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1화 — 남아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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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외지인이 떠난 뒤 며칠 동안 마을은 조용했다.
정확히는 내 주변만 조용했다.
아이들은 그대로 뛰어다녔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물을 길었고,
가축은 먹이를 찾았고,
누군가는 곡물을 말렸다.
삶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됐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전에라면 그냥 지나쳤을 속삭임이 귀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멀리서 이야기하면 내 이름이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가까이 가면 대화가 끊기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랬던 적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내가 만들어낸 의심이었을 것이다.
네라는 그런 나를 싫어했다.
“그만 봐.”
“뭘.”
“사람들.”
“내가 뭘 했다고.”
“누가 당신을 보는지 계속 확인하잖아.”
나는 부정하지 못했다.
네라는 곡물을 체로 거르고 있었다.
손목이 예전보다 얇아졌다.
나는 그 손을 봤다.
네라가 말했다.
“또.”
“뭐가?”
“이제 내 손도 보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냥 본 거야.”
“당신은 요즘 다 봐.”
네라는 체를 내려놓았다.
“누가 당신을 무서워하는지. 누가 늙었는지. 누가 당신보다 먼저 죽을지.”
마지막 말은 너무 직설적이었다.
나는 짜증이 났다.
“그런 생각 안 해.”
“해.”
“네라.”
“당신 얼굴 보면 알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라가 뒤에서 말했다.
“어디 가?”
“걷고 올게.”
“멀리 가지 마.”
예전 같으면 그 말에 농담을 했을 것이다.
그날은 못 했다.
마을 바깥으로 나갔다.
밭이 끝나는 곳을 지나 조금 높은 언덕까지 올라갔다.
아래에 집들이 보였다.
내 집.
사무의 집.
이라가 사는 곳.
부모를 묻은 곳.
강.
모든 것이 작아 보였다.
떠나면 될 것 같았다.
길 위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릴 때 부러워했던 사람들.
집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들.
내가 사라지면 소문도 사라질 것이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살면 된다.
나는 그 생각을 오래 했다.
그날 처음 떠남을 해결책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네라는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물었다.
“갈 생각했지?”
나는 멈췄다.
“뭘.”
“떠나는 거.”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네라는 나를 너무 오래 알았다.
나는 옆에 앉았다.
“조금.”
“얼마나?”
“모르겠어.”
“나 때문에 남을 거야?”
그 질문이 어려웠다.
나는 대답했다.
“응.”
네라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남아.”
“그렇게 쉽게 말해?”
“당신이 약속했잖아.”
나는 기억했다.
네라가 늙는 미래가 무섭다고 말했던 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옆에 있겠다고 했다.
“남을게.”
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겁먹은 얼굴 좀 그만해.”
“내가 언제.”
“지금도.”
그녀는 웃었다.
나도 조금 웃었다.
나는 그날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게 됐다.
◆그날 이후 나는 언덕에 자주 올라갔다.
떠나기 위해서라기보다, 떠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강이 어느 쪽으로 굽는지.
어느 마을까지 하루 만에 갈 수 있는지.
어릴 때 외지인들을 따라가고 싶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났다.
차이는 하나였다.
그때는 길 너머가 궁금해서 떠나고 싶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떠나고 싶었다.
같은 길인데 이유가 달랐다.
어느 날 네라가 직접 언덕까지 따라왔다.
숨이 찼다.
나는 돌아가자고 했다.
네라는 무시했다.
“여기까지 맨날 올라와?”
“가끔.”
“거짓말.”
“왜.”
“당신 발자국 많아.”
나는 바닥을 봤다.
정말 많았다.
네라는 언덕 아래 마을을 봤다.
“예쁘네.”
“응.”
“그래서 떠나고 싶어?”
“무슨 말이야.”
“멀리서 보면 다 좋아 보이잖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라는 내 옆에 앉았다.
“여기서 보면 사람들 말도 안 들리지.”
“그건 좋아.”
“나도 안 들리고.”
나는 네라를 봤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당신이 무서운 건 알아.”
“응.”
“근데 나도 무서워.”
“뭐가.”
“어느 날 눈 뜨면 당신이 없을까 봐.”
