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0화 — 푸른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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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은 화면을 끄지 못한 채 한동안 앉아 있었다.
회고록에는 사무의 집 이야기가 열린 채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수천 년을 살았다는 주장보다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건 그런 부분이었다.
벽이 비뚤어졌다는 이야기.
아들과 누가 집을 정하느냐를 두고 실랑이한 일.
손자를 처음 안았던 일.
거짓말이라면 지나치게 사소했다.
그렇다고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줄리언은 스스로에게 몇 번째인지 모를 설명을 했다.
아버지는 역사에 집착했다.
평생 자료를 모았다.
이런 회고록 하나를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파란 상자였다.
책장 뒤 보관실.
푸른 점이 찍힌 작은 상자.
회고록에서 그 물건이 처음 나올 때까지 열지 말라는 메모.
푸른 펜던트는 이미 나왔다.
네라가 건넨 물건.
뒤쪽의 짧은 흠집.
줄리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자는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였다.
금속 케이스 안쪽에 작은 잠금장치가 있었다.
이번에는 별도의 암호가 없었다.
옆면 버튼을 누르자 조용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안에는 검은 완충재가 깔려 있었다.
그 가운데 작은 푸른 물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줄리언은 바로 손대지 않았다.
회고록 속 사진에서 본 것과 같았다.
같아 보인다가 정확했다.
작고,
표면이 균일하지 않고,
파랑과 청록 사이의 색.
현대적인 세공품과는 달랐다.
옆에는 얇은 장갑과 확대경이 있었다.
아버지답다고 생각했다.
줄리언은 장갑을 끼고 펜던트를 집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차가웠다.
몇 초 지나자 체온을 받았다.
앞면.
가장자리.
그리고 뒤쪽.
그는 숨을 멈췄다.
짧은 흠집이 있었다.
회고록 사진에 있던 위치.
네라가 만들다가 도구를 미끄러뜨렸다고 적은 자리.
줄리언은 확대경으로 봤다.
당연히 진짜 흠집이었다.
일부러 만든 것인지,
수천 년 된 것인지,
며칠 전 생긴 것인지,
그가 알 방법은 없었다.
상자 안에는 작은 종이 한 장이 더 있었다.
아버지 손글씨.
이 물건은 증거가 아니다.
줄리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아래.
내가 회고록을 쓰기 전에 이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회고록 속 이야기가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나 자신이라도 이 정도는 의심했을 것이다.
줄리언은 헛웃음을 냈다.
“알아.”
아버지가 없는 방에서 대답했다.
종이 뒷면에는 짧은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그래도 네가 이것을 손에 들면, 네라가 한때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줄리언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 문장이 앞의 모든 것보다 더 이상했다.
아버지가 자기 불멸을 증명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연대.
유전자.
재산 기록.
사진.
무엇이든.
그런데 남긴 것은 이름조차 정확한지 모르는 여자가 준 작은 장식이었다.
줄리언은 펜던트를 책상으로 가져왔다.
회고록의 사진을 띄웠다.
각도를 맞춰봤다.
같았다.
적어도 육안으로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확대 사진을 찍었다.
뒤쪽 흠집도.
그런 다음 검색창을 열었다.
비슷한 재료.
고대 청색 장식.
선왕조 시대 장신구.
검색 결과에는 수많은 이미지가 나왔다.
청금석.
파이앙스.
터키석.
구리 광물.
펜던트와 닮은 것도 있었고 전혀 다른 것도 있었다.
줄리언은 자기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깨달았다.
정답.
검색 몇 번이면 나올 정답.
그런 건 없었다.
물건의 재료를 분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작법도.
연대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네라가 주었다’는 사실은 검사할 수 없다.
더구나 아버지가 고대 물건을 수집하는 부자였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왔을 수 있다.
회고록을 쓴 뒤 흠집을 맞춰 넣었을 수도 있다.
줄리언은 펜던트를 다시 내려놨다.
그때 보관함 바닥에서 아주 작은 번호가 보였다.
현대식 보존관리 코드였다.
아버지가 개인 소장품에 쓰던 체계와 비슷했다.
그 번호를 내부 자산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했다.
결과가 하나 나왔다.
취득 경로: 미기재
최초 전산 등록: 1978
이전 수기 장부 참조: A-17
줄리언은 눈을 가늘게 떴다.
1978년이면 아버지가 공식 서류상 열 살도 되기 전이었다.
“가족 물건일 수도 있지.”
그는 소리 내 말했다.
정상적인 설명은 여전히 있었다.
A-17 장부를 찾으려고 했지만 전산에는 스캔이 없었다.
보관 위치만 표시되어 있었다.
스위스.
줄리언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또 하나의 문이 생긴 기분이었다.
열면 그 뒤에 다음 문이 나오는 방식.
그는 잠시 스위스에 연락할 생각을 했다.
하지 않았다.
먼저 읽기로 했다.
