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7화 — 이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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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가 죽은 뒤 이라는 더 조용해졌다.
이미 노인이었다.
그래도 손은 계속 움직였다.
바구니를 만들었다.
천을 꿰었다.
손녀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자주 찾아갔다.
이라의 남편은 오래전에 죽었다.
아이들도 모두 자기 집이 있었다.
우리는 가끔 둘만 앉아 있었다.
“사무 오빠 보고 싶어?”
이라가 물었다.
“응.”
“엄마는?”
“응.”
“할머니는?”
나는 웃었다.
“네 할머니?”
“아버지 엄마.”
나는 대답하기 전에 오래 생각했다.
“얼굴이 잘 기억 안 나.”
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화 안 나?”
“왜.”
“내가 잊어서.”
이라는 바구니를 계속 엮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만큼 기억하면 되지.”
또 그 말이었다.
“너는 왜 그렇게 쉽게 말해.”
“쉽게 말하는 거 아닌데.”
이라는 손을 멈췄다.
“나는 아버지가 나를 완벽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
나는 그녀를 봤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무 잔인하잖아.”
“뭐가.”
“계속 다 기억하면.”
이라는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여기 안에 죽은 사람만 계속 늘어날 거 아냐.”
나는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좀 잊어도 돼.”
이라는 다시 바구니를 엮었다.
“대신 이상하게 기억하진 마.”
“그건 어떻게 해.”
이라는 웃었다.
“그건 알아서 해.”
◆이라와 둘이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사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라가 말했다.
“오빠 마지막까지 말 많았지?”
“응.”
“원래 그랬어.”
“어릴 때는 더.”
“아버지가 더 했어.”
나는 부정했다.
이라는 웃었다.
“사무 오빠 죽으니까 아버지 더 조용해졌네.”
“그런가.”
“응.”
나는 사무 없는 마을이 낯설었다.
어디를 가도 흔적이 있었다.
그가 고친 벽.
쓰던 지팡이.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
사무 집에서는 그의 아들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자리가 비면 세상이 알아서 채우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서운했다.
이라는 말했다.
“왜.”
“뭐가.”
“사무 오빠 없이도 잘 돌아가서 기분 나쁘지.”
나는 놀랐다.
“조금.”
이라는 웃었다.
“나도.”
우리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근데 그게 좋은 거겠지.”
이라가 말했다.
“왜.”
“오빠가 잘 살았다는 거니까.”
나는 그 생각을 처음 해봤다.
사람이 사라져도 주변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성공일 수 있다는 것.
그 생각은 훗날 나라와 제도를 만들 때 다시 떠오른다.
사무가 죽은 뒤에도 그의 가족은 살았다.
그가 만든 밭은 남았다.
아이들은 일했다.
세상은 계속됐다.
그게 사무의 삶을 작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는 방식일 수도 있었다.
이라와 사무가 없는 첫 식사를 했던 날이 있었다.
정확히는 사무가 죽은 뒤,
이라와 나 둘만 남았던 식사.
네라도 없고.
부모도.
예전 가족의 중심 인물 중 살아 있는 사람은 둘.
이라는 음식 한쪽을 내 쪽으로 밀었다.
“먹어.”
“먹고 있어.”
“그건 먹은 게 아니야.”
네라와 똑같았다.
나는 웃었다.
이라도 웃었다.
“왜.”
“엄마 같아서.”
이라는 잠깐 조용해졌다.
“나도 가끔 내가 엄마 같아.”
“싫어?”
“아니.”
그녀는 음식을 조금 먹었다.
“엄마가 없어졌는데도 이런 건 남네.”
“응.”
“오빠도.”
“응.”
우리는 사무가 하던 농담을 하나 떠올렸다.
둘이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웃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대화에 들어오는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종종 죽은 사람의 말을 대신했다.
‘네라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사무면 저기서 웃었을 거다.’
그게 정확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시간이 갈수록 틀려졌을 것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도움이 됐다.
이라와 나는 네라 선반에서 가져온 작은 돌 하나를 놓고 오래 이야기했다.
이라는 그 돌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있어?”
내가 물었다.
“응.”
“왜.”
이라는 나를 봤다.
“아버지는 펜던트 왜 갖고 있어.”
“다르지.”
“뭐가.”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이라는 웃었다.
“다 똑같아.”
“그 돌 누가 준 건지도 모르잖아.”
“엄마가 좋아했잖아.”
그게 이유였다.
나는 펜던트를 만졌다.
네라가 직접 줬다는 사실.
이라는 돌을 손바닥에 올렸다.
“이건 내가 엄마 선반에서 맨날 봤어.”
둘 다 기억을 붙잡는 물건이었다.
중요도의 차이는 누가 정하는가.
나는 더 이상 이라에게 그 돌이 쓸모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라가 말했다.
“나 죽으면 이거 내 딸 줄 거야.”
“왜.”
“그 애도 알아.”
“뭘.”
“할머니 돌.”
나는 웃었다.
네라의 ‘쓸모없는 물건’이 세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펜던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좋았다.
이라와 나는 사무 집을 지나갈 때마다 잠깐 멈췄다.
안에는 사람이 살았다.
그의 아들.
손자.
아이들.
집은 비지 않았다.
이라가 말했다.
“오빠가 좋아하겠다.”
“뭘.”
“시끄러운 거.”
사무는 조용한 집을 싫어했다.
맞았다.
나는 그 집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걸 들으며 서 있었다.
사무가 없어도 집은 사무답게 남아 있었다.
이라가 말했다.
“아버지 떠나면 우리 집도 이렇게 남을 거야.”
“내 집은.”
“누가 쓰겠지.”
나는 이상하게 그 말이 싫지 않았다.
한때 집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죽음처럼 느꼈다.
이제는 반대로 생각했다.
사람이 없어도 집이 계속 쓰이는 것.
그게 살아남는 방식일 수 있었다.
이라가 물었다.
“그래도 돌아오고 싶어?”
“가끔.”
“돌아오면 달라져 있을 거야.”
“알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대답했다.
“아마.”
처음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라와 나는 어느 날 사무가 쓰던 오래된 길을 함께 걸었다.
길이라고 해봐야 밭 사이 좁은 흙길이었다.
사무가 살아 있을 때는 별 의미 없었다.
죽고 나니 ‘사무가 자주 다니던 길’이 됐다.
이라가 말했다.
“사람 죽으면 별거 다 의미 생겨.”
“그러게.”
“엄마 컵도 그랬잖아.”
나는 네라가 쓰던 그릇을 떠올렸다.
평소에는 그냥 그릇.
죽은 뒤에는 네라 물건.
사람은 사라지면서 주변 사물에 의미를 나눠주는 것 같았다.
이라가 말했다.
“아버지 죽으면 뭐가 남을까.”
“왜 다들 나 죽이는 얘기만 해.”
“궁금해서.”
나는 생각했다.
펜던트.
칼.
기록.
후손.
그리고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 얼굴이었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할 얼굴.
그 생각이 싫었다.
“모르겠다.”
이라고 웃었다.
“좋네.”
“뭐가.”
“이제 바로 모른다고 하네.”
나는 욕했다.
우리는 사무가 걷던 길 끝까지 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좋았다.
사무 삶의 대부분도 그런 평범한 길이었을 것이다.
역사에 남지 않는 길.
길 끝에서 이라가 먼저 돌아섰다.
“가자.”
나는 사무가 걷던 길을 한 번 더 보고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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