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1화 — 아버지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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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아버지가 처음 지팡이를 짚은 날을 기억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말한다.
내가 처음 알아챈 날을 기억한다.
그가 그보다 며칠이나 몇 달 먼저 지팡이를 썼을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본 순간을 시작점으로 착각한다.
그날 아침 우리는 사냥을 가기로 했다.
사무도 따라오겠다고 했다.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였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안 돼.”
내가 말했다.
사무가 인상을 썼다.
“왜.”
“멀어.”
“아버지보다 내가 더 잘 걸어.”
네라가 뒤에서 말했다.
“그건 맞아.”
나는 네라를 노려봤다.
사무가 웃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나왔다.
손에 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길을 짚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비가 온 뒤도 아니었고 길도 마른 편이었다.
조금 걸은 뒤 알았다.
아버지는 오른쪽 다리에 힘을 덜 주고 있었다.
지팡이가 흙을 찍었다.
툭.
툭.
툭.
“다쳤어?”
내가 물었다.
“아니다.”
“그럼 그거 왜 써?”
“편해서.”
그는 짧게 답했다.
사냥터까지 가는 길에서 두 번 쉬었다.
예전에는 내가 먼저 멈췄던 자리였다.
세 번째에는 사무가 말했다.
“할아버지, 조금 쉬었다 가요.”
아버지가 사무를 봤다.
“네가 힘들어?”
“아니.”
“그런데 왜.”
사무는 대답을 망설였다.
아버지는 웃었다.
“알았다.”
그는 돌 위에 앉았다.
나는 서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올려다봤다.
“너도 앉아.”
“안 힘들어.”
“보기 싫어.”
나는 웃었다.
“뭐가 보기 싫어.”
“나만 늙은 것 같잖아.”
그 말에 웃음이 멈췄다.
사무가 분위기를 눈치채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았다.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늙어서 아픈 건 병이 아니냐?”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기 무릎을 두드렸다.
“예전에는 이게 내 몸인 줄 알았어.”
“지금도 아버지 몸이지.”
“지금은 내 말을 안 들어.”
그는 웃었다.
나는 안 웃었다.
사냥은 잘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쏜 화살 하나가 낮게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놓치지 않았을 거리였다.
사무가 달려가려 했다.
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놔둬.”
“잡을 수 있어요.”
“오늘은 됐다.”
돌아오는 길에 사무가 앞서갔다.
나와 아버지는 천천히 걸었다.
지팡이가 규칙적으로 흙을 쳤다.
“다음에는 내가 잡을게.”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러겠지.”
“왜 그렇게 말해.”
“어떻게.”
“내가 다 해야 하는 사람처럼.”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네가 해야지.”
“왜.”
“내가 계속 할 수는 없으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기분 나빴다.
나는 여전히 그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약해진다고 해서 그 위치가 바뀌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예전에는 우리가 보이면 먼저 일어섰다.
그날은 앉은 채 물었다.
“잡았어?”
사무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웃었다.
“셋이나 가서?”
아버지가 말했다.
“쟤들이 시끄러워서.”
“나는 안 그랬어요.”
사무가 바로 반박했다.
네라도 나왔다.
“저 사람은 어릴 때 더 시끄러웠어.”
나는 억울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웃었다.
저녁 식사 뒤 아버지가 지팡이를 벽에 세웠다.
나는 그걸 오래 봤다.
나무 한 막대기.
별것 아닌 물건.
다음 날에도 아버지는 그것을 썼다.
다음 달에도.
계절이 바뀌고도.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아버지는 다친 게 아니었다.
늙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렇지 않았다.
그날 밤 네라와 누워 있다가 말했다.
“아버지 많이 늙었어.”
네라는 대답했다.
“응.”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나는 몰랐어.”
“당신은 그런 거 잘 못 보잖아.”
“뭘.”
“가까이 있는 사람 변하는 거.”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왜.”
“매일 보니까.”
네라는 천장을 봤다.
“매일 보면 천천히 변해서 모르는 거야.”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네라 얼굴을 봤다.
“왜 봐.”
“그냥.”
“또 주름 찾지 마.”
