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8화 — 나를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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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가 죽기 전날이라고 나는 오랫동안 믿었다.
[기록]
하지만 남아 있는 초기 기록을 보면 그 대화 뒤에도 적어도 여러 날을 더 살았다.
기억은 마지막 장면을 만들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 대화 자체는 있었다.
이라는 누워 있었다.
숨은 괜찮았다.
말도 할 수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았다.
“아버지.”
“응.”
“내가 예전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뭘.”
“잊어도 된다고.”
“기억하지.”
“그거 취소.”
나는 웃었다.
“왜.”
이라는 아주 작게 웃었다.
“조금은 기억해.”
“얼마나.”
“몰라.”
나는 그녀 손을 잡았다.
“안 잊어.”
이라가 눈을 굴렸다.
“그 말은 못 믿겠다니까.”
“그럼 뭘 원해.”
이라는 생각했다.
“아버지 마음대로.”
“뭐야 그게.”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지 정할 수 있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라는 천장을 봤다.
“엄마 목소리 기억나?”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완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말투는 기억했다.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리는 없었다.
“아니.”
내가 말했다.
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사실이 이상했다.
네라가 죽은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라에게는 평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도 엄마 기억나잖아.”
이라가 말했다.
“응.”
“그럼 됐지.”
나는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이라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
“응.”
“아까 말한 거 또 취소.”
“뭘.”
“조금은 기억하라고 한 거.”
나는 웃었다.
“왜 자꾸 바꿔.”
“그냥.”
이라가 말했다.
“기억하고 싶은 만큼 기억해.”
그리고 잠들었다.
그녀는 며칠 뒤 죽었다.
나는 이라를 사무와 네라가 있는 곳 가까이에 묻었다.
내가 약속한 대로,
그녀의 아이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 뒤로 그 후손들을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았다.
◆이라의 마지막 시기에는 내가 더 자주 찾아갔다.
그녀는 내가 너무 자주 온다고 불평했다.
“할 일 없어?”
“없어.”
“거짓말.”
“진짜.”
“떠날 준비한다며.”
“조금.”
이라는 웃었다.
“아버지의 조금은 길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주 잠들었다.
깨어 있을 때는 바구니를 엮거나 아이들과 이야기했다.
나는 옆에서 보고 있었다.
어느 날 이라가 물었다.
“아버지, 엄마 얼굴 기억나?”
“응.”
대답이 너무 빨랐다.
이라는 알아챘다.
“정말?”
나는 떠올리려 했다.
젊은 네라.
늙은 네라.
중간 얼굴.
전부 섞였다.
“어느 얼굴?”
이라가 웃었다.
“그게 답이네.”
“뭐가.”
“기억한다는 게 하나가 아니잖아.”
그녀는 자기 손을 봤다.
“나는 엄마가 화내던 얼굴이 제일 잘 기억나.”
나는 웃었다.
“나도.”
“거짓말. 아버지는 예쁜 얼굴 기억하려고 하잖아.”
들켰다.
이라는 말했다.
“그것도 하지 마.”
“뭘.”
“좋은 것만 남기려는 거.”
네라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다들 왜 나한테 기억하라고 했다가 잊으라고 했다가.”
이라는 웃었다.
“아버지가 귀찮아서.”
그게 마지막까지 이라다운 답이었다.
이라가 마지막으로 큰 가족 모임에 나온 날이 있었다.
걷기가 힘들어 사람들이 부축했다.
나는 대신 안아 옮기겠다고 했다.
이라가 거절했다.
“내가 걷어.”
“힘들잖아.”
“그래도.”
나는 참았다.
손자와 손녀들이 양쪽에서 부축했다.
이라는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그 모습을 보며 네라가 떠올랐다.
사람은 끝까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 한다.
나는 자꾸 대신하려 했다.
이라가 앉은 뒤 나를 불렀다.
“참았네.”
“뭘.”
“안 들어서.”
“혼날까 봐.”
“잘했어.”