그 말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늘 내가 떠나는 쪽이라고만 생각했다.
남겨지는 사람의 공포는 보지 않았다.
“안 갈게.”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응.”
네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럼 됐어.”
그날 우리는 내려오는 데 오래 걸렸다.
네라가 몇 번 쉬었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고를 때마다 아래 마을을 봤다.
나도 봤다.
떠나고 싶은 곳과 돌아가고 싶은 곳이 같은 장소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언덕에서 내려온 뒤 나는 네라와 같이 창고를 정리했다.
별일 아니었다.
말린 곡물.
도구.
끈.
오래된 바구니.
그런 것들.
그런데 나는 자꾸 물건을 집어 들고 생각했다.
이건 두고 갈까.
이건 가져갈까.
아직 떠나지도 않는데.
네라가 말했다.
“지금부터 싸는 거야?”
“아니.”
“얼굴이 그런데.”
“내 얼굴이 뭘.”
“짐 세는 얼굴.”
나는 웃었다.
“그런 얼굴도 있어?”
“당신은 있어.”
네라는 오래된 도구 하나를 들었다.
“이거 기억나?”
나는 봤다.
“뭐였지.”
“사무 태어났을 때 부러뜨린 거.”
“내가?”
“당신이.”
“왜.”
“문 열다가.”
나는 기억이 없었다.
네라는 웃었다.
“봐. 벌써 다 잊었네.”
그 말이 가슴에 걸렸다.
내가 이 마을을 떠나면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강.
네라.
사무.
이라.
부모.
그 정도는 남을 거라고 믿었다.
집 모양은?
이웃 이름은?
아이들 목소리는?
어떤 날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는?
나는 갑자기 창고의 사소한 물건들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네라가 말했다.
“다 가져가려고 하지 마.”
“뭘.”
“기억.”
나는 그녀를 봤다.
“그걸 어떻게 가져가.”
네라가 웃었다.
“그러니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떠나는 사람이 물건만 챙기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기억도 챙기려고 한다.
문제는 짐보다 훨씬 많이 빠뜨린다는 것이다.
며칠 뒤 나는 강가에서 오래된 돌 하나를 주웠다.
특별한 돌은 아니었다.
어릴 때 놀던 곳과 가까운 자리에서 나온 것뿐.
가져갈까 생각했다.
결국 내려놨다.
푸른 펜던트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이 맞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며칠 뒤 실제로 떠나는 흉내를 내본 적도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침 일찍 짐을 챙겼다.
칼.
물.
말린 음식.
여분의 끈.
펜던트.
그 정도.
마을 끝까지 걸었다.
강을 건너는 얕은 곳 앞에서 멈췄다.
한 발만 더 가면 정말 떠나는 사람 같았다.
뒤에서 누가 불렀다.
이라였다.
“아버지!”
나는 돌아봤다.
이라는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어디 가?”
“아무 데도.”
“짐은?”
“그냥.”
이라는 내 가방을 봤다.
“엄마 알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라 얼굴이 굳었다.
“진짜 가려고 했어?”
“아니.”
“거짓말.”
가족은 늘 내 거짓말을 잘 알았다.
이라는 한참 나를 보더니 가방을 빼앗았다.
“집에 가.”
“이라.”
“엄마한테 내가 말할 거야.”
“말하지 마.”
“그러면 들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네 아버지야.”
“그래서?”
나는 결국 따라갔다.
집에 도착하니 네라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라가 이미 멀리서 손짓으로 알린 모양이었다.
네라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안 갔잖아.”
네라가 말했다.
“이라가 잡았지.”
“내가 돌아온 거야.”
“그래.”
“진짜야.”
네라가 내 옆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까지 말을 거의 안 했다.
밤에 내가 먼저 사과했다.
“미안.”
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안 그럴게.”
“뭘.”
“말 안 하고 가는 거.”
네라가 그제야 봤다.
“가는 건 막지 않아.”
“알아.”
“근데 없어지는 건 하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은 훗날 여러 번 떠올랐다.
나는 이후에도 수없이 사라졌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는 일만큼은 가능한 한 하지 않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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