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ory Box
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6화 — 네라가 걷는 속도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26 / 370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네라는 걸음이 느려졌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빨라진 줄 알았다.

함께 강까지 걸을 때 자꾸 앞서갔다.

네라가 말했다.

“천천히.”

나는 걸음을 줄였다.

며칠 뒤 또 앞섰다.

“천천히.”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자주 나왔다.

나는 일부러 네라의 속도에 맞췄다.

예전에는 그녀가 내 앞을 걸었다.

바쁜 일이 있으면 나를 재촉했다.

이제는 내가 기다렸다.

그 차이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네라가 먼저 말했다.

“나 늙었지?”

“또 그 얘기야?”

“대답해.”

“조금.”

“조금?”

“많이.”

네라가 내 팔을 때렸다.

“말을 예쁘게 못 해.”

“정직하게 말하라며.”

“그런 건 적당히 거짓말해도 돼.”

우리는 웃었다.

강까지 내려갔다.

네라는 돌 위에 앉았다.

숨을 골랐다.

나는 옆에 앉았다.

강은 어릴 때와 같지 않았다.

물길이 조금 변했다.

둑을 만든 곳도 있었다.

집도 늘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네라가 말했다.

“여기 처음 왔을 때 기억나?”

나는 대답하기 전에 생각했다.

“우리가?”

“응.”

“기억나.”

사실 확실하지 않았다.

어떤 장면은 다른 날과 섞여 있었다.

네라는 웃었다.

“거짓말.”

“왜.”

“당신 기억 못 하지?”

나는 그녀를 봤다.

네라는 물을 바라봤다.

“나도 잘 기억 안 나.”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우리는 둘 다 잊고 있었다.

차이는 내가 훨씬 더 오래 잊게 될 것이라는 사실뿐이었다.

네라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머리카락에 흰색이 많았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한참 뒤 돌아갈 시간이 됐다.

네라가 일어났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잡았다.

손이 가벼웠다.

“천천히.”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네라는 나를 보더니 웃었다.

“이제 알겠네.”

네라가 걷는 속도가 느려진 뒤 나는 그녀보다 먼저 집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같이 출발하면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네라는 그 습관도 알아챘다.

“이제 나 기다리는 기술 늘었네.”

“연습했어.”

“쓸데없는 데 열심이야.”

우리는 웃었다.

강가에 가면 네라는 오래 앉았다.

나는 그 옆에서 작은 돌을 던졌다.

물결이 퍼졌다.

네라가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저거 좋아하네.”

“뭐.”

“돌 던지는 거.”

“재밌잖아.”

“어릴 때부터.”

나는 그 말을 듣고 네라 얼굴을 봤다.

“나 어릴 때 봤어?”

“봤지.”

“얼마나 어릴 때.”

네라는 생각했다.

“물고기 잡다 넘어질 정도.”

나는 웃었다.

“그게 처음 아니라고 했잖아.”

“내 기억에는 처음.”

“내 기억이랑 다르네.”

“그럼 내 게 맞아.”

네라다운 답이었다.

나는 그날 일부러 네라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많이 물었다.

우리 처음 집 만든 날.

사무 태어난 날.

이라가 어릴 때.

몇 개는 내가 기억한 것과 달랐다.

예전 같으면 내가 맞다고 우겼을 것이다.

이제는 그냥 들었다.

네라가 가진 내 과거가 곧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네라가 말했다.

“왜 오늘 옛날 얘기만 해.”

“그냥.”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나는 바로 화냈다.

네라는 웃었다.

“맞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강까지 함께 걷는 날이 줄어들었다.

네라가 피곤한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는 날은 있었다.

우리는 더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멀리까지 가지 않았다.

네라가 말했다.

“우리 처음 집 만들 때 기억나?”

“벽 다시 만든 거.”

“그것만 기억해?”

“당신이 나 밖에서 재운다고 했잖아.”

네라가 웃었다.

“진짜 재울 걸.”

“왜.”

“그 뒤로도 벽 맨날 대충 했어.”

나는 반박했다.

네라는 하나씩 사례를 들었다.

