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8화 — 조금 늦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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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내가 남들보다 늦게 늙는다는 말을 처음 진지하게 들은 것은 친구에게서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강에서 놀았고,
사냥을 흉내 냈고,
서로 부모에게 혼날 일을 같이 했다.
그의 정확한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이럴 때가 가장 답답하다.
얼굴은 있다.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던 것도 기억한다.
그런데 이름이 없다.
그는 어느 날 내 집 앞에 앉아 자기 무릎을 주물렀다.
“아프냐?”
내가 물었다.
“뛰면.”
“다쳤어?”
“아니.”
“그런데 왜.”
그가 나를 이상하게 봤다.
“늙어서지.”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나는 웃었다.
“벌써?”
“너도 나이 똑같아.”
그가 내 얼굴을 살폈다.
“근데 진짜 이상하네.”
“뭐가.”
“넌 그대로야.”
“아니야.”
“뭐가 달라졌는데.”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키.
몸집.
어릴 때와는 당연히 달랐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 뒤의 변화였다.
젊은 성인이 된 이후.
나는 내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었다.
거울이 없었으니까.
잔잔한 물에 비친 모습이 전부였다.
자기 얼굴은 매일 보는 사람도 변화를 잘 모른다.
하물며 제대로 된 거울조차 없는 시대였다.
“네가 빨리 늙는 거겠지.”
내가 말했다.
친구는 웃었다.
“그럼 좋은 거네.”
그날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말이 남았다.
나는 이후부터 다른 사람 손을 보게 됐다.
아버지 손.
어머니 손.
친구 손.
네라 손.
그리고 내 손.
사람마다 다르기는 했다.
일 많이 한 손은 더 거칠었다.
햇볕을 오래 받은 얼굴은 더 빨리 변했다.
내가 특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설명에 매달렸다.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조금 늦는 사람이다.
네라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 집안이 원래 그런가 보지.”
“아버지는 아닌데.”
“어머니 쪽일 수도 있고.”
“어머니도 늙었잖아.”
네라가 짜증을 냈다.
“그럼 좋은 거라고 생각해.”
“왜 화내.”
“당신이 계속 얼굴 보잖아.”
“누구 얼굴.”
“다.”
나는 부정했다.
네라는 내 손을 잡아 자기 얼굴 앞에서 흔들었다.
“지금도.”
나는 웃었다.
“주름 있는지 봤어.”
“있어.”
“어디.”
네라가 내 손을 쳤다.
그날은 농담이었다.
아직 공포는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도 자랐다.
사무는 나와 같이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쓸모보다 방해가 많았다.
“그거 거기 두지 마.”
“왜.”
“넘어져.”
사무는 옮기지 않았다.
잠시 뒤 자기가 걸려 넘어졌다.
나는 웃었다.
사무가 화를 냈다.
“아버지가 여기 놨잖아.”
“네가 놨어.”
“아니야.”
네라에게 가서 물었다.
네라는 사무 편을 들었다.
나는 억울했다.
몇 년 뒤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사무는 그 물건을 둔 사람이 이라였다고 기억했다.
내 기억에는 사무였다.
[모름]
누가 맞는지는 이제 알 수 없다.
이런 작은 어긋남은 그때부터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 기억이 맞다고 확신했다.
직접 봤으니까.
그 믿음은 아주 오래 뒤에 깨진다.
어느 저녁 네라가 내 머리카락을 뒤적였다.
“뭐 해.”
“찾아.”
“뭘.”
“흰 거.”
나는 웃었다.
“있어?”
네라는 한참 찾았다.
“없네.”
“당신은.”
“있지.”
그녀가 몇 가닥을 보여줬다.
아직 많지 않았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손으로 만졌다.
네라가 말했다.
“왜 그런 얼굴 해.”
“무슨 얼굴.”
“또 세는 얼굴.”
나는 손을 내렸다.
그날 밤 물가에 갔다.
