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3화 — 약속을 지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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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라가 죽었다고 바로 떠나지는 않았다.
약속 때문이었다.
사무와 이라가 정리할 것을 정리하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따랐다.
땅.
가축.
도구.
집.
저장해둔 곡물.
내가 갖고 있던 물건들을 나눴다.
사무는 받기 싫어했다.
“아버지가 써.”
“난 떠날 거야.”
“언제.”
“조금 있다가.”
“조금이 얼마인데.”
“모르겠다.”
사무가 한숨을 쉬었다.
“그 말 정말 싫어.”
이라에게는 땅보다 물건을 더 줬다.
그녀는 필요한 것만 받았다.
“이건 사무 오빠 줘.”
“너도 필요하잖아.”
“난 충분해.”
이라는 늘 그랬다.
네라와 닮았다.
손자들에게는 작은 것들을 줬다.
좋은 칼 하나.
사냥 도구.
가축.
어린아이에게는 장신구.
큰 재산은 아니었다.
당시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살 수 있는 기반이었다.
땅.
물.
곡물.
가축.
사람과의 관계.
나는 그것들을 나누었다.
그러고도 떠나지 않았다.
사무가 물었다.
“왜 아직 있어?”
“너희 엄마 묻고 바로 가면 혼날 것 같아서.”
사무가 웃었다.
“맞아.”
이라도 웃었다.
그 웃음이 좋았다.
나는 몇 계절 더 남았다.
사무의 손자 하나가 결혼했다.
그걸 보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이라가 아팠다.
나는 또 남았다.
이라가 나은 뒤에는 사무가 다리를 다쳤다.
또 남았다.
항상 이유가 있었다.
사실 이유는 하나였다.
떠나는 게 무서웠다.
네라가 없는 집보다,
사무와 이라까지 없는 세상이 더 무서웠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네라가 부탁한 대로 바로 떠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며칠만.
그다음 한 달.
계절 하나.
이유는 계속 생겼다.
사무 손자가 결혼한다고 했다.
보지 않고 갈 수 없었다.
이라가 아팠다.
나을 때까지 남았다.
사무가 다리를 다쳤다.
또 남았다.
나는 계속 ‘이 일까지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항상 다음 일이 있었다.
아이 태어남.
혼인.
병.
수확.
장례.
사람 사는 일은 끝나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사무가 말했다.
“아버지.”
“왜.”
“엄마가 바로 가지 말랬지, 영원히 있으랬어?”
나는 화가 났다.
“왜 나 보내.”
“보내는 게 아니라.”
사무가 말을 고르다 웃었다.
“엄마 말 제대로 들으라고.”
나는 웃지 않았다.
사무는 진지해졌다.
“아버지 여기 있으면 계속 이유 생겨.”
맞았다.
“나 때문에 남고.”
“응.”
“이라 때문에 남고.”
“응.”
“우리 애들 때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무가 말했다.
“그럼 언제 가.”
나는 처음으로 솔직하게 답했다.
“무서워서 못 가.”
사무가 조용해졌다.
“뭐가.”
“혼자.”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자 이상하게 편했다.
사무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조금 더 있어.”
나는 웃었다.
“보내더니.”
“조금.”
우리는 둘 다 ‘조금’이 얼마나 긴지 몰랐다.
적어도 사무에게는.
나에게는 더더욱.
네라 장례 뒤 첫 수확철이 왔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일했다.
나도.
그런데 어떤 순간마다 네라를 찾았다.
곡물을 펼치다가.
물길을 확인하다가.
저녁때.
몸이 먼저 찾았다.
무슨 말을 들을 것 같아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났다.
기억은 알고 있는데 몸은 늦게 배웠다.
네라가 없다는 사실을.
사무는 나를 자주 자기 집으로 불렀다.
“저녁 먹고 가.”
“됐어.”
“엄마 없다고 혼자 먹지 마.”
“혼자 먹는 게 뭐 어때.”
“아버지 혼자 먹으면 이상해.”
사무 논리는 늘 단순했다.
나는 결국 갔다.
아이들이 시끄러웠다.
사무 아내가 음식을 내왔다.
손자들이 싸웠다.
평범한 집이었다.
그 평범함 속에서 조금 숨이 쉬어졌다.
그러다 어떤 아이가 네라가 하던 말을 똑같이 했다.
“도구 제자리에 둬.”
나는 굳었다.
사무가 내 얼굴을 봤다.
“엄마 같지?”
“응.”
둘 다 웃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알았다.
가족을 잃고 나면 사람은 그 사람 흔적을 피하는 게 아니라 찾아다닌다.
목소리 하나.
표정.
말버릇.
어디든.
나는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떠나면 그런 흔적까지 다 끊길 것 같아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반대가 됐다.
남아 있을수록 네라 없는 자리를 계속 확인하게 됐다.
그것도 고통이었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답은 없었다.
나는 답 없는 선택을 싫어했다.
그래서 계속 미뤘다.
남아 있는 동안 나는 네라 없는 계절을 하나씩 처음 겪었다.
네라 없는 첫 비.
네라 없는 첫 수확.
네라 없는 첫 추운 밤.
무슨 날마다 ‘첫’이라는 생각이 붙었다.
처음에는 그걸 세었다.
나중에는 지쳤다.
사무가 말했다.
“아버지, 오늘도 엄마 없는 첫 뭐야?”
비꼬는 말이었다.
나는 화를 내려다 웃었다.
“첫 번째로 네가 맞을 날.”
“그건 예전에 많았어.”
우리는 웃었다.
사무는 일부러 나를 일상으로 끌어당겼다.
이라도 그랬다.
“아버지 이것 좀 봐.”
“아버지 저쪽 가서 도와.”
“아버지 애들 좀 데리고 있어.”
가족은 슬픈 사람에게 슬퍼할 시간을 주면서도,
너무 오래 빠져 있게 두지 않았다.
어느 날 손자 하나가 나를 끌고 강으로 갔다.
물고기를 잡겠다고.
나는 네라를 처음 확실히 기억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물고기 잡다 넘어진 날.
손자가 똑같이 미끄러졌다.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이는 화를 냈다.
“왜 웃어!”
그 말까지 비슷했다.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이가 당황했다.
“다쳤어?”
“아니.”
“왜 울어.”
“옛날 생각나서.”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네라 기억이 꼭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웃게 만드는 기억도 있었다.
그 사실 때문에 조금 더 남았다.
네라 없는 첫겨울이 왔을 때 나는 집 안에서 불을 오래 봤다.
예전에는 네라가 장작을 너무 많이 넣는다고 잔소리했다.
혹은 내가 너무 적게 넣는다고.
기억이 둘 다 있어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나는 혼자 장작을 넣었다.
불이 커졌다.
“많아.”
네라가 말할 것 같았다.
나는 하나를 빼냈다.
그러다 웃었다.
사무가 다음 날 와서 물었다.
“왜 혼자 웃어.”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 같아서.”
사무도 웃었다.
“나도 그래.”
그 순간 안도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이어가는 것.
가족 모두 각자 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서로 다른 네라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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