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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0화 — 사람이 아니라는 말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20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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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이 나를 알아본 건 그 뒤였다.

몇 년 전 우리 지역을 지나간 상인이었다.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기억했다.

마을 입구에서 마주쳤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인사했다.

그러다 걸음을 멈췄다.

“당신.”

“왜.”

“전에도 봤는데.”

“그럴 수 있지.”

그는 내 얼굴을 오래 봤다.

“그때도 이 얼굴이었어.”

사무가 옆에 있었다.

나는 웃어 넘기려 했다.

“사람 얼굴 기억 잘못한 거겠지.”

“아니.”

상인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 옆에 늙은 남자가 있었어.”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였어.”

내가 말했다.

상인이 사무를 봤다.

사무는 이미 나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다시 나를 봤다.

“그 사람은?”

“죽었어.”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다.

사무가 앞으로 나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상인은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이 아니잖아.”

조용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귀가 먹먹했다.

네라가 멀리서 오다 멈췄다.

이라도 있었다.

상인이 말했다.

“병도 걸렸다며. 죽을 만큼 앓고 며칠 만에 걸었다고 들었어.”

소문이 생각보다 멀리 퍼져 있었다.

사무가 상인의 옷을 잡았다.

“입 다물어.”

나는 사무 손목을 잡았다.

“놔.”

“아버지.”

“놔.”

사무가 손을 풀었다.

나는 상인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생각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

그가 내 목을 봤다.

푸른 펜던트.

다시 얼굴.

“모르겠어.”

“아까는 사람이 아니라며.”

상인이 침을 삼켰다.

“좋은 건 아니겠지.”

사무가 다시 움직이려 했다.

네라가 막았다.

상인은 며칠 뒤 떠났다.

문제는 그가 남긴 말이었다.

사람이 아니다.

며칠 동안 아무도 내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이웃은 일을 부탁했다.

친구는 술자리에 불렀다.

그런데 내가 달라졌다.

누군가 오래 보면 이유를 생각했다.

두 사람이 작은 소리로 말하면 내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아이들조차 속삭이는 게 보였다.

어느 날 사무의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사람 아니야?”

나는 웃었다.

“누가 그래.”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사람 아니면 뭐야?”

아이가 오래 생각했다.

“모르겠어.”

“그럼 사람이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아이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다음 날 또 같이 놀았다.

어른들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네라가 말했다.

“사람들 눈 그만 봐.”

“내가 언제.”

“계속.”

“나를 보잖아.”

“당신도 보잖아.”

나는 짜증이 났다.

“그럼 어떻게 해.”

네라가 대답했다.

“살아.”

“뭐?”

“그냥 살아.”

그 말은 너무 단순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게 되면 이러겠어?”

네라가 나를 봤다.

“그럼 뭐 할 건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도망가?”

그 말도 못 했다.

네라는 내게 다가왔다.

“당신은 지금 사람들이 당신을 사람으로 보는지 계속 확인하고 있어.”

맞았다.

“그런데 내가 사람으로 보면 안 돼?”

나는 그녀를 봤다.

네라가 말했다.

“사무도. 이라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날 밤 다시 강으로 갔다.

달이 밝지 않았다.

물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참 기다렸다.

어두운 물 위에 윤곽이 생겼다.

젊은 얼굴.

나는 손을 넣었다.

얼굴이 깨졌다.

다시 기다렸다.

돌아왔다.

내가 물었다.

“너는 뭐냐.”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목에서 푸른 펜던트를 꺼냈다.

손끝으로 뒤쪽 흠집을 찾았다.

있었다.

그 작은 흠집은 변하지 않았다.

나처럼.

그 생각이 들어 손을 놓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네라는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안 갈게.”

내가 말했다.

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어떻게.”

“당신 겁 많아서 혼자 못 가.”

나는 화내는 척했다.

네라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나는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이 사실은 아직도 싫다.

웃었다는 것.

입가 모양.

눈이 조금 좁아졌다는 것.

그런 건 남아 있다.

소리만 없다.

반대로 그날 달빛 아래 푸른 펜던트의 색은 기억난다.

기억은 공평하지 않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떠날 생각을 접었다.

내가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기준도 바꿨다.

내 몸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나를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가.

그때는 그 기준이 충분했다.

아직은.

외지인이 떠난 뒤 사무는 나보다 더 화가 나 있었다.

“왜 그냥 보냈어.”

“뭘 하게.”

“때렸어야지.”

“왜.”

“아버지한테 그런 말 했잖아.”

“그럼 맞아야 해?”

사무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말했다.

“네가 나 때문에 싸우는 게 더 싫어.”

“왜.”

“내 일인데.”

