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41화 — 이름을 묻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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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고향을 떠난 첫날 밤에는 거의 잠들지 못했다.
위험해서가 아니었다.
조용해서였다.
집에서는 늘 소리가 있었다.
네라가 기침하는 소리.
사무가 밖에서 누군가와 말다투는 소리.
이라가 바구니를 엮으며 천을 당기는 소리.
아이들.
가축.
이웃집 문 여닫는 소리.
내가 자란 곳에서는 밤조차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다.
길 위에서는 달랐다.
불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면 사람이 없는 어둠이었다.
나는 불을 작게 피웠다.
장작을 아끼려는 이유도 있었고, 멀리서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칼은 손 닿는 곳에 두었다.
물주머니는 머리 가까이.
푸른 펜던트는 옷 안에 넣었다.
눈을 감았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다시 떴다.
누군가 걷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뒤 새벽 가까이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 말랐다.
등은 아팠다.
집에서 자던 바닥도 딱딱했지만, 그곳에는 몸이 익숙했다.
길의 땅은 매일 모양이 달랐다.
나는 짐을 챙겼다.
처음 며칠은 강을 따라 걸었다.
완전히 모르는 길은 아니었다.
어릴 때 외지인들이 오던 방향.
그들이 손으로 그려줬던 길.
아버지가 위험하다고 피했던 길.
기억나는 것과 실제 지형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강은 생각보다 자주 굽었다.
멀리서 이어질 것 같던 길이 갑자기 습지로 막히기도 했다.
사람이 다니는 흔적을 찾으면 조금 편했다.
발자국.
가축 분변.
불 피운 자리.
버려진 깨진 그릇 조각.
사람이 지나간 곳은 생각보다 많은 흔적을 남겼다.
작은 정착지에서는 음식을 물건과 바꿨다.
어느 곳에서는 잠자리를 얻었다.
어느 곳에서는 외지인을 싫어해 밖에서 잤다.
늘 같은 질문을 들었다.
“어디서 왔어?”
처음에는 고향 이름을 말했다.
사람들이 모르면 설명했다.
강 위쪽.
낮은 언덕 옆.
큰물이 자주 드는 곳.
조금 더 멀어지자 아무도 몰랐다.
“그게 어디야?”
나는 더 길게 설명했다.
어느 물길을 지나고,
어느 정착지를 지나고,
며칠을 가야 하는지.
설명하다 보면 고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다.
내게는 세상 전체였던 곳이 다른 사람에게는 들어본 적도 없는 작은 점이었다.
며칠 뒤 한 남자가 물었다.
“이름은?”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멈췄다.
이름은 있었다.
당연히 있었다.
부모가 불렀고,
네라가 불렀고,
사무와 이라가 불렀다.
그런데 낯선 사람 앞에서 그 이름을 말하려 하자 이상했다.
이름을 말하면 그 뒤에 모든 것이 따라붙는 것 같았다.
강.
집.
부모의 묘.
네라.
사무.
이라.
내가 떠난 이유.
그 남자는 기다렸다.
“이름 없어?”
주변 사람이 웃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이름을 조금 바꿔 말했다.
정확히 어떤 소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모름]
원래 이름의 한 음절을 줄였을 수도 있다.
상대가 듣기 쉬운 소리로 바꿨을 수도 있다.
그는 한 번 따라 했다.
틀렸다.
나는 고치지 않았다.
그 이름이 그곳에서는 내 이름이 됐다.
처음에는 편의였다.
며칠 뒤 다른 정착지에서는 또 다르게 들렸다.
사람들이 자기 말에 맞게 불렀다.
나는 그것도 고치지 않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고향에서 쓰던 이름은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
누구의 남편인지,
누구의 아버지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불렀다.
길 위의 이름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날 저녁 어느 집 앞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내 새 이름을 불렀다.
나는 바로 돌아봤다.
벌써 익숙해진 것이다.
놀랐다.
이름 하나가 바뀐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나를 보는 방식은 달라졌다.
