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9화 — 마지막 집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이라의 장례가 끝난 뒤 나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네라와 만든 집은 아니었다.
그 집은 오래전에 다른 가족이 쓰게 되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필요한 물건만 있었다.
잠자리.
물그릇.
옷.
도구.
푸른 펜던트.
그날 밤 처음으로 마을 전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는 얼굴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무의 아이들.
이라의 아이들.
그들의 아이들.
내 피가 이어진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함께 자란 사람은 없었다.
내가 젊을 때 친구였던 사람도.
부모도.
네라도.
사무도.
이라도.
나는 집 밖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봤다.
젊은 여자가 아이를 업고 갔다.
아이 둘이 싸웠다.
남자 몇 명이 곡물 이야기를 했다.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계속됐다.
그 사실이 서운하면서도 다행이었다.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물건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진짜였다.
남은 땅은 가족들에게 넘겼다.
가축도.
도구도.
내가 갖고 갈 것은 아주 적었다.
칼 하나.
옷.
물.
말린 음식.
작은 기록 몇 개.
푸른 펜던트.
손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어디 가세요?”
나는 말했다.
“동쪽.”
“왜요?”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길 너머가 궁금했다.
다만 지금 떠나는 이유는 호기심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돌아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물었다.
“안 돌아와요?”
“모르겠다.”
그 말은 이제 나도 싫었다.
그래도 다른 답은 없었다.
◆이라가 죽은 뒤 나는 마을에서 더 이상 ‘누구의 아버지’로만 불리지 않게 됐다.
세대가 너무 멀어졌다.
젊은 사람들은 나를 그냥 오래된 친척처럼 봤다.
어떤 사람은 내 혈연관계조차 정확히 몰랐다.
“사무 할아버지 쪽인가?”
“이라 할머니 쪽인가?”
둘 다라고 말하면 더 헷갈려했다.
그때 처음으로 혈통이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빨리 희미해지는지 알았다.
기록이 없으면 세대 몇 번이면 관계가 흐려졌다.
나는 누구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내 기억도 이미 틀리고 있었다.
그래서 떠나는 결정이 조금 쉬워졌다.
내가 남아 있다고 해서 가족이 더 가족인 것은 아니었다.
후손들은 자기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저녁 젊은 후손 하나가 찾아왔다.
“정말 가세요?”
“응.”
“왜.”
“오래 있었으니까.”
“얼마나.”
나는 웃었다.
“많이.”
“돌아와요?”
“모르겠다.”
그가 말했다.
“돌아와도 나는 없을 수도 있겠네요.”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이상했다.
그는 웃었다.
“그래도 오면 우리 애들한테 말해둘게요.”
“뭐라고.”
“이상하게 젊은 사람이 오면 가족이라고.”
나는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돌아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라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후손들이 자기 삶을 살게 두기 위해.
떠날 날짜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들었다.
땅 정리.
물건 나누기.
가족들에게 인사.
빚 확인.
내가 맡고 있던 일 넘기기.
예상보다 많았다.
나는 내가 평범한 사람으로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몇십 년을 살면 사람은 장소와 엮인다.
누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약속한 것이 있고,
물건이 있고,
기억이 있고.
떠남은 발만 움직이는 일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사람은 웃으며 보내줬다.
어떤 사람은 울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다시 와.”
나는 ‘응’이라고 못 했다.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한 노인은 말했다.
“안 와도 돼.”
내가 놀라자 웃었다.
“살아서 잘 있으면 됐지.”
그 말이 좋았다.
모든 관계가 돌아옴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 조금 가벼워졌다.
떠나기 전 후손 몇 명을 따로 만나 재산과 일을 정리했다.
큰 부자가 아니었다.
그 시대 기준으로 생활 기반은 있었다.
땅.
가축.
도구.
사람과의 약속.
나는 가능한 한 명확히 나눴다.
사람들은 의외로 싸우지 않았다.
아마 미리 많이 나눠놨기 때문일 것이다.
한 젊은 후손이 물었다.
“이건 안 가져가세요?”
작은 금속 도구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길에서 필요할 텐데.”
“새로 구하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미 길에서는 적게 가진 사람이 편하다는 걸 배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에게 말했다.
“너 써.”
“제가요?”
“응.”
젊은이는 좋아했다.
그 순간 물건이 다시 의미를 얻었다.
내게는 짐.
그에게는 시작.
나는 떠나는 사람이 모든 걸 붙잡고 있으면 남는 사람이 시작할 수 없다는 걸 조금 알게 됐다.
왕위를 넘길 때도,
재산을 넘길 때도,
수천 년 뒤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서 만나게 된다.
마지막 며칠 동안 나는 후손들에게 내 출생 이야기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앞으로 일을 물었다.
“저 밭은 누가 써요.”
“가축은.”
“도구는.”
“강 건너 사람과 약속은.”
생활은 계속됐다.
나는 하나씩 넘겼다.
이 과정에서 알았다.
떠남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이었다.
내가 없을 때 누가 결정할지.
누가 돌볼지.
누가 책임질지.
그걸 정하지 않으면 실제로 떠난 게 아니었다.
예전에 나는 길을 걸어 사라지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책임은 발보다 늦게 따라왔다.
그때부터 나는 무언가 맡으면 떠나기 전에 넘기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항상 잘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첫 고향을 떠나는 일이 기준이 됐다.
후대에 영주와 왕이 되었을 때도,
떠나려면 먼저 남는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기서 시작됐다.
떠나는 전날 밤 가족 몇 명이 작은 식사를 준비했다.
거창한 작별은 아니었다.
그냥 같이 먹었다.
사람들은 떠나는 이야기를 일부러 많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떠들었다.
어른들은 내 여행길을 걱정했다.
“혼자 가지 마세요.”
“강 아래까지 같이 갈 사람 찾아요.”
“먹을 거 더 가져가요.”
나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한 젊은 후손이 웃었다.
“진짜 사무 할아버지 아버지 맞네요.”
“왜.”
“사무 할아버지도 괜찮다고만 했대요.”
나는 웃었다.
가족의 말버릇이 세대를 건너 돌아왔다.
식사가 끝날 무렵 모두에게 말했다.
“잘 살아.”
너무 평범한 말이었다.
뭔가 더 중요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랑한다.
잊지 않겠다.
언젠가 돌아오겠다.
그런 말들.
어느 것도 완전히 진실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잘 살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은 울었다.
어떤 사람은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봤다.
내가 떠난 뒤에도 이 사람들이 살아갈 것을 처음으로 진짜 믿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갔다.
마지막 아이가 문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 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