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2화 — 사무의 흰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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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의 머리에서 흰 것이 보였을 때 나는 이미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익숙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큰아이는 곧 성인이 될 나이였다.
사무는 여전히 힘이 좋았다.
동년배 가운데 건강한 편이었다.
오래 걸어도 잘 지치지 않았고,
병도 잘 이겨냈다.
사람들은 말했다.
“아버지 닮아서 튼튼하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너무 많이 닮지는 않았다.
사무에게는 흰 머리가 생겼다.
눈가에 선도 깊어졌다.
손등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무엇인가 계산했다.
몇 년.
몇 계절.
누가 먼저 늙었는지.
사무는 그걸 알아챘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그만 봐.”
나는 놀랐다.
“뭘.”
“내 머리.”
“안 봤어.”
“봐.”
사무는 웃었다.
“엄마가 아버지보고 사람들 그만 보랬다며.”
네라가 말했다.
나는 네라를 노려봤다.
“그 얘기를 왜 해.”
“웃기잖아.”
사무가 자기 머리카락을 잡았다.
“이거 그렇게 신기해?”
“아니.”
“그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무가 잠시 웃음을 거뒀다.
“내가 아버지처럼 될 줄 알았어?”
그 질문은 너무 정확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끈을 내려놓았다.
“언제?”
“어릴 때.”
“그런 생각 안 했어.”
“거짓말.”
사무가 말했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사무는 계속했다.
“내가 열이 났을 때도 그랬고, 다쳤는데 빨리 나았을 때도 아버지 얼굴 봤어.”
사무도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라도 그랬다.
둘 다 쉽게 아프지 않았고, 또래보다 건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차이는 분명했다.
그들은 늙었다.
조금 느릴 뿐이었다.
“나도 기대했어.”
사무가 말했다.
“뭘.”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봤다.
사무는 웃었다.
이번에는 어린 시절 같은 웃음이었다.
“그랬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좋았을 것 같아?”
“모르지.”
사무는 자기 집 쪽을 봤다.
손자가 놀고 있었다.
“저 애가 늙는 걸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무가 나를 봤다.
“아버지.”
“응.”
“나 아버지보다 먼저 죽겠지?”
나는 즉시 부정하지 못했다.
그게 답이었다.
사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사무.”
“괜찮아.”
“뭐가 괜찮아.”
“다들 그러니까.”
그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사무의 흰머리가 늘어갈수록 나는 이상하게 그것을 세고 싶었다.
처음 한 가닥.
다음 몇 가닥.
관자놀이.
수염.
내가 보는 걸 사무는 싫어했다.
“아버지 또 세지.”
“뭘.”
“흰머리.”
“안 세.”
“눈으로 세잖아.”
나는 웃었다.
사무는 웃지 않았다.
“그거 싫어.”
“왜.”
“내가 아버지한테 시간처럼 보이는 것 같아.”
그 말에 멈췄다.
사무는 자기 손을 봤다.
“나는 그냥 나야.”
“알아.”
“아버지는 요즘 사람 보면 나이부터 보잖아.”
네라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는 또 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사무는 조금 있다 웃었다.
“그래도 이건 좋네.”
“뭐가.”
“흰머리 멋있잖아.”
나는 진지하게 봤다.
“안 멋있는데.”
사무가 욕했다.
우리는 웃었다.
그날부터 일부러 흰머리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사무가 하는 일을 봤다.
그는 사람을 잘 다뤘다.
나보다 말을 부드럽게 했다.
화가 나도 바로 소리치지 않았다.
네라를 닮은 면이 있었다.
나는 사무가 나보다 더 좋은 아버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조금 질투났다.
사무가 말했다.
“아버지는 왜 그래.”
“뭐가.”
“내가 뭐 잘하면 기분 나빠 보여.”
“아니야.”
“거짓말.”
가족은 항상 내 거짓말을 알아챘다.
나는 말했다.
“조금.”
“왜.”
“모르겠어.”
사무가 웃었다.
“나도 이제 아버지 없이 할 수 있어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았다.
사무는 자기 몸이 늙는 것을 나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느 날 손자가 사무 머리카락을 잡으며 말했다.
“하얘.”
사무가 말했다.
“멋있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늙었어.”
사람들이 웃었다.
사무도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사무가 나를 봤다.
“또.”
“뭐가.”
“그 얼굴.”
“무슨 얼굴.”
“장례 준비하는 얼굴.”
네라도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살아 있는데 왜 장례를 준비해.”
사무가 말했다.
“내가 묻고 싶은데.”