나는 대부분 기억이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기억이 벌써 나보다 안 좋은데.”

“말도 안 돼.”

“봐. 내가 더 많이 기억하잖아.”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네라가 눈치챘다.

“왜.”

“당신 죽으면.”

“또.”

“당신이 기억하는 것도 같이 없어지잖아.”

네라는 물을 봤다.

“그건 원래 그래.”

“싫어.”

“어쩔 수 없지.”

“기록하면.”

“다 기록할 수 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라가 웃었다.

“내가 오늘 뭐 먹었는지도 적을 거야?”

“그건 왜.”

“그런 게 사는 건데.”

그 말이 어려웠다.

중요한 일만 남기면 삶의 대부분이 빠진다.

다 기록하면 중요한 것이 묻힌다.

나는 아직 기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날 네라가 말했다.

“나중에 나 기억할 때 좋은 것만 기억하지 마.”

“왜.”

“그러면 내가 아니잖아.”

“나쁜 것도?”

“당신한테 화낸 것도.”

“그건 너무 많아서 다 못 해.”

네라가 팔을 때렸다.

나는 웃었다.

그 장면은 남았다.

네라는 어느 날 오래된 옷을 정리했다.

젊을 때 입던 것이었다.

입어보려다 포기했다.

“작아?”

내가 물었다.

“아니.”

“그럼.”

“지금 입으면 웃겨.”

“왜.”

“그냥.”

네라는 천을 손으로 쓸었다.

“이라 줄까.”

“이라가 입겠어?”

“천은 쓰겠지.”

결국 옷은 풀어서 다른 용도로 썼다.

네라가 말했다.

“사람은 다 이렇게 되는 거야.”

“뭐가.”

“모양 바뀌는 거.”

옷이 옷이 아니게 되고,

천이 다른 물건이 되는 것.

사람도 그렇다는 뜻인지 물으려다 그만뒀다.

네라는 그날 젊은 시절 물건 몇 개를 이라에게 줬다.

나는 옆에서 봤다.

“왜 다 줘.”

“안 쓰니까.”

“그래도 당신 거잖아.”

“이라가 쓰면 이라 거지.”

네라는 소유를 쉽게 넘겼다.

나는 잘 못했다.

사람도 물건도 오래 붙잡으려 했다.

그 차이가 떠날 준비를 하면서 더 선명해졌다.

네라가 강가에서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주변 풍경을 더 오래 보게 됐다.

예전에는 목적지만 봤다.

강에 가면 물.

밭에 가면 일.

길에 가면 다음 장소.

기다리는 시간이 생기니 다른 것이 보였다.

새.

바람에 눕는 풀.

멀리서 움직이는 사람들.

강물 색이 시간마다 달라지는 것.

네라는 말했다.

“당신 이제 좀 사람 같다.”

“전에는 뭐였는데.”

“맨날 급했잖아.”

“지금도 급해.”

“나 때문에 못 가지.”

나는 웃었다.

맞았다.

네라 속도에 맞추면서 나는 처음으로 느리게 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게 훗날 아주 오래 살 때 도움이 됐다.

시간이 많다고 사람이 천천히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더 많은 것을 하려고 조급해질 때가 많았다.

네라는 반대였다.

시간이 적어지고 있었는데도 지금을 오래 봤다.

그 역설을 나는 당시 이해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네라는 작은 꽃 비슷한 식물을 하나 꺾었다.

“왜.”

“예뻐서.”

“집 가면 시들잖아.”

“그러니까 지금 보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식물을 봤다.

정말 별것 아니었다.

작고,

금방 시들고,

며칠 뒤에는 버릴 것.

네라는 집까지 들고 갔다.

작은 그릇에 꽂았다.

다음 날 조금 시들었다.

그다음 날 더.

나는 버리려고 했다.

네라가 막았다.

“아직.”

“이미 죽었잖아.”

“그래도 예뻐.”

며칠 뒤 네라가 직접 버렸다.

나는 그 일을 오래 기억했다.

영원히 남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사라지기 때문에 보는 것도 있었다.

END OF CHAPTER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

다음 화

읽는 흐름을 끊지 않고 바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던 위치를 저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