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4화 — 세어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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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이상한 것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숫자를 센다.
우리 마을에는 나이를 정확한 숫자로 세는 습관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략은 알았다.
누가 누구보다 먼저 태어났는지.
어느 큰물 때 이미 아이였는지.
어떤 흉년 전에 결혼했는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술 비슷한 것을 마시는 자리였다.
어릴 때부터 알던 남자가 내 얼굴을 오래 봤다.
그의 머리는 많이 희었다.
“너.”
“왜.”
“정말 안 늙네.”
사람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네가 너무 빨리 늙는 거지.”
남자가 손가락으로 내 뺨을 눌렀다.
“이거 봐.”
“뭘.”
“없잖아.”
“뭐가.”
“세월.”
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작았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봤다.
누군가 말했다.
“아버지도 늙었는데.”
기분이 나빠졌다.
“그만해.”
“농담인데.”
“그만하라고.”
자리가 조용해졌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네라가 따라왔다.
“왜 화내.”
“싫으니까.”
“뭐가.”
“사람들이.”
네라는 한숨을 쉬었다.
“궁금한 거야.”
“나도 몰라.”
“당신도 궁금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라가 말했다.
“건강하다는 말 이제 그만해.”
“그럼 뭐라고 해.”
“모른다고.”
“맨날 모른다고 할 수는 없잖아.”
“왜 못 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라는 내 얼굴을 봤다.
“당신은 모르는 걸 싫어해.”
“누가 좋아해.”
“보통 사람은 그냥 넘어가.”
“나는?”
“계속 파.”
맞았다.
외지인 말도.
물길도.
사람 표정도.
이해될 때까지 보고 싶었다.
내 몸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물가로 갔다.
물에 비친 얼굴을 오래 봤다.
흐렸다.
조금 기다리니 선명해졌다.
친구 얼굴과 비교했다.
아버지.
네라.
사무.
내 얼굴에는 그들이 가진 시간이 없었다.
나는 물을 손으로 휘저었다.
얼굴이 깨졌다.
편했다.
그러다 다시 잔잔해졌다.
또 나였다.
집으로 돌아가니 네라가 깨어 있었다.
“어디 갔어.”
“강.”
“왜.”
“얼굴 보러.”
네라가 잠깐 말이 없었다.
“봐서 알았어?”
“아니.”
“그럼 자.”
나는 누웠다.
네라가 등을 돌렸다.
잠깐 뒤 말했다.
“당신 안 늙는다고 우리 집 버리고 다닐 생각 하지 마.”
“누가 그래.”
“얼굴이 그래.”
“내 얼굴이 뭘.”
“도망갈 궁리하는 얼굴.”
나는 부정하려다 그만뒀다.
사실 조금 생각했다.
멀리 가면 아무도 내 나이를 모를 것이다.
다른 이름.
다른 마을.
다른 사람들.
네라가 말했다.
“가고 싶으면 나 죽고 가.”
나는 몸을 굳혔다.
“그런 말 하지 마.”
“왜. 언젠가는 죽는데.”
“하지 말라고.”
네라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떠남이 해결책일 수 있다는 생각과,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생겼다.
◆그 뒤로 사람들이 내 나이를 세기 시작했다.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사건으로.
“저 큰물 때 이미 성인이었지?”
“그때 사무가 태어나기 전이었어.”
“아버지가 저 사람이랑 사냥 다녔다고 했는데.”
이런 식이었다.
한 젊은 남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당신이 젊을 때 봤대.”
나는 웃었다.
“나도 젊었지.”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도 젊잖아.”
주변이 조용해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숫자보다 세대를 세기 시작했다.
누구의 아버지가 나를 알았고,
누구의 할아버지가 나와 함께 일했고.
그 방식은 더 무서웠다.
숫자는 틀릴 수 있었다.
세대는 눈앞에 있었다.
어느 날 마을 아이들이 장난으로 내 얼굴을 흉내 냈다.
“안 늙는 사람.”
그들은 웃었다.
나는 같이 웃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나도 안 늙을래.”
