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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9화 — 다른 사람의 얼굴로 세는 시간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9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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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없는 시대에 사람은 자기 얼굴보다 다른 사람의 얼굴로 시간을 본다.

사무가 어른이 됐다.

그 사실을 나는 머리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직접 느낀 것은 사무가 자기 집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였다.

“왜.”

내가 물었다.

사무가 나를 이상하게 봤다.

“결혼하니까.”

“여기 있어도 되잖아.”

네라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놔둬.”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무는 자기 집을 지었다.

나는 당연히 도와주러 갔다.

처음부터 내가 벽 위치를 정하려 했다.

사무가 말했다.

“아버지.”

“왜.”

“내 집이야.”

“알아.”

“그런데 왜 아버지가 정해.”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더 많이 해봤으니까.”

사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물어보면 알려줘.”

네라가 멀리서 웃었다.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물러났다.

벽 하나가 조금 비뚤어졌다.

말하지 않았다.

비가 왔을 때도 무너지지 않았다.

사무가 일부러 나를 불렀다.

“봐.”

“뭘.”

“안 무너졌어.”

“한 번 비 왔다고.”

그가 웃었다.

그 집에서 얼마 뒤 아이가 태어났다.

내 첫 손자였다.

사무가 아이를 안고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받기를 망설였다.

“왜.”

네라가 물었다.

“작잖아.”

“사무도 작았어.”

“그때도 무서웠어.”

네라가 웃었다.

이번에는 목을 받치는 법을 알았다.

작은 몸이 내 팔 위에서 움직였다.

사무가 옆에서 지켜봤다.

나는 아이와 사무를 번갈아 봤다.

이상했다.

사무가 태어나던 날이 그렇게 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기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날 마을 사람 하나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니 농담했다.

“누가 아버지고 누가 아들인지 모르겠네.”

사람들이 웃었다.

사무도 웃었다.

나는 잠깐 늦게 웃었다.

사무 얼굴에는 내가 갖지 않은 것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눈가의 선.

손등의 거친 흔적.

관자놀이 부근의 색 변화.

아직 늙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와 달랐다.

저녁이 되자 네라가 물었다.

“아까 기분 나빴어?”

“뭐가.”

“사무랑 형제 같다고 한 거.”

“농담이잖아.”

“그러니까.”

나는 불을 만졌다.

“조금.”

네라는 내 얼굴을 봤다.

“당신도 이제 알겠지.”

“뭘.”

“시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네라는 그날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우리는 손자가 얼마나 사무를 닮았는지 이야기했다.

네라는 코가 닮았다고 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당신은 애들 얼굴 진짜 못 봐.”

“아까는 사람 얼굴만 본다며.”

“필요 없는 것만 봐.”

나는 웃었다.

며칠 뒤 아버지와 길을 걸었다.

그의 걸음이 예전보다 느렸다.

아직 지팡이에 의지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일부러 속도를 맞췄다.

아버지가 알아챘다.

“먼저 가.”

“같이 가는 건데.”

“나 기다리잖아.”

“아니야.”

아버지가 웃었다.

“네라한테 거짓말 배우냐.”

가족은 모두 내 거짓말을 알아봤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에 세 사람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

사무.

네라.

모두 변하고 있었다.

내가 안 변한다고 확신할 단계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느린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 생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무 집에 가서 벽을 하나 더 고쳤다.

이번에는 먼저 물었다.

“도와줄까?”

사무가 잠깐 놀랐다.

“응.”

나는 웃었다.

그날은 그걸로 충분했다.

사무가 집을 나간 뒤 집 안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물론 멀리 간 것은 아니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하루에도 몇 번 마주쳤다.

그런데 밤에 사무 숨소리가 없는 것이 달랐다.

네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나는 더 티가 났다.

“가봐야 하나.”

“왜.”

“필요한 거 있을 수도 있잖아.”

“오늘 세 번 갔어.”

“세 번밖에.”

네라는 나를 노려봤다.

“당신이 신혼 때 당신 아버지가 하루 세 번 왔으면 좋았겠어?”

나는 바로 이해했다.

“안 가지.”

다음 날 아침에 갔다.

네라는 포기했다.

이라는 사무와 달리 집을 떠나는 방식이 조용했다.

다른 정착지 출신 남자와 함께 살기로 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또 너무 많은 질문을 했다.

어디서 살 건지.

먹고 살 건지.

그 남자 가족은 어떤지.

물은 가까운지.

이라는 다 듣다가 말했다.

“아버지.”

“왜.”

“내가 가는 거야.”

“알아.”

“아버지가 가는 거 아니야.”

그 말에 네라가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나는 또 한 번 물러났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만들수록 나는 자꾸 필요 없는 곳까지 따라가려 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사랑이 언제나 개입할 권리를 주는 건 아니었다.

사무의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도 왔다.

그는 손자를,

정확히는 자기 증손자를 한참 봤다.

“작네.”

그가 말했다.

나는 웃었다.

“다 작게 태어나.”

“너도?”

“아버지가 더 잘 알잖아.”

아버지는 잠시 생각했다.

“기억 안 나.”

그 말이 이상했다.

내 출생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조차 세부를 잊고 있었다.

“진짜?”

“몇십 년 전인데.”

그에게는 당연한 말이었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사람이 살아 있어도 기억은 먼저 사라질 수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에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 물었다.

그는 몇 개를 말했다.

강에 빠진 일.

도구를 부러뜨린 일.

어머니 몰래 외지인을 따라가려 한 일.

나는 그중 일부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거 나 맞아?”

“아마.”

“아마?”

아버지가 웃었다.

“너 말고 누가 있냐.”

확신은 아니었다.

나는 처음으로 부모 기억조차 완전한 기록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사무의 아이가 조금 자란 뒤 나를 뭐라고 부를지로 가족이 웃은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지금처럼 세밀하게 정리된 호칭 체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대 차이는 분명했다.

나는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은 사무와 나를 형제로 착각했다.

한두 번은 웃고 넘겼다.

세 번째쯤에는 사무가 먼저 말했다.

“그냥 형제라고 할까?”

“싫어.”

“왜.”

“내가 네 아버지잖아.”

사무가 웃었다.

“그건 안 바뀌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얼굴이 어떻게 보여도 관계는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가족 안에서는.

어느 저녁 나는 네라와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사무 집에서 불빛이 보였다.

이라 집 쪽에서도.

“다 갔네.”

내가 말했다.

“누가.”

“아이들.”

네라는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저기 있잖아.”

“집에서.”

“원래 그러는 거야.”

“알아.”

네라가 내 어깨에 기대었다.

그녀 머리에서 흰 가닥 하나가 보였다.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왜.”

“아무것도.”

“또 세지.”

“안 세.”

네라는 웃었다.

그날은 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걸음이 느려지고,

사무가 아버지가 되고,

네라 머리에 흰색이 생겼다.

나는 그 모든 변화를 한꺼번에 보기 시작했다.

내 얼굴만 보고 있었다면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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