나는 웃었다.
모임에서 아이들이 이라 주변에 모였다.
그녀는 이야기 하나를 했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물고기 잡다 넘어진 이야기.
나는 항의했다.
“그걸 왜 해.”
아이들이 웃었다.
이라가 말했다.
“엄마한테 들었어.”
그 순간 네라 이야기 하나가 이라를 거쳐 다음 세대에 넘어갔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봤다.
이야기가 사람보다 오래 갈 수 있다는 걸 처음 선명히 느꼈다.
물론 이야기도 바뀐다.
아마 몇 세대 뒤에는 내가 물고기를 잡다 강 전체에 빠졌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언가는 갔다.
앞으로.
이라가 죽기 전 마지막 며칠은 사무 때와 달랐다.
이라는 말이 적었다.
자주 잤다.
나는 옆에 앉아도 할 일이 없었다.
한 번은 그녀가 눈을 뜨고 말했다.
“아버지 또 보고 있네.”
“뭘.”
“나 늙는 거.”
“아니.”
“거짓말.”
나는 웃었다.
이라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잡았다.
“아버지 손 진짜 젊다.”
“그 얘기 싫어.”
“나는 이제 재밌어.”
“뭐가.”
“아버지가 아직도 싫어하는 거.”
그녀는 아주 약하게 웃었다.
“이제 좀 받아들일 때 안 됐어?”
“뭘.”
“아버지는 안 늙는 거.”
나는 답하지 못했다.
그 시점에는 사실 거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인간과 같은 속도로 늙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인정하면 무언가가 확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라는 말했다.
“우리 다 봤잖아.”
“응.”
“엄마도. 사무 오빠도.”
“응.”
“나도.”
나는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러니까.”
이라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이제 다음 살아.”
나는 화가 났다.
“아직 안 죽었어.”
이라는 눈을 감았다.
“알아.”
그리고 웃었다.
“오늘은 아직.”
그 말이 너무 이라다웠다.
이라가 많이 약해진 뒤 나는 그녀 손을 자주 봤다.
네라 손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라가 말했다.
“엄마 손 기억나?”
“응.”
“확실해?”
나는 멈췄다.
“조금.”
“그게 맞아.”
이라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도 엄마 손 정확히 기억 안 나.”
“너는 더 최근인데.”
“그래도.”
그 말이 조금 위로됐다.
나만 잊는 게 아니었다.
인간 기억은 원래 흐려진다.
내 문제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라는 말했다.
“아버지는 잊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느린가 봐.”
“무슨 뜻이야.”
“기억은 계속 없어지는데 삶은 안 끝나잖아.”
나는 그 문장을 오래 생각했다.
그게 내 삶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라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한 말이야.”
중요한 말은 자주 그렇게 나온다.
이라가 마지막으로 내게 부탁한 것은 의외로 사소했다.
“저 상자.”
나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봤다.
작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뭐.”
“내 딸 줘.”
“직접 주면 되잖아.”
이라가 나를 봤다.
나는 바로 후회했다.
“미안.”
이라는 웃었다.
“괜찮아.”
상자 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바구니 만드는 도구.
작은 돌.
네라에게서 받은 천 조각.
나는 하나씩 봤다.
“이걸 다?”
“응.”
“뭐라고 말해.”
“그냥 내 거라고.”
그게 전부였다.
나는 물었다.
“뭐가 뭔지 설명 안 해?”
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걔가 자기 뜻 붙이겠지.”
나는 또 배웠다.
물건의 의미도 상속되는 게 아니라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내가 모든 설명까지 붙잡아둘 필요는 없었다.
이라가 말했다.
“아버지는 맨날 설명하려고 해.”
“알아야 하잖아.”
“몰라도 쓸 수 있어.”
네라 같았다.
그날 상자를 딸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울면서 받았다.
나는 물건 이름을 하나하나 설명하려다 멈췄다.
이라 말대로 그냥 건넸다.
이상하게 그게 더 맞는 방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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