사무가 웃었다.

“아버지는 맨날 내 일도 자기 일처럼 하면서.”

말문이 막혔다.

사무가 계속했다.

“아버지 일도 우리 일이지.”

그 말이 따뜻하면서도 무거웠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가 가진 이상함까지 아이들이 짊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라도 찾아왔다.

“사람들이 뭐라든 상관없어.”

“너는 쉽게 말한다.”

“응.”

이라는 늘 단순했다.

“아버지가 아버지인 건 안 바뀌잖아.”

나는 웃었다.

“내가 사람이 아니어도?”

이라는 잠깐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 아닌 아버지지.”

나는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네라도 웃었다.

사무도.

그날 밤은 오랜만에 편했다.

하지만 편안함은 문제를 없애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사람들은 나를 봤다.

소문도 남아 있었다.

다만 집 안에 들어오면 그 시선이 잠깐 사라졌다.

그게 당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상인이 떠난 다음 날 마을 어른 몇 명이 찾아왔다.

나는 또 무슨 일을 부탁하나 싶었다.

그들은 한참 말을 돌렸다.

결국 한 사람이 물었다.

“정말 몇 살이야.”

나는 웃지 않았다.

“모른다고 했잖아.”

“대충.”

나는 대충 말했다.

그들이 서로 봤다.

“그게 말이 돼?”

“왜.”

“당신 얼굴이.”

나는 짜증이 났다.

“나보고 어쩌라고.”

한 노인이 말했다.

“아무것도.”

“그럼 왜 왔어.”

“알고 싶어서.”

그 말은 이해됐다.

나도 알고 싶었다.

그들은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물었다.

부모가 누구였는지.

어릴 때부터 이랬는지.

나는 대답할 수 있는 만큼 했다.

그중 한 사람은 내 아버지를 기억했다.

“네 아버지는 늙었지.”

“응.”

“어머니도.”

“응.”

“그럼 너만.”

“응.”

침묵.

누군가 말했다.

“신이 건드린 건가.”

나는 바로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

“왜.”

“싫어.”

“저주일 수도 있고.”

“그것도 하지 마.”

노인이 웃었다.

“그럼 뭐라고 해.”

나는 대답했다.

“모른다고 해.”

네라가 했던 말을 내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했다.

모른다.

이상하게 그 말이 편했다.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했지만 돌아갔다.

사무가 옆에서 들었다.

“엄마 말 따라하네.”

“조용히 해.”

그가 웃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모른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진 가장 정직한 답이었다.

그날 저녁 가족끼리 식사를 했다.

네라.

사무.

이라.

손자들.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은 낮에 있었던 일을 이미 들었다.

한 아이가 물었다.

“할아버지 진짜 안 죽어?”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나는 대답했다.

“죽어.”

“언제.”

“몰라.”

“그럼 안 죽는 거잖아.”

아이 논리는 단순했다.

이라가 웃었다.

사무도.

네라는 말했다.

“밥 먹어.”

아이들은 금방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죽는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을 믿고 있었나.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네라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해?”

네라는 바로 대답했다.

“응.”

“왜.”

“다 죽으니까.”

아버지와 같은 대답.

“만약 안 죽으면.”

네라가 한참 생각했다.

“그럼 나 죽고 나서 고민해.”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게 답이야?”

“응.”

“너무 무책임한데.”

“내가 그때 없는데 뭘 책임져.”

네라다운 말이었다.

나는 웃다가 조용해졌다.

네라가 말했다.

“지금 살아 있잖아.”

“응.”

“그럼 지금 살면 돼.”

그 말은 단순했고,

나는 평생 완전히 배우지 못했다.

줄리언은 거기서 읽기를 멈췄다.

‘사람이 아니다.’

화면에 남은 문장이 불편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보관실 쪽을 봤다.

푸른 펜던트는 여전히 상자 안에 있었다.

그날 이후 줄리언은 아버지의 공개사진을 연도순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최근 사진.

십 년 전.

이십 년 전.

가장 오래된 것은 한 재단 행사에서 찍힌 흑백사진의 재촬영본이었다.

공식 설명상 아버지는 젊은 직원으로 참석한 사람이었다.

줄리언은 사진을 확대했다.

얼굴은 분명 조금 달랐다.

머리 모양.

표정.

체중.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오래 봤다.

그러다 스스로 화면을 닫았다.

동안인 사람은 있다.

사진은 증거가 아니다.

회고록에 적혀 있던 문장이 자기 생각처럼 반복됐다.

대신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는 오래된 사진을 숨기지 않았다.

감추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지나치게 태연했다.

줄리언은 다시 문서를 열었다.

다음 장에서 아버지는 떠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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