
“앞으로 물 문제는 테멘.”
테멘이 바로 말했다.
“왜 내가.”
“원래 했잖아.”
“내가 혼자?”
“사람 붙여줄게.”
그는 인상을 썼다.
“창고랑 곡물은 아렘.”
아렘은 생각보다 좋아했다.
“거래도?”
“당신이 알아서 해.”
“가축은?”
사람들이 서로를 봤다.
가축을 오래 키운 중년 남자 하나를 정했다.
그는 갑자기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당신이 제일 잘 알잖아.”
그 말이 나왔다.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하면 된다.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대체로 동의했다.
문제마다 담당자를 정했다.
작은 일은 그들이 처리하기로 했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아침에 모두 나한테 오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
문을 열었다.
어제보다 사람이 적었다.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심쯤 테멘이 왔다.
“저쪽 물 문제 결정했어.”
“그래.”
“근데 사람들이 당신한테 물어보래.”
나는 얼굴을 감쌌다.
“왜.”
“당신이 정한 사람이니까.”
그날부터 문제는 바뀌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모든 일을 묻지는 않았다.
대신 누가 결정할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전히 나를 봤다.
나는 부담을 줄였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차이를 당시에는 몰랐다.
사람을 나누어 맡기기 시작한 뒤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담당자끼리 서로 다른 말을 했다.
가축 담당자는 가축을 위해 물길을 조금 넓혀야 한다고 했다.
테멘은 그러면 밭으로 가는 물이 줄어든다고 반대했다.
아렘은 창고 가까운 길부터 넓혀야 곡물을 옮기기 쉽다고 했다.
셋 다 자기 입장에서는 맞았다.
그들은 결국 나를 찾아왔다.
“정해.”
테멘이 말했다.
나는 짜증이 났다.
“아까는 사람 정하면 덜 귀찮아진다며.”
“내가 언제.”
“그런 뜻이었잖아.”
“난 두고 보랬지.”
아렘이 웃었다.
나는 셋에게 각자 이유를 말하게 했다.
가축 담당자는 여름에 짐승이 지나갈 길이 막힌다고 했다.
테멘은 물이 줄면 아래 밭이 죽는다고 했다.
아렘은 곡물 이동이 느려지면 비 올 때 더 많이 젖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물었다.
“다른 시간에 하면 안 돼?”
셋이 나를 봤다.
“뭘.”
“길을 같이 쓰지 말고 시간 나눠.”
가축은 특정 시간.
곡물 이동은 다른 시간.
물이 많이 필요한 때는 물길 쪽 우선.
단순했다.
아렘이 말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방금 생각했어.”
테멘은 웃었다.
그 작은 사건 덕분에 배운 게 있었다.
여러 사람의 문제가 충돌할 때,
누가 맞는지를 가리는 것보다 같이 맞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나을 때가 있었다.
그날 이후 담당자들끼리 먼저 이야기하게 했다.
바로 나한테 오지 말고.
“합의 안 되면?”
“그때 와.”
이 규칙은 꽤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귀찮아했다.
서로 말하는 게 나에게 바로 물어보는 것보다 오래 걸렸으니까.
하지만 몇 번 지나자 작은 문제는 정말 나 없이 끝났다.
어느 날 오후 내 문 앞에 아무도 없었다.
처음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허전했다.
해야 할 일이 없었다.
강가로 갔다.
오랜만에 혼자 앉았다.
물소리만 들렸다.
길 위에서 혼자가 되고 싶어 했던 사람이,
사람들이 안 찾아오자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 우스웠다.
저녁이 되자 한 아이가 뛰어왔다.
“아저씨!”
새 이름을 불렀다.
“왜.”
“아버지가 오라는데.”
“무슨 일.”
“모른대.”
나는 일어났다.
허전함은 바로 사라졌다.
그날 저녁 테멘이 돌아가며 말했다.
“이제 더 귀찮아질 거야.”
“왜.”
“사람을 정했잖아.”
“그래서 덜 귀찮아지는 거지.”
테멘은 웃었다.
“두고 봐.”
나는 그 노인이 틀리기를 바랐다.
다음 날 아침 문을 열자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사람이 말했다.
“가축 담당자가 틀렸어요.”
나는 문을 다시 닫고 싶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