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5화 — 네라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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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라의 흰머리를 처음 발견한 것은 이라였다.
“엄마, 여기.”
이라가 머리를 만지다가 한 가닥을 잡았다.
네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뽑지 마.”
“하얘.”
사무가 웃었다.
“엄마 늙었네.”
네라가 사무 머리를 때렸다.
“너도 금방이야.”
이라가 자기 머리를 만졌다.
“나도?”
“너도.”
이라는 나를 봤다.
“아버지도?”
네라가 먼저 대답했다.
“아버지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라가 웃었다.
“아버지는 안 늙잖아.”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가끔 가장 정확한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네라가 웃으며 넘겼다.
“아버지는 조금 늦나 봐.”
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끝났다.
나는 끝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네라가 머리를 정리할 때 옆에 앉았다.
흰 머리카락이 생각보다 많았다.
“뭐 봐.”
“그냥.”
“뽑지 마.”
“안 뽑아.”
나는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눈가.
입가.
목.
시간이 있었다.
네라가 말했다.
“나 늙었지.”
나는 농담하려다 그만뒀다.
“응.”
“많이?”
“조금.”
“거짓말.”
“그럼 많이.”
네라가 내 팔을 때렸다.
“말을 예쁘게 못 해.”
“정직하게 말하라며.”
“그런 건 적당히 거짓말해도 돼.”
우리는 웃었다.
조금 뒤 네라가 물었다.
“무서워?”
“뭐가.”
“내가 늙는 거.”
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아니.”
“거짓말.”
“당신은 왜 맨날 내가 거짓말한다고 해.”
“하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당신 늙는 것보다 내가 안 늙는 게 무서워.”
네라가 조용해졌다.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선들이 있었다.
내 손에는 거의 없었다.
“아직 모르잖아.”
네라가 말했다.
“뭘.”
“당신도 조금 늦는 것뿐일 수도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설명을 믿고 싶었다.
며칠 뒤 사무와 함께 물건을 나르다가 외지인이 우리를 형제로 착각했다.
“둘이 형제요?”
사무가 웃었다.
“아버지요.”
외지인의 얼굴이 굳었다.
“아버지?”
그는 나를 보고,
사무를 보고,
다시 나를 봤다.
“아버지.”
사무가 다시 말했다.
외지인이 어색하게 웃었다.
일이 끝난 뒤 사무는 말이 없었다.
“왜.”
“아무것도.”
“아까 일 때문에?”
그는 한참 있다 말했다.
“아버지.”
“응.”
“나 아버지보다 늙어 보이지.”
즉시 부정하고 싶었다.
못 했다.
사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사무.”
“괜찮아.”
그 말이 싫었다.
자식이 부모를 달래는 말 같아서.
순서가 바뀌는 느낌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사무 얼굴도 보기 시작했다.
어린 사무.
젊은 사무.
지금의 사무.
세 얼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어느 것이 진짜 사무인지 고를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의 얼굴로 기억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만 그 변화에서 조금 비켜서 있었다.
◆흰머리 이야기가 나온 뒤 네라는 자기 나이를 더 자주 농담으로 만들었다.
“이제 나한테 무거운 거 시키지 마.”
“어제는 직접 들었잖아.”
“오늘 더 늙었어.”
“하루 만에?”
“당신은 모르겠지.”
그 말에 웃다가도 마음 한쪽이 아팠다.
이라가 네라 머리를 빗어주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봤다.
어릴 때 네라가 이라 머리를 빗어줬다.
이제 반대였다.
이라가 말했다.
“엄마 머리 예뻐.”
네라가 코웃음쳤다.
“하얀데.”
“그래도.”
나는 그 말을 듣고 네라 머리를 다시 봤다.
예뻤다.
늙는다는 게 무너지는 일처럼만 보였던 내 시선이 조금 바뀌었다.
네라는 젊을 때와 다른 얼굴이 되었지만,
덜 네라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네라가 겹쳐 있었다.
젊은 여자.
아이 엄마.
할머니.
나와 싸우던 사람.
내가 아플 때 밤을 새운 사람.
나는 그 모든 얼굴을 한꺼번에 봤다.
그날 밤 네라에게 말했다.
“당신 예뻐.”
네라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봤다.
“뭐 잘못했어?”
“아니.”
“뭐 잃어버렸어?”
