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7화 — 떠날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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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가지 않을 뿐 언젠가는 가야 했다.
네라가 죽은 뒤.
사무가 나보다 늙은 뒤.
이라도.
손자들도.
언젠가 사람들은 더 많이 묻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물건을 줄였다.
이미 쓰지 않는 도구를 사무에게 줬다.
땅 일부를 이라의 가족이 쓰도록 했다.
가축은 손자들에게 나눴다.
네라가 알아챘다.
“뭐 해?”
“정리.”
“왜.”
“그냥.”
“떠날 사람처럼?”
나는 멈췄다.
네라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죽으면 가려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맞겠지.”
그녀가 먼저 말했다.
“네라.”
“여기 있으면 사람들 더 이상하게 볼 테니까.”
“그 얘기 하지 마.”
“왜.”
“싫어.”
네라는 나를 봤다.
“당신은 내가 죽는 얘기만 나오면 화내.”
“좋은 얘기 아니잖아.”
“안 한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네라는 창고 안을 둘러봤다.
“사무한테 많이 줬네.”
“필요하니까.”
“이라한테도?”
“응.”
“손주들도?”
“응.”
“나는?”
나는 네라를 봤다.
“뭐가 필요해?”
네라는 잠깐 생각했다.
“당신.”
나는 웃지 못했다.
네라도 웃지 않았다.
그날 밤 네라는 내 목의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잡았다.
“이건 가져가.”
“뭘?”
“나중에.”
“어디.”
“어디든.”
나는 말을 막으려 했다.
네라가 손을 놓지 않았다.
“이것까지 누구 주지 마.”
“알았어.”
“잃어버리지 말고.”
“안 잃어.”
네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믿기 싫은데.”
그러고는 웃었다.
◆재산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떠날 준비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가진 것을 자꾸 ‘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땅.
가축.
도구.
사실 대부분 가족과 같이 만든 것이었다.
네라가 일했고,
사무와 이라도.
그런데 내가 젊고 오래 남아 있으니 모든 것이 내 이름 아래 붙는 느낌이었다.
그게 싫었다.
사무에게 땅 일부를 넘겼다.
그는 처음엔 안 받겠다고 했다.
“아버지 거잖아.”
“우리 거였어.”
“그래도.”
“네가 계속 쓰잖아.”
이라는 필요한 것만 받았다.
“이거면 돼.”
“더 가져.”
“왜.”
“있으니까.”
“아버지는 물건 많으면 싫어하잖아.”
맞았다.
네라는 옆에서 말했다.
“자기 싫은 걸 남한테 주네.”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가축도 나눴다.
도구도.
조금씩 내 집이 비어갔다.
신기하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물건이 줄면 떠나기 쉬워질 줄 알았다.
사람에게 준 물건은 오히려 관계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물건을 나누는 일을 시작하자 사람들도 눈치챘다.
이웃 하나가 물었다.
“떠나?”
“아니.”
“그런데 왜 다 줘.”
“안 쓰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는 믿지 않았다.
소문이 또 생겼다.
내가 죽을 준비를 한다는 말.
멀리 간다는 말.
누군가는 내 힘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정말 사람들은 빈자리를 못 견딘다.
나는 직접 설명하려 했다.
“그냥 가족한테 나누는 거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또 다른 소문이 있었다.
나는 포기했다.
네라는 재미있어했다.
“이제 알겠어?”
“뭘.”
“사람 입 못 막는 거.”
“당신도 소문 많이 냈잖아.”
“나는 사실만 말했어.”
“그게 더 위험해.”
네라는 웃었다.
그 무렵 나는 떠날 때 가져갈 물건을 실제로 하나씩 생각했다.
칼.
옷.
도구.
먹을 것.
펜던트.
너무 적었다.
몇십 년의 삶을 들고 나가기엔.
그런데 더 챙기면 길에서 짐이 됐다.
삶과 짐 사이의 불균형이 이상했다.
사람은 오래 살아도 떠날 때 들고 갈 수 있는 건 두 손이 감당하는 만큼이었다.
내가 나눠준 것 중 사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의외로 낡은 도구였다.
“이거 내가 어릴 때 만지다가 혼난 거지.”
“맞아.”
“아직 있었네.”
“응.”
사무가 손에 쥐고 웃었다.
나는 새 도구를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낡은 것이 더 중요했다.
이라도 네라 선반에 있던 작은 돌 하나를 가져갔다.
“이건 왜.”
“엄마가 좋아했잖아.”
“쓸모 없는데.”
이라는 웃었다.
“엄마랑 똑같은 말 하네.”
나는 그제야 내가 네라의 물건 보는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가족이 물건을 나누는 과정은 상속이라기보다 기억을 나누는 일이었다.
나는 그중 푸른 펜던트만 놓지 않았다.
누구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사무도 이라도 그것이 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네라가 내게 준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짐을 줄이면서 나는 오래된 칼 하나를 손에 들었다.
아버지 물건이라고 믿는 칼.
진짜 그 칼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물건.
사무에게 줄까 생각했다.
이미 더 좋은 칼이 있었다.
이라에게는 필요 없었다.
내가 가져갈까.
무거웠다.
결국 한참 들고 있었다.
네라가 말했다.
“가져가.”
“왜.”
“당신 아버지 거잖아.”
“아닐 수도 있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된 거지.”
“진짜가 아니면.”
네라가 말했다.
“진짜가 뭔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물건 자체의 출처?
내가 붙인 기억?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기능?
결국 칼은 가져가기로 했다.
훗날 그 칼은 잃어버린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도 모른다.
푸른 펜던트와 달리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이 꼭 덜 중요했다는 뜻은 아니다.
남는 것과 중요한 것은 같은 기준이 아니다.
정리를 계속하다 보니 내 몫으로 남은 것이 너무 적었다.
네라는 그걸 보고 말했다.
“당신 진짜 떠날 사람 같네.”
“아직 안 가.”
“알아.”
“왜 웃어.”
“예전부터 먼 데 가고 싶어 했잖아.”
“그랬지.”
“이제 가게 생겼는데 얼굴 왜 그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상상 속 여행에는 항상 설렘만 있었다.
실제 떠남에는 뒤에 남는 사람이 있었다.
네라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면 후회할 거야.”
그녀가 말했다.
“왜.”
“남고 싶을 테니까.”
“그럼 안 가면.”
“가고 싶겠지.”
나는 짜증냈다.
“답이 없잖아.”
네라는 웃었다.
“원래 그런 거야.”
나는 그 말을 싫어했다.
정답이 없는 선택을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나중에 권력을 쥐었을 때도 자꾸 모든 문제에 정답을 만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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