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44화 — 싸우지 않는 사람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길에서 싸움을 피하는 법은 싸우는 법보다 중요했다.
그 사실은 빨리 배웠다.
다섯 명이 길을 막았다.
정확히 다섯이었다고 기억한다.
[기억]
다만 수천 년 뒤의 내가 그 장면을 다섯이라는 숫자로 너무 깔끔하게 정리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 명은 긴 창 같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둘은 짧은 칼.
나머지는 막대기와 돌.
그들은 나보다 먼저 나를 봤다.
혼자.
짐이 있음.
젊고 건강함.
도와줄 사람 없음.
좋은 먹잇감이었다.
처음에는 길을 묻는 척했다.
나는 대답했다.
그들이 내 뒤로 퍼졌다.
그제야 알았다.
한 남자가 가방을 가리켰다.
“내놔.”
정확한 말은 달랐지만 뜻은 분명했다.
나는 못 알아들은 척했다.
그가 손으로 설명했다.
가방.
칼.
물주머니.
그리고 목.
푸른 펜던트의 줄이 옷 위로 조금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순간 화가 났다.
네라가 떠올랐다.
‘이것만은 잃어버리지 마.’
나는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그들도 자세를 바꿨다.
몸은 싸울 준비를 했다.
나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둘은 나보다 약해 보였다.
한 명은 다리를 조금 절었다.
창 든 남자만 먼저 막으면—
그 순간 아버지 목소리가 떠올랐다.
싸움은 시작하기 전에 끝내는 게 제일 낫다.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는지,
나중의 내가 아버지 목소리를 빌린 것인지는 모른다.
나는 주변을 봤다.
좁은 길.
한쪽은 낮은 비탈.
반대쪽에는 큰 돌.
다섯을 모두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첫 칼에 배를 찔릴 수도 있었다.
한 명이 도망가 다른 사람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이겨도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아직 내가 죽지 않는다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가족의 죽음을 너무 많이 본 뒤였다.
죽음은 실제였다.
나는 천천히 가방을 내려놨다.
칼 든 남자 하나가 웃었다.
먹을 것 일부를 꺼냈다.
작은 도구.
천.
그들이 더 달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창 든 남자가 칼을 가리켰다.
“그건 안 돼.”
그는 못 알아듣는 척했다.
나는 칼을 뽑지 않고 손만 올렸다.
한참 서로 봤다.
펜던트는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행히 그들이 직접 몸을 뒤지려고 하지는 않았다.
먹을 것과 물건 몇 개를 가져갔다.
한 남자가 내 아버지 칼도 보려 했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났다.
이번에는 표정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들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돌아서 떠났다.
나는 그들의 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에야 욕을 했다.
화가 났다.
손이 떨렸다.
두려워서인지 분해서인지 몰랐다.
한참 뒤 그들을 쫓아갈까 생각했다.
진지하게.
칼을 들고.
잠든 틈을 찾아서.
내 물건을 되찾고,
내가 겁쟁이가 아니라는 걸—
거기까지 생각하고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그들이 가져간 건 말린 음식과 도구 몇 개였다.
다음 정착지에서 다시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쫓아가 싸우면 얻는 것은 자존심이었다.
잃을 수 있는 것은 목숨.
계산이 너무 나빴다.
나는 길을 계속 갔다.
다음 정착지에 도착했을 때 음식이 부족했다.
일을 했다.
짐을 날랐다.
먹을 것을 받았다.
도구도 하나 새로 구했다.
며칠 뒤 손실은 거의 메워졌다.
그제야 더 화가 났다.
내가 싸웠으면 무엇 때문에 싸운 셈이었을까.
그날 밤 아버지 칼을 꺼내 봤다.
칼날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푸른 펜던트도.
나는 네라와의 약속을 지켰다.
싸워서가 아니라,
싸우지 않아서.
그 뒤로는 강함을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칼을 뽑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뽑지 않을 수 있는 것.