“아니.”
“그럼 왜.”
“그냥.”
네라가 한참 나를 보더니 웃었다.
“늦었어.”
“뭐가.”
“젊을 때 많이 했어야지.”
“지금도 하는데.”
“그러니까 늦었다고.”
우리는 웃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늙어가는 네라를 젊은 네라의 손실로만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몸을 보면 다시 공포가 돌아왔다.
네라는 내 팔을 한 번 더 때렸다.
“쓸데없이 사람 얼굴 그만 보고 불이나 봐.”
나는 웃으며 장작을 넣었다.
네라와 강까지 걷는 속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녀가 앞서갔다.
“빨리 와.”
늘 내가 듣던 말이었다.
어느 순간 반대가 됐다.
내가 몇 걸음 앞서가면 네라가 말했다.
“천천히.”
처음에는 한두 번.
나중에는 자주.
나는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네라는 그걸 싫어했다.
“일부러 그러지 마.”
“뭘.”
“나 기다리는 거.”
“같이 가는 건데.”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예전에는 당신이 빨랐지.”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네라가 나를 봤다.
“그러네.”
그녀는 잠깐 웃었다.
강가에 도착해 돌 위에 앉았다.
숨을 골랐다.
나는 옆에 앉았다.
“힘들어?”
“조금.”
“집 갈까.”
“왔는데 왜 가.”
우리는 물을 봤다.
강도 변했다.
예전에 없던 작은 물길이 생겼고,
한쪽은 흙이 더 쌓였다.
집도 늘었다.
네라가 말했다.
“우리 처음 여기 같이 왔던 거 기억나?”
나는 바로 대답하려다 멈췄다.
“응.”
“거짓말.”
“왜.”
“당신 지금 생각했잖아.”
나는 웃었다.
“당신은 기억나?”
네라도 잠시 생각했다.
“잘.”
“봐.”
“나는 늙어서 그래.”
“나는?”
네라가 나를 봤다.
“당신은 원래 기억 못 해.”
나는 억울했다.
우리는 한참 웃었다.
돌아갈 때 네라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잡았다.
손에 힘이 예전보다 약했다.
“천천히.”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네라가 웃었다.
“이제 알겠네.”
그날 집에 돌아와 네라가 잠든 뒤 오래 생각했다.
같이 걷는다는 건 같은 속도로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느려지면 다른 사람이 속도를 바꿔야 했다.
나는 몸의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시간의 속도는 맞출 수 없었다.
그 무렵 네라는 손을 자주 주물렀다.
관절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대신 일을 하려 했다.
네라는 싫어했다.
“내가 못 하는 것처럼 하지 마.”
“아프다며.”
“아픈 거랑 못 하는 건 달라.”
그 말이 중요했다.
나는 네라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자꾸 일을 빼앗으려 했다.
네라는 자기 속도로 하고 싶어 했다.
“필요하면 말할게.”
“언제.”
“필요할 때.”
나는 못마땅했지만 따랐다.
어느 날 네라가 큰 물항아리를 들다가 놓칠 뻔했다.
나는 바로 받아냈다.
“봤지.”
내가 말했다.
네라는 숨을 골랐다.
“봤어.”
“이제 내가 할게.”
“오늘만.”
“왜 오늘만.”
“내일은 내일 생각해.”
나는 답답했다.
네라는 하루 단위로 살았다.
나는 점점 수십 년 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차이가 우리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들었다.
네라는 현재를 잃지 않으려고 했고,
나는 미래의 상실을 미리 걱정했다.
둘 다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며칠 뒤 네라는 젊은 여자 하나의 출산을 도우러 갔다.
밤늦게 돌아왔다.
피곤해 보였다.
나는 물을 줬다.
“어땠어.”
“살았어. 둘 다.”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네라는 한참 물을 마셨다.
“예전에는 이런 거 하고도 안 힘들었는데.”
나는 말했다.
“이제 안 하면 되잖아.”
네라가 바로 인상을 썼다.
“또.”
“뭐가.”
“늙었다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려는 거.”
“힘들다며.”
“힘들어도 할 수 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네라는 내 손을 잡았다.
“당신이 나보다 오래 젊다고, 내 남은 시간까지 대신 살려고 하지 마.”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어 했고,
가끔 그 욕심 때문에 그 사람의 삶을 좁히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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