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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화 — 연도를 세기 전에

세상이 이름을 갖기 전에 · 2 / 370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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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가장 간단한 설명이었다.

아버지는 역사에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역사’라고 부르는 거대한 사건보다는 그 주변에 남은 사소한 기록을 좋아했다.

왕의 조서보다 세금 장부.

유명 장군의 초상보다 이름 없는 병사의 편지.

황금 장식보다 깨진 밥그릇.

어릴 때 줄리언은 박물관에서 아버지가 깨진 그릇 하나 앞에 십 분 넘게 서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해?”

아버지가 말했다.

“누군가는 이걸 매일 썼겠지.”

“그래서?”

“그래서 중요한 거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런 취향으로 역사소설을 썼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았다.

줄리언은 문서를 계속 읽었다.

첫 번째 이름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기억하는 소리가 정말 내 이름인지, 나중에 읽은 기록이나 다른 사람의 이름과 섞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 아래에는 네 개의 표기가 있었다.

[기억]

[기록]

[추정]

[모름]

내가 직접 기억한다고 믿는 것과, 과거의 내가 남긴 기록을 읽고 지금의 내가 다시 알게 된 것을 구분하려고 한다.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줄리언은 화면을 내렸다.

문장은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자신이 불멸자라고 주장하는 글이라면 보통 더 확신에 차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오히려 계속 의심했다.

자기 기억을.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직접 봤다고 주장하는 것조차.

사람은 자기가 직접 본 것을 가장 정확하다고 믿는다.

오래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직접 본 것도 잊고, 바꾸고, 섞는다.

줄리언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또 왜 이렇게 진지한데.”

다음 문단.

이 글을 네가 읽고 있다면 처음에는 내가 소설을 썼다고 생각할 것이다.

줄리언은 손을 멈췄다.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나도 내 기억을 전부 믿지 않는다.

그 아래에는 갑자기 파란 컵 이야기가 나왔다.

여덟 살 때 줄리언이 컵을 깨뜨린 일.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던 일.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는 물건은 따로 있다고 말한 일.

마지막 문장.

그때 네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줄리언은 의자를 뒤로 밀었다.

방금 전 기억과 정확히 같았다.

당연히 같아야 했다.

아버지가 쓴 글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문서의 서술 방식 때문이었다.

독자를 속이기 위한 소설의 복선 같지 않았다.

오히려 변호사에게 남기는 진술서처럼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페이지 오른쪽에 이미지 첨부 표시가 있었다.

줄리언이 클릭했다.

검은 바탕 위에 작은 푸른 물건이 놓여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

정교한 보석은 아니었다.

표면도 조금 거칠었다.

빛에 따라 파랑과 청록 사이를 오갔다.

뒤쪽에는 짧은 긁힘이 하나 있었다.

설명.

이것은 뒤에 나온다.

먼저 강 이야기부터 하는 편이 낫겠다.

줄리언은 화면에서 시선을 뗐다.

숨겨진 보관실 안쪽 선반.

푸른 점이 찍힌 상자가 하나 있었다.

아까 봤던 상자였다.

그가 다가갔다.

잠겨 있었다.

옆에 작은 메모.

회고록에서 이 물건이 처음 나올 때까지 열지 마라.

줄리언은 소리 내어 웃었다.

“미쳤나.”

열쇠를 찾으면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이미 사라졌는데 규칙을 지켜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손이 가지 않았다.

이상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나중에 왜 안 기다렸냐고 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죽었다면—

줄리언은 그 생각을 끝내지 않았다.

다시 컴퓨터로 돌아왔다.

회고록 첫 장.

제목은 없었다.

첫 문장만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다음 줄.

강이다.

줄리언은 화면 밝기를 낮췄다.

물 한 잔을 가져왔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기억]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강이다.

이렇게 쓰면 거창해 보인다.

실제 장면은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가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진흙을 주무르고 있었다.

아마 나였을 것이다.

몇 살이었는지는 모른다.

진흙은 물 가까이에서 차가웠다.

햇볕에 마른 곳은 따뜻했다.

나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다.

소였을 수도 있고 새였을 수도 있다.

[모름]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그녀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 말을 쓰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

한때는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떠오르는 이름이 몇 개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머니의 이름인지, 후대에 만난 다른 사람의 이름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라고만 적는다.

이름은 없지만 손은 남아 있다.

검고 마른 손.

손톱 사이에 흙이 끼어 있었다.

젖은 곡물을 펼칠 때 손바닥으로 바닥을 두드리던 소리.

툭.

툭.

툭.

그 소리는 아직 기억난다.

줄리언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페이지를 넘겼다.

그날 밤 새벽 두 시가 넘을 때까지 읽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왕이나 전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진흙.

강.

어머니의 손.

부서진 집.

배고픔.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

오히려 그래서 이상했다.

거짓말이라면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가는 걸까.

줄리언은 첫 페이지를 다시 위로 올렸다.

작성일 표시가 이상했다.

