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40화 — 강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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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날 아침에는 아무 의식도 없었다.
사람 몇 명이 나왔다.
가족.
가까운 이웃.
누군가는 먹을 것을 줬다.
누군가는 길에서 쓰라며 끈을 줬다.
어린아이 하나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누구의 손자인지 잠깐 생각해야 했다.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있어.”
“언제 와?”
“모르겠다.”
아이의 어머니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웃었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나는 강 쪽으로 걸었다.
어릴 때부터 보던 강.
집이 무너졌던 강.
네라와 걷던 강.
사무와 사냥에서 돌아오던 길 옆의 강.
이라가 어릴 때 놀던 강.
같은 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같은 강이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강을 건너기 전에 뒤를 봤다.
마을이 보였다.
예전보다 컸다.
집이 많았다.
연기가 여러 곳에서 올라왔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마을과는 이미 달랐다.
사람들도 달랐다.
나는 목에 손을 댔다.
푸른 펜던트가 있었다.
네라가 만든 흠집을 손끝으로 찾았다.
남아 있었다.
나는 강을 건넜다.
중간쯤 갔을 때 발밑의 물이 차가웠다.
어릴 때 진흙을 만지던 감각이 잠깐 떠올랐다.
반대편에 도착했다.
다시 뒤를 봤다.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떠날 때 마지막인 줄 잘 모른다.
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낮이 되자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작은 언덕에 올랐다.
뒤를 돌아봤다.
강만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아주 오래 혼자 서 있었다.
네라가 없었다.
사무도.
이라도.
부모도.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줄 사람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무서우면서 가벼웠다.
나는 어느 이름으로 불릴지 정하지 않은 채 길을 걸었다.
그날 나는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은 집을 떠나는 순간이 아니라,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졌을 때 비로소 고향을 잃는다는 것을.
강을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부모와 네라와 사무와 이라가 묻힌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정확히 같은 자리에 모두 있지는 않았다.
세월 동안 묘지 위치도 조금씩 달라졌다.
나는 하나씩 갔다.
말은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네라 앞에서는 펜던트를 꺼냈다.
“안 잃어버렸어.”
혼잣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사무 앞에서는 지팡이 생각이 났다.
이라는 ‘기억하고 싶은 만큼 기억하라’고 했던 말.
부모 앞에서는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죄책감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강가에 갔다.
어릴 때 진흙을 만졌던 정확한 자리는 이미 알 수 없었다.
물길이 바뀌었다.
둑도 달라졌다.
집도.
나는 손을 물에 넣었다.
차가웠다.
아주 오래전과 같은 감각.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강물은 같은 물이 아니었다.
매 순간 바뀌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같은 강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도 그럴 수 있을까.
계속 바뀌어도 같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여러 이름으로 살게 되어도.
여러 얼굴의 사람을 사랑하고 잃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
그 답은 없었다.
나는 강을 건넜다.
중간에서 한 번 멈췄다.
뒤를 봤다.
마을이 보였다.
연기.
집.
사람들.
내가 태어나고,
사랑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묻은 곳.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누구에게 하는 인사인지 몰랐다.
반대편에 도착했다.
발이 젖었다.
나는 신발 비슷한 것을 벗어 물을 털었다.
그리고 길을 걸었다.
해가 높아졌다.
마을은 점점 작아졌다.
언덕 하나를 넘자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숨이 막혔다.
돌아갈까 생각했다.
실제로 몇 걸음 뒤로 갔다.
다시 멈췄다.
네라가 “없어지는 건 하지 마”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없어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하고 떠났다.
사무도 이라도 이미 없었지만,
후손들에게 인사했다.
그게 약속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길을 향했다.
이름을 바꿀 생각은 아직 없었다.
왕이 될 생각도.
역사를 바꿀 생각도.
그저 멀리 가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 있고 싶었다.
그 정도였다.
강을 건넌 뒤에도 한동안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았다.
몇 걸음마다 뒤를 보고 싶었다.
참았다.
언덕 하나를 넘었다.
마을이 안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정말 떠났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길가에 앉았다.
가방을 열었다.
먹을 것.
물.
칼.
작은 도구.
펜던트.
너무 적었다.