아버지가 왜 순서를 정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증거만 쫓으면 이야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줄리언은 펜던트를 상자에 다시 넣으려다가 멈췄다.
한 번 더 손에 올렸다.
흠집을 손끝으로 만졌다.
회고록 속 문장이 떠올랐다.
이것만은 잃어버리지 마.
줄리언은 아주 작게 말했다.
“진짜였으면 좋겠어?”
누구에게 묻는지 자신도 몰랐다.
아버지에게인지.
자기 자신에게인지.
그는 펜던트를 다시 보관함에 넣었다.
뚜껑은 닫지 않았다.
컴퓨터 앞으로 돌아갔다.
다음 장의 첫 문장은 아버지의 지팡이 이야기였다.
◆줄리언은 펜던트의 전산 등록 기록을 한참 바라봤다.
1978.
숫자 하나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공식 출생연도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단정하기에는 너무 쉬운 설명이 있었다.
가족 소장품.
재단에서 넘겨받은 물건.
전산화하면서 옛 번호를 옮겨 적은 오류.
그는 가족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야간이라 바로 담당자가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해외 쪽 보존자산 담당 번호가 연결됐다.
줄리언은 물었다.
“A-17 수기장부가 뭔지 아세요?”
상대는 잠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실물 장부입니다.”
“누가 만든 거죠?”
“정확한 작성자는 메타데이터에 없습니다.”
“언제부터 쓴 건데요?”
“스캔되지 않은 자료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분류상으로는 오래된 가족 컬렉션 기록입니다.”
“가족 컬렉션이요?”
“네.”
“어느 가족?”
잠깐 침묵.
“현재 법적 소유구조 이전 자료라는 뜻입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답이었다.
줄리언은 물었다.
“1978년에 제 아버지가 이 물건을 등록한 게 맞습니까?”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 날짜는 현 전산체계로 옮겨진 최초 기준일일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설명.
또 하나.
통화를 끊고 나니 오히려 답답했다.
그는 펜던트 사진을 여러 고고학 자료와 비교했다.
비슷한 색의 고대 장신구는 드물지 않았다.
푸른색은 귀했지만 존재했다.
형태도 유일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연대를 판단하는 건 무의미했다.
재료 분석을 하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작 흔적도.
하지만 정확한 연대는 재료에 따라 어려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분석한다고 네라가 나오지는 않는다.
줄리언은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왜 하필 이런 걸 남겼을까.
믿으라는 건지,
의심하라는 건지.
보관함 안쪽을 다시 살폈다.
작은 카드 한 장이 완충재 밑에 끼워져 있었다.
아까 못 봤던 것이었다.
또 아버지 손글씨.
손상시키는 검사는 하지 마라.
줄리언은 코웃음을 쳤다.
“그럴 줄 알았어.”
다음 줄.
증명하고 싶어서 부수기 시작하면, 마지막에는 남는 게 없을 수 있다.
그 말은 펜던트에 대한 것 같으면서 다른 뜻도 있는 것 같았다.
줄리언은 카드를 내려놨다.
아버지는 평생 문화재 보존 재단에 돈을 넣었다.
고대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답답했다.
“그럼 뭘 보고 믿으라는 거야.”
이번에도 답은 없었다.
그는 잠시 펜던트를 손에 들고 창가로 갔다.
도시의 밤은 고대의 밤과 완전히 달랐다.
유리창마다 빛이 있었다.
도로는 끊기지 않았다.
아버지 회고록 속에서는 불에서 몇 걸음만 벗어나면 얼굴이 사라졌다.
같은 인간이 두 세계를 모두 봤다는 주장.
말이 되지 않았다.
줄리언은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아버지를 조금 닮았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이었다.
그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회고록이 사실이라면,
아버지는 자기 부모 얼굴도 이런 식으로 기억하려 했을까.
줄리언은 바로 그 생각을 밀어냈다.
너무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펜던트를 다시 상자에 넣었다.
이번에는 사진 파일 하나를 따로 만들었다.
앞.
뒤.
흠집 확대.
상자 번호.
전산 등록 화면.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자기가 무엇을 봤는지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행동이 회고록 속 아버지와 닮았다는 사실은 조금 뒤에 깨달았다.
줄리언은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기억]`, `[기록]`, `[추정]`, `[모름]` 네 표기를 봤다.
그리고 새 메모 파일을 만들었다.
제목은 간단했다.
확인된 것 / 확인되지 않은 것
첫 줄.
확인된 것: 펜던트는 실제로 존재한다.
두 번째 줄.
확인되지 않은 것: 네라.
그는 한참 커서를 보다가 세 번째 줄을 썼다.
확인되지 않은 것: 아버지의 나이.
저장했다.
그런 뒤 회고록으로 돌아왔다.
다음 장에는 아버지의 지팡이가 나왔다.
줄리언은 읽기 전에 푸른 상자 뚜껑을 닫았다.
찰칵.
이번에는 그 소리가 전보다 크게 들렸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