고향에서는 나는 ‘안 늙는 사람’이었다.
여기서는 그냥 지나가는 외지인이었다.
그게 좋았다.
아주 좋았다.
나는 일부러 내 과거를 말하지 않았다.
결혼했었는지.
자식이 있는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누가 물으면 짧게 답했다.
어느 날 한 노파가 물었다.
“가족 없어?”
나는 잠깐 멈췄다.
“멀리 있어.”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다.
며칠 뒤 같은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받았을 때는,
“없어.”
라고 했다.
입에서 나오고 나서 마음이 이상했다.
거짓말인가.
살아 있는 후손은 있었다.
하지만 네라와 사무와 이라는 없었다.
부모도.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나는 그날 밤 오래 고민했다.
멀리 있는 가족과,
없는 가족의 차이.
떠난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
살아 있는 후손을 가족이라고 부를 권리.
이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살게 둬.
나는 불 옆에서 펜던트를 만졌다.
다음 날 누군가 다시 가족을 물었다.
이번에는 말했다.
“예전에 있었어.”
상대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답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새 이름을 처음 쓴 날 저녁, 나는 작은 공동 식사 자리에 끼게 됐다.
사람들이 음식을 가운데 놓고 나눴다.
구운 곡물 냄새와 연기가 섞였다.
누군가 내게 그릇을 건넸다.
“이름이 뭐라고?”
나는 낮에 말했던 새 이름을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바로 나왔다.
이상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чуж чуж—아니, 낯선 소리였는데 몇 번 불리고 나니 내 것이 됐다.
한 남자가 물었다.
“무슨 뜻이야?”
나는 멈췄다.
원래 이름에는 가족이 붙여준 뜻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새 이름에는 뜻이 없었다.
“그냥 이름이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끝났다.
나는 한동안 다른 사람들 이름을 들었다.
같은 소리를 몇 번씩 물어봤다.
이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부를 수 있게 해줬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어떤 노인이 내가 먹는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왜 그렇게 급하게 먹어?”
나는 손을 멈췄다.
급하게 먹고 있다는 걸 몰랐다.
길에 나온 뒤 음식이 언제 다시 생길지 몰라 빨리 먹는 습관이 생긴 모양이었다.
“원래 그래.”
내가 말했다.
노인이 웃었다.
“집 없는 사람처럼 먹네.”
그 말에 마음이 찔렸다.
나는 집이 있었다.
있었다고 해야 했다.
그날 잠자리를 얻은 집에는 세대가 셋 있었다.
늙은 부부.
그 아들 부부.
아이 둘.
불이 꺼지기 전까지 사람들이 계속 말을 했다.
나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웃을 때 같이 웃었다.
밤중에 눈을 떴을 때 잠깐 고향인 줄 알았다.
사람 숨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장을 보고 몇 초 지나서야 낯선 집이라는 걸 알았다.
가슴이 조금 아팠다.
다음 날 떠날 때 늙은 여자가 말린 음식을 조금 더 줬다.
“길에서 먹어.”
“대가 안 받나요?”
내가 물었다.
그녀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일했잖아.”
나는 마당 한쪽 벽을 고쳐준 일을 잊고 있었다.
“그건 잠자리 값인 줄 알았는데.”
여자가 웃었다.
“너무 정확히 따지면 피곤해.”
나는 그 말을 기억했다.
길에서는 모든 것이 정확한 거래는 아니었다.
누군가 조금 더 주고,
다음 사람이 조금 덜 받고,
그렇게 이어졌다.
고향에서는 관계가 오래가니 언젠가 갚을 수 있었다.
길에서는 다시 볼지 몰랐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나는 음식을 받았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봤다.
그 가족은 벌써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떠나는 일은 그들에게 큰 사건이 아니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걸은 뒤 앞에서 다른 사람이 내 새 이름을 불렀다.
길을 같이 가자는 사람이었다.
나는 돌아봤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새 이름을 쓰는 일은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를 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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