내 인생 수십 년이 이 정도 짐으로 바뀌었다.
나는 펜던트를 손에 들었다.
네라가 말했던 것.
이것만은 잃어버리지 마.
“안 잃어.”
소리 내 말했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나는 웃었다.
잠깐 울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해가 질 무렵 작은 불을 피웠다.
혼자 먹었다.
네라 없는 첫 혼밥은 이미 여러 번 했지만,
고향 밖에서는 처음이었다.
밤이 되자 별이 보였다.
어릴 때 보던 별과 같은 하늘.
그 사실이 위로가 됐다.
세상이 완전히 낯설어도 하늘은 이어져 있었다.
나는 누워 생각했다.
내일 어디로 갈까.
정답은 없었다.
그게 처음으로 조금 좋았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돌아갈 시간을 약속하지 않았다.
자유였다.
외로움과 아주 비슷한 모양의 자유.
나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잠들었다.
첫날 밤 불 앞에서 잠들기 전 나는 고향에서 들고 온 마지막 음식 한 조각을 먹었다.
다음 날부터는 길에서 구해야 했다.
그 작은 구분이 이상하게 중요했다.
여기까지는 집에서 온 것.
내일부터는 길의 것.
나는 물주머니를 확인했다.
칼.
도구.
펜던트.
아버지의 것이라고 믿는 칼도 있었다.
짐은 무겁지 않았다.
마음은 무거웠다.
별을 보다가 네라가 별을 별로 안 좋아했다는 걸 떠올렸다.
“너무 많아서 어지러워.”
그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나는 혼자 말했다.
“난 좋은데.”
대답은 없었다.
그런 혼잣말이 늘기 시작한 것도 길 위에서였다.
사람은 혼자 오래 있으면 죽은 사람과 더 많이 이야기한다.
그들이 반박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내 기억 속 네라는 점점 내가 원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걸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훨씬 나중에 한다.
그날 밤에는 그냥 네라가 옆에 있는 것처럼 몇 마디 했다.
그리고 잠들었다.
아침에는 해 뜨기 전에 깼다.
불씨를 덮고,
짐을 챙겼다.
뒤를 보지 않았다.
이제 정말 길 위의 사람이었다.
둘째 날 아침 길을 걷다 작은 정착지를 하나 봤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곳.
그 사실만으로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아무도 사무를 모르고,
네라를 모르고,
내 부모를 모르고,
내 나이를 모른다.
나는 물을 얻기 위해 들어갔다.
누군가 물었다.
“어디서 왔어?”
나는 고향 이름을 말했다.
그 사람은 몰랐다.
“그게 어디야?”
나는 설명하다가 멈췄다.
강 위쪽.
여러 날 거리.
그 정도만 말했다.
“이름은?”
그 질문에서 잠깐 멈췄다.
내 이름을 말했다.
아직은.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내 이름에 아무 역사도 붙어 있지 않은 반응.
이상하게 가벼웠다.
그날 처음으로 새 삶이라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줄리언은 새벽이 가까워져서야 40번째 기록을 끝냈다.
고향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강의 방향과 물길, 큰 홍수, 주변 정착지에 대해 적었지만 현대 지명을 붙이지 않았다.
줄리언은 회고록에 첨부된 손그림 하나를 열었다.
강의 굽이.
높은 땅.
사라진 물길.
정확한 축척도 없었다.
그는 위성지도와 고대 나일 수계 자료를 찾아 겹쳐보려 했다.
후보가 너무 많았다.
수천 년 동안 강은 움직였다.
정착지는 사라졌다.
이름은 더 빨리 사라졌다.
처음으로 제목의 의미가 조금 이해됐다.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줄리언은 검색창을 닫았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소록을 열었다.
몇 달 전 재단 행사에서 소개받은 고대 동북아프리카·근동 교류권 연구자의 명함이 있었다.
메일을 새로 썼다.
회고록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버지 이야기도.
대신 익명 자료 하나의 지리적 배경을 검토해줄 수 있느냐고 적었다.
손그림 일부만 첨부했다.
보내기 버튼 위에서 한참 멈췄다.
그리고 눌렀다.
메일이 사라졌다.
줄리언은 빈 화면을 봤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비밀 안에 다른 사람을 들였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