나는 웃었다.
네라는 내 손을 밀었다.
“자.”
불이 거의 꺼지고 있었다.
나는 잠들기 전에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저렇게 늙어 있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아주 오래 산다면.
그 생각은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때의 나는 아직 ‘아주 오래’라는 말의 실제 길이를 몰랐다.
◆사냥에서 돌아온 뒤 사무는 아버지의 지팡이를 가지고 놀았다.
“이거 내가 써도 돼?”
아버지가 바로 빼앗았다.
“네가 왜.”
“멋있어.”
“늙어봐.”
사무가 웃었다.
“싫어.”
아버지도 웃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늙는 일을 농담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날 밤 아버지와 단둘이 앉을 일이 있었다.
사무와 네라는 먼저 잠들었다.
아버지는 지팡이를 옆에 두고 작은 칼을 갈았다.
손이 느렸다.
“아버지.”
“왜.”
“늙는 게 싫어?”
그가 칼을 멈췄다.
“갑자기?”
“그냥.”
아버지는 생각했다.
“몸은 싫지.”
“그럼 뭐는 안 싫어.”
“사람들이 나 대신 하잖아.”
“그게 좋아?”
“예전에는 내가 다 해야 했는데.”
그는 웃었다.
“이제 너도 하고, 사무도 하고.”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힘이 줄어드는 걸 왜 좋다고 말하는지.
아버지는 내 얼굴을 봤다.
“너는 아직 다 해야 마음 편하지?”
“내가 잘하니까.”
그 말이 나오자마자 아버지가 웃었다.
“그래.”
“왜 웃어.”
“너 어릴 때도 똑같았어.”
“뭐가.”
“혼자 잡은 것도 없으면서 혼자 했다고 했잖아.”
나는 예전 사냥 이야기를 떠올렸다.
기분이 나빠졌다.
“그 얘기 언제까지 해.”
“내가 죽을 때까지.”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버지는 칼을 다시 갈았다.
사각.
사각.
“죽는 얘기 그렇게 쉽게 하지 마.”
내가 말했다.
“왜.”
“그냥.”
“다 죽는데.”
“알아.”
“알면 됐지.”
나는 그 말이 싫었다.
그때의 나는 죽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이미 조금 받아들인 사람 같았다.
그 차이가 이상했다.
며칠 뒤 아버지는 사냥 대신 사무에게 활을 가르쳤다.
나는 옆에서 봤다.
사무가 자세를 잡았다.
아버지가 팔꿈치를 고쳤다.
“이렇게.”
사무가 화살을 놓쳤다.
아버지는 웃었다.
다시.
이번에는 맞았다.
사무가 신나서 나를 봤다.
“봤어?”
“봤어.”
“아버지보다 잘할 거야.”
“해봐.”
아버지가 말했다.
“둘 다 시끄러워.”
그 순간 나는 아주 이상한 생각을 했다.
기술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쳤고,
이제 사무에게.
나는 그 중간에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만 자연스럽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게 처음 막대기를 받았던 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가족의 웃음소리 속에서도 혼자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아버지는 지팡이를 사무에게 직접 만들어보라고 했다.
좋은 나무를 고르고,
표면을 다듬고,
손에 맞는 높이로 자르게 했다.
사무는 처음에 장난처럼 시작했다.
완성하고 나서는 진지해졌다.
아버지가 새 지팡이를 짚어봤다.
“길다.”
사무가 바로 말했다.
“아닌데.”
“내가 쓰는 거야, 네가 쓰는 거야.”
사무는 다시 잘랐다.
두 번째에는 너무 짧았다.
아버지가 웃었다.
“일부러 그러냐.”
세 번째가 맞았다.
아버지는 며칠 뒤부터 그 지팡이를 썼다.
사무는 볼 때마다 자기가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이상한 질투를 느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주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사무와 뭔가를 나누고 있었다.
세대가 한 칸 넘어간다는 감각을 그때 처음 분명히 느꼈다.
아버지는 새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 걸었다.
사무가 물었다.
“이번엔 맞아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쓸 만하네.”
사무가 나를 돌아보며 아주 자랑스러운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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