다른 아이가 대답했다.
“그럼 할머니보다 젊어져.”
아이들이 또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네라는 멀리서 그 장면을 봤다.
집에 돌아와 말했다.
“애들한테 화내지 마.”
“안 냈어.”
“얼굴이 냈어.”
“그 말 좀 그만해.”
네라는 웃었다.
“당신 얼굴은 말이 많아.”
나는 펜던트를 만졌다.
네라가 손을 쳤다.
“그거 닳겠다.”
“이미 많이 닳았어.”
“그래도.”
나는 물었다.
“당신은 진짜 안 무서워?”
네라는 생각했다.
“무섭지.”
“그런데 왜 아무렇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야.”
그 답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나만 겁먹은 게 아니었다.
네라도 무서웠다.
그래도 밥을 하고,
아이를 보고,
나와 싸웠다.
삶은 공포가 끝난 뒤 시작되는 게 아니었다.
공포가 있는 채로 계속되는 것이었다.
마을에서 큰 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 있었다.
수확이 아주 좋았던 해였다.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왔다.
아이들이 뛰었다.
노인들은 불 가까이에 앉았다.
나는 오랜 친구 옆에 앉았다.
그는 술을 조금 마시더니 말했다.
“우리 어릴 때 기억나냐.”
“뭐.”
“강 건너 몰래 갔다가 네 아버지한테 맞은 거.”
나는 기억이 없었다.
“내가?”
“너 때문에 나도 맞았어.”
“거짓말.”
그가 크게 웃었다.
“봐. 벌써 기억도 못 하잖아.”
그는 다른 이야기도 했다.
몇 개는 기억났다.
몇 개는 전혀 없었다.
나는 불편해졌다.
그는 늙었고,
나는 젊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기억은 오히려 그가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네가 오래 젊다고 다 좋은 건 아니네.”
그가 농담했다.
“기억은 내가 더 좋다.”
나는 웃었다.
그 말은 훗날 너무 정확해진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젊은이 몇 명이 우리에게 왔다.
한 명이 친구에게 물었다.
“정말 어릴 때부터 저 사람이 이 얼굴이었어요?”
친구가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 애였지.”
젊은이들이 웃었다.
“그럼 언제부터 안 늙었어요?”
친구가 나를 봤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이후 깨달았다.
나를 아는 오래된 사람들이 줄어들수록,
내 과거를 증명해줄 사람도 줄어든다는 것을.
아이러니했다.
사람들이 나를 의심할수록,
내가 평범한 아이였다는 걸 말해줄 사람은 늙어 죽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오래된 친구와 강가에 앉았다.
그는 예전처럼 오래 걷지 못했다.
중간에 쉬었다.
“너랑 있으면 기분 나빠.”
그가 말했다.
“왜.”
“나만 늙은 것 같아.”
농담이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친구가 내 얼굴을 봤다.
“진짜 신경 쓰여?”
“응.”
“왜.”
“사람들이 자꾸 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봐.”
“너까지.”
“신기하잖아.”
나는 돌을 던졌다.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너는 너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는 웃었다.
“어릴 때도 성질 더러웠으니까.”
나는 욕했다.
친구도 웃었다.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증거가 얼굴이 아니라 성격일 수도 있다는 생각.
하지만 그 친구도 몇 년 뒤 더 늙었다.
나는 그대로였다.
친구가 나를 ‘너’라고 부르는 동안은 괜찮았다.
그가 죽은 뒤에는 또 하나의 증인이 사라졌다.
그날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오래 봤다.
걸음이 느렸다.
허리가 약간 굽었다.
어릴 때는 나보다 빨랐다.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왜 봐.”
“그냥.”
“또 세고 있냐.”
“뭘.”
“사람 늙는 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가 말했다.
“그거 그만해.”
“왜.”
“사람 기분 나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사람들을 시간의 증거처럼 보고 있다는 걸.
친구.
네라.
사무.
부모.
각자 한 사람인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얼마나 늙었는가’를 먼저 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일부러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잘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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