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화 — 아버지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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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바렌은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집이 너무 멀쩡하다는 사실이 더 불길했다.
사람 하나가 갑자기 사라졌다면 뭔가 흔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린 서랍이나 급하게 챙긴 옷, 식탁 위에 놓인 메모, 최소한 현관에 없어진 신발 한 켤레쯤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관 신발장은 평소 그대로였다.
지하주차장에는 아버지가 가장 자주 타던 검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차 안에는 선글라스와 충전 케이블, 반쯤 비운 생수병까지 남아 있었다. 트렁크도 비어 있었다.
휴대전화는 서재 책상 위에서 발견됐다.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그 옆에 은색 시계가 놓여 있었다.
줄리언은 그 시계를 한동안 바라봤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차고 다니던 시계였다. 고급 브랜드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대답 대신 손목을 돌려 시계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
“오래됐어.”
“얼마나?”
“꽤.”
“새로 사면 되잖아.”
“고칠 수 있는데 왜.”
그런 사람이었다.
돈이 없어서 오래 쓰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아버지가 부자라는 사실은 줄리언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확한 규모만 몰랐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돈 걱정이 없는 집’ 정도라고 생각했다.
학교 등록금 때문에 부모가 다투는 친구를 보고 처음 자신이 다른 환경에서 산다는 걸 알았다. 대학에 갈 때는 비용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미 필요한 돈이 별도의 계좌에 들어 있었다.
몇 년 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몇 달 쉴까 해.”
아버지는 식탁에서 차를 마시며 물었다.
“그럼 쉬어.”
“생활비는?”
“네 계좌 있잖아.”
“그건 아빠 돈이잖아.”
아버지가 컵을 내려놓았다.
“오래전에 네 걸로 만들어 놨어.”
“왜?”
“나중에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때는 부자들의 이상한 준비성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나중에 필요할 수 있으니까’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줄리언은 다시 서재를 둘러봤다.
집은 넓었다.
도심 높은 층이라 창밖으로 빌딩의 불빛이 내려다보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집은 넓이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비어 있었다.
장식품이 거의 없었다.
좋은 가구.
책.
몇 점의 그림.
그 정도.
옷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오래 입은 것들이었다.
여행가방은 두 개뿐이었다.
아버지는 어디든 짐을 적게 가지고 갔다.
“그냥 필요한 거 사면 되잖아.”
줄리언이 언젠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한 걸 줄이는 게 더 편해.”
그땐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습관처럼 느껴졌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사는 사람의 습관.
경찰은 성인 남성의 자발적 잠적 가능성을 먼저 이야기했다.
범죄 흔적도 없고, 금전적 문제도 없고, 최근 협박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줄리언은 ‘금전적 문제’ 부분에서 웃을 뻔했다.
아버지의 금전 문제를 누가 확인했다는 건지.
그가 아는 재단만 세 개였다.
역사자료 보존재단.
문화유산 관련 비영리기구.
연구지원 재단.
거기에 투자회사가 몇 개 더 있었다.
가족사무소라는 것도 있었다.
정확히 뭘 하는 곳인지 줄리언은 몰랐다.
“그냥 자산 관리하는 곳이야.”
아버지는 그렇게 설명했다.
“무슨 자산?”
“여러 가지.”
질문을 더 하면 대화가 끝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라진 뒤 변호사들이 찾아왔다.
한 명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나라와 회사 이름이 붙은 이메일이 들어왔다.
이상한 점은 그 누구도 아버지가 죽었다는 가정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상 권한이 전환됩니다.”
“기존 수익권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바렌 씨의 부재가 일정 기간을 넘길 경우 별도 절차가 작동합니다.”
줄리언은 물었다.
“왜 이런 게 준비돼 있죠?”
상대는 매우 직업적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래전부터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요?”
“제가 담당하기 전부터입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 줄리언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개인 서류를 제대로 열어보기 시작했다.
서재 가장 아래 서랍에서 봉투 하나가 나왔다.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Julian.
손글씨였다.
아버지의 글씨.
줄리언은 봉투를 바로 열지 못했다.
몇 초 동안 손에 들고만 있었다.
혹시 유서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봉투 안에는 열쇠 하나와 짧은 메모가 있었다.
내가 이것을 직접 보여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먼저 이 기록부터 읽어라.
줄리언은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죽었다면’도 아니었다.
‘사라졌다면’도 아니었다.
직접 보여줄 수 없는 상황.
그 아래에는 서재 책장 위치가 적혀 있었다.
북쪽 벽.
위에서 세 번째 칸.
왼쪽에서 네 번째 책부터 여섯 번째 책까지 꺼낼 것.
줄리언은 그 위치로 갔다.
책을 빼냈다.
벽은 평범해 보였다.
손으로 밀자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쪽 아래에 얇은 금속 홈이 있었다.
열쇠를 꽂았다.
찰칵.
책장 뒤쪽 벽 일부가 안으로 밀렸다.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줄리언은 불을 켰다.
