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31화 — 네라의 마지막 아침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기억]
네라는 그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이 문장은 너무 짧다.
그 겨울은 길었다.
밤마다 기침했고,
아침마다 조금씩 더 야위었다.
사무와 이라는 번갈아 왔다.
손자들도 왔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가져왔다.
누군가는 말없이 장작을 쌓아두고 갔다.
네라는 그런 도움을 싫어하는 척했다.
“내가 아직 일할 수 있어.”
그러면서 물그릇 하나 들고 숨을 골랐다.
나는 모른 척했다.
도와주면 화를 냈다.
안 도와주면 더 화를 냈다.
어느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침부터 일어나 앉았다.
물을 마셨다.
조금 먹었다.
“다 나았나 봐.”
내가 말했다.
네라는 나를 봤다.
“당신은 그런 걸 잘 믿네.”
“믿고 싶은 거지.”
“그게 더 나빠.”
그래도 그날은 많이 이야기했다.
사무가 어릴 때 곡물 자루 안에 숨어 잠든 일.
이라가 남의 집 닭을 자기 닭이라고 우긴 일.
내가 젊을 때 괜히 다른 마을 남자와 싸웠다가 네라에게 더 많이 혼난 일.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랬나?”
“그랬어.”
“네가 잘못 기억한 거 아니야?”
네라가 웃었다.
“벌써 기억 타령이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해가 조금 기울었을 때 사무와 이라가 돌아갔다.
네라는 피곤하다고 했다.
나는 자리를 깔아줬다.
그녀가 누웠다.
푸른 펜던트가 내 목에 닿았다.
네라가 손을 뻗었다.
나는 몸을 숙였다.
그녀가 펜던트를 잡았다.
“이거.”
“응.”
“진짜 안 잃어버렸네.”
“그러니까.”
“대단하다.”
“내가 그렇게 믿음이 없어?”
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나는 옆에 앉았다.
한동안 숨소리를 들었다.
조금 거칠었다.
그러다 잔잔해졌다.
나는 네라가 잠든 줄 알았다.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불이 작아졌다.
나는 장작을 하나 넣었다.
다시 옆에 앉았다.
네라의 손을 잡았다.
차갑지는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몰랐다.
아주 오래 지나고 나서야 숨소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름을 불렀다.
한 번.
두 번.
대답이 없었다.
어깨를 흔들었다.
네라.
다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손을 목에 댔다.
뭘 확인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나는 맥박을 지금처럼 재는 법도 몰랐다.
그냥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찾았다.
없었다.
나는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울지 않았다.
사무에게 가야 했다.
이라에게 알려야 했다.
사람들을 불러야 했다.
장례를 준비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해가 떠올랐다.
문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그 빛이 네라의 얼굴에 닿았다.
주름이 보였다.
눈가.
입가.
나는 그것을 오래 봤다.
젊은 네라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했다.
안 됐다.
그 순간 이미 오래전 얼굴이 흐릿했다.
내가 기억하는 네라는 지금 내 앞의 늙은 얼굴과 젊은 시절의 몇 장면이 섞여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큰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울었다.
푸른 펜던트를 손에 쥔 채로.
◆사무와 이라에게 알리러 가는 길은 짧았다.
평소에도 수없이 걸었던 길.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멀었다.
사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잠깐 서 있었다.
사무가 안에서 나왔다.
내 얼굴을 보고 바로 알았다.
“엄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는 아무 말 없이 문틀을 잡았다.
그 뒤에 있던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이라는 더 늦게 왔다.
그녀는 네라 얼굴을 오래 봤다.
울지 않았다.
대신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얼굴 옆으로 흐트러진 흰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나는 그 행동이 너무 네라 같아서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 이거 싫어했잖아.”
이라가 말했다.
“뭐.”
“머리 얼굴에 붙는 거.”
나는 몰랐다.
혹은 잊고 있었다.
이라는 네라의 작은 습관을 나보다 더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네라와 가장 오래 산 사람이어도,
네라를 가장 많이 기억하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는 걸.
사무는 바깥에 나가 장례 준비를 했다.
나는 계속 네라 옆에 있었다.
누군가 물을 가져왔다.
누군가는 천.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답답했을 것이다.
그날은 고마웠다.
네라 손이 차가워졌다.
나는 푸른 펜던트를 빼서 손바닥에 올려봤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진 자리.
흠집.
나는 그것을 다시 목에 걸었다.
잠깐 네라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같이 묻을까.
아주 잠깐.
그런데 네라가 가져가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를 가든.
잃어버리지 말고.
나는 목에 걸었다.
그 선택이 앞으로 수천 년을 따라오게 될 줄은 몰랐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더 모였다.
누군가 울었다.
누군가는 네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그중 몇 사람을 처음 봤다.
네라가 내가 모르는 삶을 얼마나 많이 살았는지 그때 느꼈다.
내 아내였지만,
그것이 네라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좋고 슬펐다.
사무가 장례 준비를 위해 사람들을 부르는 동안 나는 네라의 집 안을 정리하지 못했다.
정리라고 해봐야 할 것도 없었다.
평소 쓰던 자리.
물그릇.
작은 바구니.
옷.
그대로.
나는 자꾸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미 네라가 다시 쓰지 않을 것을 알면서.
이라가 말했다.
“아버지.”
“왜.”
“그냥 둬.”
“뭘.”
“엄마 물건.”
나는 손에 든 천을 봤다.
네라가 며칠 전까지 쓰던 것.
“정리해야 하잖아.”
“오늘 말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천을 내려놨다.
오늘 말고.
이런 말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라가 죽었는데도 우리는 계속 ‘오늘 말고’를 썼다.
장례는 내일.
물건은 며칠 뒤.
집은 나중.
죽음은 한순간이지만 떠나보내는 일은 날짜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이라가 네라 머리를 정리한 뒤 한참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물었다.
“괜찮아?”
이라가 나를 봤다.
“아버지는?”
“몰라.”
“그럼 나도 몰라.”
우리는 둘 다 조금 웃었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은 나왔다.
그 사실이 처음에는 죄책감처럼 느껴졌다.
사무가 돌아왔다.
“사람들 올 거야.”
“응.”
그는 네라 얼굴을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엄마 진짜 조용하네.”
사무가 말했다.
네라는 살아 있을 때 잠들어도 가끔 말을 했다.
잠꼬대.
뒤척임.
기침.
그 모든 소리가 없었다.
나는 그제야 ‘없음’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았다.
밤이 되자 가족 몇 명이 집에 남았다.
사람들이 네라 옆에서 번갈아 잤다.
나는 자지 않았다.
이라가 중간에 깨어 나를 봤다.
“아버지 아직도?”
“안 졸려.”
“거짓말.”
네라와 똑같은 말.
그 순간 눈물이 났다.
이라가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네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말하면 너무 커질 것 같았다.
밖에서 새벽빛이 들어왔다.
나는 그것이 네라 없는 첫 번째 아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과 같은 색의 하늘이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화가 났다.
세상은 왜 그대로인가.
누군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사라졌는데.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은 개인의 슬픔에 맞춰 색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안에서 색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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