둘은 같은 힘이 아니었다.
훗날 나는 훨씬 더 잘 싸우게 된다.
무기와 전쟁을 오래 배운다.
그래도 길 위에서 배운 이 원칙은 오래 남았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과 손해를 적게 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다음 정착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빼앗긴 일을 숨겼다.
누가 물은 것도 아닌데.
내가 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을 구하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짐을 옮기는 남자가 내 가방이 가볍다고 했다.
“도둑 만났어?”
나는 바로 부정했다.
“아니.”
그가 웃었다.
“맞네.”
“왜.”
“그 얼굴.”
모두 내 얼굴을 너무 잘 읽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말했다.
“길에서 좀 줬어.”
“뺏겼네.”
“준 거야.”
그 남자는 더 웃었다.
“살아서 왔잖아.”
“그래서.”
“잘했네.”
나는 예상 못 한 반응이었다.
“안 싸웠는데.”
“왜 싸워.”
“다섯이었어.”
“그럼 더 잘했네.”
그는 자기 옆구리에 긴 흉터를 보여줬다.
“나는 셋이랑 싸웠어.”
“이겼어?”
“아니.”
“그런데 왜 싸웠어.”
“젊어서.”
그가 웃었다.
그 말이 조금 위로됐다.
밤에는 작은 숙영지에서 몇 명과 같이 잤다.
그중 한 사람이 자기 칼을 자랑했다.
나는 아버지 칼을 꺼내지 않았다.
좋은 물건이 있다는 걸 보이는 것도 위험하다고 배웠다.
길 위에서는 실력을 숨기는 것과 소유를 숨기는 것이 비슷했다.
다음 날 그 남자가 나와 짧게 겨뤄보자고 했다.
장난이었다.
나무 막대기로.
나는 거절하려 했다.
사람들이 부추겼다.
결국 했다.
첫 움직임에 상대 발이 어디로 갈지 보였다.
아버지에게 배운 것.
사냥과 싸움에서 익힌 것.
나는 바로 넘어뜨릴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
몇 번 주고받다가 일부러 비슷하게 끝냈다.
상대는 만족했다.
“좀 하네.”
“조금.”
그날 처음으로 일부러 실력을 줄여 보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고향에서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가족이 이미 알았다.
길에서는 모르게 할 수 있었다.
그 자유가 있었다.
동시에 거짓말 같았다.
그 일을 겪은 뒤 한동안 나는 사람을 보면 먼저 손을 봤다.
무기가 있는지.
몇 명인지.
길을 막을 수 있는 위치인지.
그 습관은 금방 생겼다.
어느 날 평범한 여행자 셋이 다가오는데 나도 모르게 길 옆으로 비켰다.
그들은 그냥 물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알려줬다.
사람들이 떠난 뒤 스스로가 우스웠다.
모든 낯선 사람을 위협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네라가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당신은 겁먹으면 티가 너무 나.’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일부러 다음 정착지에서 공동 숙영지를 골랐다.
사람을 다시 믿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밤에는 낯선 사람 여섯과 같은 불을 썼다.
한 사람은 계속 자기 고향 이야기를 했다.
한 사람은 거의 말이 없었다.
둘은 거래 문제로 싸웠다.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잠들기 전 칼 위치를 세 번 확인했다.
그래도 아침까지 아무 일 없었다.
평범한 밤이었다.
그런 평범함이 필요했다.
위험을 배운 사람은 세상이 전부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다시 배워야 했다.
며칠 뒤 길을 다시 나섰다.
도둑들이 있던 방향을 멀리 돌아갔다.
자존심은 조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경로를 바꿀 정도로는 똑똑해졌다.
나는 펜던트를 옷 안쪽 더 깊이 넣었다.
줄도 다시 확인했다.
네라가 봤다면 웃었을 것이다.
“이제 좀 안 잃어버리려고 하네.”
나는 혼자 대답했다.
“원래 잘 챙겼어.”
길에는 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대화가 조금 위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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