방이라고 하기에는 좁고, 금고라고 하기에는 컸다.
온습도 조절 장치가 돌아가고 있었다.
선반이 벽면을 채웠다.
문서 상자.
밀봉된 케이스.
디지털 저장장치.
사진 보관함.
그중 가장 이상한 것은 라벨이었다.
1968
1911
1874
1832
거기까지는 오래된 가족 자료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더 아래 선반에는 연도가 없었다.
대신 기호.
손으로 그린 모양.
알 수 없는 문자처럼 보이는 표식.
그리고 지명.
줄리언이 아는 현대 지명도 있었고,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다.
그는 몇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선반 하나 위에 현대식 외장 저장장치가 놓여 있었다.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먼저 이것부터.
줄리언은 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시키네.”
저장장치를 서재 컴퓨터에 연결했다.
암호 입력창이 떴다.
힌트는 단 하나.
네가 여덟 살 때 깨뜨린 것.
줄리언은 손을 키보드에서 뗐다.
여덟 살.
깨뜨린 것.
기억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파란 컵.
아버지가 매일 아침 쓰던 낡은 컵.
거실에서 뛰다가 탁자를 쳤고, 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 조각으로 깨졌다.
줄리언은 울었다.
아버지가 화낼까 봐서가 아니었다.
그 컵을 아버지가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바닥에 앉아 조각을 주웠다.
“괜찮다.”
“아빠 이거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오래 쓴 거지. 제일 좋아한 건 아니야.”
“그럼 제일 좋아하는 건 뭔데?”
아버지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땐 그냥 웃음을 참는 줄 알았다.
“그건 네가 커도 모를 거다.”
줄리언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파일 하나가 나타났다.
제목이 없었다.
작성자 이름도 없었다.
첫 페이지를 열었다.
첫 줄.
나는 정확히 몇 살인지 모른다.
줄리언은 눈을 찌푸렸다.
그다음 줄.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아직 연도를 세는 방법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뭐야.”
밖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지 나흘째 되는 밤이었다.
그리고 줄리언은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숨긴 것이 돈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그가 집을 정리하면서 가장 이상하게 느낀 것은 냉장고였다.
냉장고 안에는 음식이 많지 않았다.
달걀.
과일.
치즈.
그리고 아버지가 늘 사두던 작은 병의 탄산수.
며칠 이상 집을 비울 사람이면 상할 음식을 정리했을 법했다. 반대로 사고를 당했다면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무엇이든 가능했다.
줄리언은 탄산수 한 병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마실 것 같았다.
그 행동이 스스로 우스워 한숨이 나왔다.
거실 한쪽에는 오래된 나무 상자가 있었다. 줄리언은 어릴 때부터 봤지만 열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 상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한 적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가족 누구도 열지 않았다.
줄리언은 뚜껑에 손을 얹었다.
열었다.
안에는 별것 없었다.
여러 나라 동전.
낡은 열쇠.
오래된 만년필.
사진 몇 장.
그중 가장 오래돼 보이는 흑백사진 한 장을 들었다.
젊은 남자 세 명이 서 있었다.
옷차림으로 봐서는 아주 오래된 사진 같았다. 백 년 정도? 줄리언은 정확히 몰랐다.
오른쪽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이 멈췄다.
아버지와 닮았다.
닮은 정도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머리 모양이 달랐고 수염이 있었다.
그래도 눈과 코, 입의 비율이 이상할 정도로 비슷했다.
사진 뒤를 봤다.
손글씨로 짧은 날짜와 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줄리언이 아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증조부인가?”
아버지 쪽 가족사진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 부모 이야기를 피했다.
어릴 때 죽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해외에서 살았다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줄리언이 물을 때마다 대답이 조금씩 달랐다.
그때는 귀찮아서 대충 답하는 줄 알았다.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으려다가 멈췄다.
휴대전화 화면 속 얼굴 인식 표시가 남자의 얼굴을 잡았다.
평범한 기능이었다.
줄리언은 괜히 기분이 나빠 사진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그날 저녁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김—아니, 바렌 씨의 개인 문서에서 지시서를 찾으셨습니까?”
“네.”
“그럼 우선 그 지시에 따르시는 게 좋습니다.”
“왜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죠?”
상대가 잠깐 침묵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아버지가 사라질 걸요.”
“그렇게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절차가 있어요?”
“장기 부재에 대비한 구조는 자산가에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줄리언은 창밖을 봤다.
“몇 년 전에 만든 건가요?”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최근 변경은 2004년입니다.”
“그 전에는요?”
“이전 구조를 승계한 것입니다.”
“얼마나 전?”
다시 침묵.
“그건 별도 문서 확인이 필요합니다.”
통화가 끝난 뒤 줄리언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2004년.
그가 아직 학생일 때였다.
아버지는 최소한 그때부터 자신이 어느 날 ‘직접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실종보다 더 불쾌했다.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