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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4화 — 시간이 나만 비켜갔다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34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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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는 노인이 되었다.

이라도 그랬다.

둘 다 또래보다 건강했다.

사무는 오래 걸었고,

이라의 손은 여전히 일을 잘했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장수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맞았다.

다만 나는 장수가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였다.

사무의 손자는 이미 성인이었고,

그의 아이도 태어났다.

나는 증조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집 안에서는 그냥 아버지,

할아버지,

그 이상이었다.

외부 사람들은 더 혼란스러워했다.

어느 날 아주 어린 아이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야?”

“응.”

“근데 왜 젊어?”

주변 어른들이 얼어붙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도 몰라.”

아이는 쉽게 납득했다.

“그렇구나.”

그리고 뛰어갔다.

어른들은 그렇게 못 했다.

사람들의 태도가 변했다.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몰래 도움을 구하는 사람도 생겼다.

병든 아이를 데려와 내 손을 잡게 했다.

나는 화를 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당신은 다르잖아.”

“그래서?”

“뭔가 알 수도 있지.”

나는 몰랐다.

아이를 살릴 수 없었다.

며칠 뒤 죽었다.

그 가족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해했다.

그게 더 싫었다.

나는 사무에게 말했다.

“떠나야겠다.”

사무는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알아.”

“화 안 나?”

“예전에는 났어.”

“지금은?”

사무가 웃었다.

“이제 나도 늙어서 귀찮아.”

나는 웃었다.

사무도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조금만 더 있어.”

나는 또 남았다.

증조부가 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자주 헷갈렸다.

한 아이가 사무를 가리켜 “할아버지”라고 하고,

나를 가리켜 “젊은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어른들은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나는 그냥 내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아이들은 금방 적응했다.

어느 날 아주 어린 증손자가 내 얼굴을 잡고 물었다.

“왜 안 늙어?”

나는 말했다.

“나도 몰라.”

“사무 할아버지는 늙었어.”

“응.”

“이라 할머니도.”

“응.”

“너는?”

그 아이는 나를 ‘너’라고 불렀다.

나는 오히려 좋았다.

세대 호칭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조금 늦나 봐.”

“얼마나.”

“많이.”

아이는 납득했다.

그날 저녁 사무가 말했다.

“저 애는 아버지 그냥 사람으로 보네.”

“응.”

“부럽다.”

“왜.”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잖아.”

맞았다.

아이에게 나는 그냥 이상한 친척.

어른에게는 설명해야 하는 존재.

그 차이가 컸다.

그러다 어느 날 병든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이 또 생겼다.

이번에는 마을 안 사람이 아니었다.

멀리서 왔다.

“젊음을 나눠줄 수 있다고 들었다.”

나는 화가 났다.

“누가 그런 소리 했어.”

그는 몰랐다.

소문은 출처 없이 자란다.

나는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가족은 실망했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결심이 조금 더 굳었다.

내가 여기 오래 있을수록 이야기만 커질 것이다.

떠나는 건 나를 위한 일만이 아니었다.

후손들이 늘어나면서 식사 자리가 더 복잡해졌다.

누가 누구 아이인지 순간 헷갈릴 때가 있었다.

한번은 손자 이름을 증손자 이름으로 불렀다.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아버지.”

사무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어떻게 헷갈려.”

“사람 많잖아.”

나는 기분이 나빴다.

내 기억이 이미 가족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

나는 불멸한 몸이면 기억도 같이 따라올 줄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약속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느 날 가족 모임 뒤 혼자 이름을 다시 적어봤다.

사무 자녀.

이라 자녀.

그 아래.

틀린 부분이 있었다.

다음 날 사무에게 확인했다.

그가 웃었다.

“이제 족보 만드는 거야?”

“똑바로 알아두려고.”

“왜.”

“가족이니까.”

사무가 잠시 생각했다.

“그 애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나는 멈췄다.

맞았다.

내가 혼자 모든 가족을 기억할 필요는 없었다.

각자 자기 관계를 알고 있었다.

나는 불멸이라는 이유로 가족 전체의 기록자가 되려고 했다.

그것도 일종의 오만이었다.

그날부터 조금 놓았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믿으려고 했다.

쉽지는 않았다.

세대가 늘어나면서 내 역할도 이상해졌다.

어린 사람들은 나에게 옛날 일을 물었다.

“사무 할아버지 어릴 때 어땠어요?”

“말 안 들었지.”

사무가 옆에서 화냈다.

“아버지!”

사람들이 웃었다.

“이라 할머니는요?”

“말 더 안 들었어.”

이라가 말했다.

“거짓말.”

나는 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문제는 듣는 사람들이 그걸 ‘아주 옛날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생생한 일이었다.

한 젊은이가 말했다.

“그때는 여기 집도 별로 없었다면서요.”

“응.”

“벽도 없고?”

“응.”

“그럼 이 마을 생기기 전부터 계셨네요.”

나는 바로 반박했다.

“마을은 있었어.”

“지금이랑 다르잖아요.”

그 말에 멈췄다.

맞았다.

이곳도 이미 변했다.

집 수.

길.

물길.

사람들.

내가 태어난 곳에서 느낀 변화가 여기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소가 같은 이름이면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러 겹의 장소가 포개져 있었다.

사무가 젊던 마을.

아이들이 많던 마을.

네라가 살아 있던 마을.

지금의 마을.

나는 같은 곳에서 여러 시대를 보기 시작했다.

아직 수천 년을 산 것도 아닌데.

그 감각이 처음으로 조금 무서웠다.

증손자 세대가 자라면서 나는 더 자주 이름을 틀렸다.

처음에는 창피했다.

나중에는 그냥 물었다.

“너 누구 아이였지.”

아이들은 대답했다.

어른들도.

그게 더 나았다.

모르는 척 알고 있는 척하는 것보다.

어느 젊은 후손은 웃으며 말했다.

“저를 기억 못 하셔도 괜찮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이라와 닮았다.

“왜.”

“저는 기억하니까요.”

나는 잠깐 말이 없었다.

관계는 양쪽이 똑같이 기억해야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한쪽이 잊어도 다른 쪽에는 남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위로였고,

조금 두려웠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잊힌 사람’이 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잊은 사람’으로 남게 될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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