얼굴을 보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물이 잔잔하자 자연스럽게 내려다봤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조금 젊어 보이는 얼굴.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나는 손으로 물을 한번 휘저었다.
얼굴이 사라졌다.
뒤에서 사무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
나는 돌아봤다.
“왜.”
“엄마가 밥 먹으래.”
그 순간 고민도 끝났다.
나는 집으로 갔다.
아직은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문제였다.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나이를 세어보려고 한 적이 있다.
지금 같은 달력은 없었다.
큰물.
흉년.
사무가 태어난 때.
이라가 태어난 때.
누가 결혼한 계절.
누가 죽은 해.
그런 일을 이어붙였다.
몇 번 세다가 숫자가 달라졌다.
네라가 보더니 물었다.
“뭐 해.”
“내 나이.”
“왜.”
“몇 살인지 보려고.”
“알아서 뭐 해.”
“알아야지.”
“왜.”
나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네라는 손가락으로 내가 그어놓은 표시를 봤다.
“이거 하나 빠졌어.”
“뭐.”
그녀는 어떤 홍수 뒤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내 기억에는 그 사건이 그 전이었다.
둘이 한참 다퉜다.
결론은 안 났다.
“봐.”
네라가 말했다.
“세지도 못하면서.”
“당신 기억이 틀린 걸 수도 있지.”
“당신 기억이 틀린 걸 수도 있고.”
나는 그 가능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며칠 뒤 마을에서 큰 식사를 같이 했다.
수확이 괜찮았던 해였다.
오래된 친구들이 모였다.
어릴 때 강에서 놀던 그 친구도 있었다.
그는 자기 딸이 곧 결혼한다고 말했다.
나는 놀랐다.
“벌써?”
그가 웃었다.
“네 아들도 다 컸잖아.”
맞았다.
사무도 이미 어린아이 체형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집 아이는 빨리 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가 물었다.
“넌 딸 결혼하면 울 것 같냐.”
“이라 아직 어려.”
네라가 옆에서 말했다.
“안 어려.”
사람들이 웃었다.
나는 억울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며 이라를 봤다.
정말 내가 생각한 것보다 컸다.
언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자꾸 나왔다.
시간이 너무 빨랐다.
그런데 내 몸에서는 그 속도를 찾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어느 날 내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
“왜.”
내가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턱을 이쪽저쪽 돌려봤다.
“뭐 해.”
“그냥.”
“네라도 맨날 그러는데.”
어머니가 웃었다.
“네라는 뭐래.”
“내가 늦게 늙는대.”
어머니는 한동안 나를 봤다.
“그럴 수도 있지.”
“어머니는 어땠어?”
“뭐가.”
“젊을 때.”
그녀는 웃었다.
“나도 젊었지.”
대답이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나는 부모 쪽에서 비슷한 사람이 있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몇 명을 떠올렸지만 확실한 사람은 없었다.
아주 오래 살았다는 친척 이야기.
젊어 보였다는 사람.
그런 이야기는 어느 집에나 조금씩 있었다.
정확한 나이도 기록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완전히 이상한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집안 체질.
그 정도.
그 설명은 꽤 오래 버텼다.
네라와 같이 손을 펴놓고 비교한 적도 있다.
그녀가 먼저 했다.
“봐.”
“뭘.”
“당신 손.”
내 손바닥에는 일해서 생긴 굳은살이 있었다.
네라 손에도.
차이는 크지 않아 보였다.
“똑같네.”
내가 말했다.
네라는 손등을 뒤집었다.
“여긴.”
아주 작은 선들이 있었다.
내게도 있었지만 적었다.
“일을 더 많이 해서 그렇지.”
“누가 더 많이 했는데.”
말을 잘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물을 두 번 길었다.
네라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우리는 나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컸고,
부모는 천천히 느려졌고,
나는 일을 했다.
‘조금 늦는 사람’이라는 설명은 아직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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