문서 파일 자체는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번 수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본문 중간중간에 삽입된 스캔 이미지와 메모의 파일 생성일은 훨씬 오래됐다.

1990년대.

1980년대.

그 이전 것은 디지털 파일이 아니라 촬영된 종이였다.

아버지는 이 글을 최근에 한 번에 쓴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옮겨 적은 것 같았다.

페이지 끝에는 짧은 주석이 달려 있었다.

1987년 전사본과 1962년 타자본의 표현이 다름. 1962년 기록을 우선함.

줄리언은 눈을 가늘게 떴다.

1962년.

아버지가 몇 살이라고 했더라.

줄리언이 알기로 아버지는 1960년대 후반생이었다.

정확한 생년월일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올리려니 자신이 없었다.

가족 서류에 있는 날짜는 알았다.

하지만 생일을 크게 챙기지 않는 집이었다.

줄리언은 인터넷에서 아버지 이름을 검색했다.

재단 기사.

기부 기사.

학술행사 사진.

젊은 시절 자료는 많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공개사진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지금보다 조금 젊어 보였다.

당연했다.

줄리언은 화면 두 개를 나란히 띄웠다.

1998년 사진.

최근 사진.

차이가 별로 없었다.

“동안이긴 했지.”

혼잣말했다.

사십대 후반, 오십대에도 젊어 보이는 사람은 있었다.

아버지는 피부 관리에도 관심이 없었다. 술을 거의 안 마셨고 운동을 꾸준히 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합리적인 설명은 많았다.

줄리언은 일부러 그 설명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회고록도 소설.

오래된 사진의 남자는 친척.

이상한 법인 구조는 부자 집안의 자산관리.

아버지의 동안은 유전.

모든 게 설명 가능했다.

그런데 왜 심장이 빨리 뛰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문서에는 중간중간 이런 문장도 있었다.

내가 적은 연대를 그대로 역사 연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내가 ‘세 번째 큰물 뒤’라고 적은 사건을 현대 달력으로 옮기려면 별도의 비교가 필요하다.

후대의 고고학적 분류와 내가 기억하는 생활권의 경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소설이라면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줄리언은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독자를 편하게 속이려면 보통 반대로 하지 않나 싶었다.

아버지는 자꾸 자기 이야기를 믿지 말라고 했다.

그게 오히려 믿게 만들었다.

그는 보관실의 푸른 점 상자를 다시 바라봤다.

열지 않았다.

대신 상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문서의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줄리언은 역사학자 친구에게 연락할까 고민했다.

대학교 때 알던 사람 중 고대사 전공자가 있었다. 지금 연락하면 적어도 문서의 어조가 그럴듯한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메신저 창을 열었다.

“혹시 기원전…”

거기까지 쓰고 지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버지가 자기가 선왕조 시대부터 살았다고 주장하는 회고록을 남겼는데 좀 봐줄래?’

농담으로 들릴 게 분명했다.

그는 대신 문서 속 몇 표현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상했다.

아버지는 특정 고대 문화권을 현대 국명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다’는 주석을 반복했다. 시기를 특정할 때도 왕조명보다 홍수 주기, 교역품, 도구 형태를 언급했다.

그중 몇 개는 줄리언이 모르는 단어였다.

그는 하나를 복사해 검색했다.

학술논문 몇 편이 나왔다.

전문용어였다.

“이걸 왜 알아.”

당연히 역사재단을 운영했으니 알 수도 있었다.

모든 이상한 일에는 정상적인 설명이 붙었다.

그게 오히려 답답했다.

줄리언은 문서 메타데이터를 다시 열었다.

가장 최근 수정자는 아버지 이름이었다.

그 이전 기록은 여러 시스템을 거쳐 옮겨져 의미가 없었다.

다만 스캔 이미지의 종이 상태와 타자기 글꼴만 봐도 오래된 자료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한 페이지에는 젊은 아버지 사진이 클립으로 붙은 종이가 스캔되어 있었다.

줄리언은 확대했다.

사진 아래 손글씨.

“이번 세대의 신분은 오래 쓰지 말 것.”

줄리언은 숨을 멈췄다.

그 아래에는 후대에 추가한 듯한 다른 색 잉크.

“결국 31년 사용. 또 같은 실수.”

그는 화면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소설 소품.

가족이 만든 장난.

아버지가 평생 준비한 거대한 개인 프로젝트.

가능한 설명은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런 프로젝트를 아들에게만 남겼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는 부엌으로 가 커피를 만들었다.

물을 끓이는 동안 거실 벽에 걸린 그림을 봤다.

평범한 풍경화라고 생각했던 그림.

아버지는 그 그림을 몇십 년째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모든 물건이 의심스러워졌다.

줄리언은 스스로에게 욕을 했다.

“그만.”

회고록 한 파일 때문에 집 전체를 미스터리로 만들고 있었다.

커피를 들고 다시 서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부러 가장 터무니없는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

나는 정확히 몇 살인지 모른다.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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