그 말에 멈췄다.
나는 살아 있는 사무를 보면서 계속 죽을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는 그걸 느꼈다.
그날 저녁 사무와 둘이 앉았다.
그가 말했다.
“아버지.”
“응.”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거 이제 알겠지.”
“확정된 거 아니야.”
사무가 코웃음을 쳤다.
“또.”
“뭐가.”
“모른다고 할 때랑 반대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괜찮아.”
“그 말 싫어.”
“왜.”
“맨날 괜찮다고 하니까.”
“그럼 안 괜찮다고 할까.”
“그것도 싫어.”
사무가 웃었다.
“아버지 진짜 까다롭네.”
나는 사무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아?”
사무는 오래 생각했다.
“죽는 거?”
“응.”
“무섭지.”
“그런데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
사무가 손자를 가리켰다.
“저기 있잖아.”
“뭐가.”
“내가 한 거.”
“아이?”
“응. 집도 있고. 사람도 있고.”
사무는 자기 손을 봤다.
“내가 없어져도 다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게는 내가 없어져도 세상이 남는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이 없어지고 나만 남는다는 사실이 더 커지고 있었다.
사무는 반대였다.
자기가 사라져도 남을 것을 보고 있었다.
사무는 손자를 불렀다.
“이리 와. 네가 이것 좀 들어.”
아이는 뛰어왔다.
나는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켜줬다.
사무의 흰머리가 많아진 뒤 어느 날 그는 내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했다.
“왜 나한테.”
“엄마 손 아프대.”
나는 서툴렀다.
사무가 몇 번 욕했다.
“귀 자르지 마.”
“가만있어.”
“아버지가 칼 들고 있으니까 더 무서워.”
나는 웃었다.
머리를 자르면서 가까이서 사무의 목을 봤다.
피부.
작은 점.
옛 흉터.
어릴 때부터 봐온 몸인데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간의 흔적이 있었다.
“사무.”
“왜.”
“어릴 때 여기 다쳤지?”
나는 목 뒤 흉터를 가리켰다.
사무가 손으로 만졌다.
“기억 안 나.”
“나무에서 떨어졌어.”
“내가?”
“응.”
“이라 아니야?”
나는 멈췄다.
또였다.
“너야.”
“확실해?”
확신했다.
그런데 35화의 사냥에서 사무가 ‘강에 빠진 건 이라’라고 할 장면처럼, 초기부터 기억 혼선을 조금씩 심는 게 좋았다.
사무가 웃었다.
“아버지도 이제 잘 모르네.”
“이건 알아.”
“그럼 됐어.”
나는 머리를 계속 잘랐다.
흰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사무가 아래를 봤다.
“많네.”
“조금.”
“또 조금.”
그는 웃었다.
나는 이번에는 같이 웃었다.
다 자르고 나니 사무가 물었다.
“어때.”
“더 늙어 보여.”
사무가 욕했다.
집 밖에서 네라가 웃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그때는 당연하게 들었다.
그해 사무는 작은 밭 하나를 새로 정리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따라가 일을 도왔다.
돌을 치우고,
흙을 고르고,
물길을 냈다.
중간에 사무가 말했다.
“여기까지만 해.”
“왜.”
“나머지는 내가 할게.”
“같이 하면 빨리 끝나.”
“알아.”
“그런데.”
사무는 삽 비슷한 도구를 땅에 꽂았다.
“아버지가 다 하면 나중에 내 애들이 내가 한 줄 모르잖아.”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게 중요해?”
“응.”
“왜.”
“내 밭이니까.”
나는 물러섰다.
사무는 혼자 일을 했다.
느렸다.
몇 번 잘못 파기도 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한참 뒤 사무가 먼저 물었다.
“여기 이상해?”
“조금.”
“어디.”
나는 알려줬다.
그는 직접 고쳤다.
그날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일했다.
사무가 먼저 하고,
필요할 때 묻고,
나는 답했다.
그 관계가 이상하게 편했다.
내가 앞에서 끌지 않아도 일이 됐다.
사무는 자기 힘으로 완성된 밭을 오래 봤다.
“좋네.”
내가 말했다.
사무가 웃었다.
“내가 했어.”
나는 장난으로 말했다.
“너 혼자 한 거 없어.”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
사무는 잠깐 멈추더니 웃었다.
“할아버지 말이지?”
“응.”
“그럼 아버지도 혼자 한 거 없네.”
“당연하지.”
말하고 나서 나는 놀랐다.
예전 같으면 쉽게 인정하지 못했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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