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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69화 — 오늘 하루

14,610일 · 69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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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프로젝트의 야간회의가 취소됐다.

병원 쪽 일정변경.

Helioxen 팀도 대부분 돌아갔다.

대니얼은 노트북을 닫고 시간을 봤다.

오후 8시 17분.

애매했다.

회사로 돌아가면 밤까지 일할 수 있다.

집에 가도 된다.

그때 미나가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아직 있었어요?”

“네.”

“회의 취소됐는데.”

“정리 중.”

미나가 대니얼의 닫힌 노트북을 봤다.

“닫혀 있는데요.”

대니얼이 웃었다.

“지금 막.”

미나도 가방을 들고 있었다.

“저녁 먹었어요?”

“아직.”

“저도.”

잠깐 침묵.

대니얼은 이게 어떤 상황인지 지나치게 분석하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냥 프로젝트 동료 두 명이 저녁을 안 먹었다.

“근처에 뭐 있습니까?”

“병원 카페는 닫았고.”

미나가 말했다.

“길 건너 샌드위치집.”

둘은 같이 갔다.

로맨틱한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형광등.

플라스틱 테이블.

늦은 시간 손님 몇 명.

대니얼은 샌드위치.

미나는 수프와 커피.

처음 몇 분은 프로젝트 얘기였다.

병원 C 데이터.

가족 안내.

훈련 일정.

그러다 미나가 말했다.

“일 얘기 금지할까요?”

대니얼이 멈췄다.

“왜요?”

“오늘 회의도 취소됐는데 여기서 또 하면 그냥 추가회의잖아요.”

“그럼 뭘 얘기합니까?”

미나가 웃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걸 대화라고 해요.”

대니얼도 웃었다.

“잘 못합니다.”

“보이네요.”

대화주제가 바뀌었다.

학교.

가족.

미나는 한국계 미국인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는 안정적인 전문직을 원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내과를 생각했다.

임상실습 중 응급실과 재난대응 쪽에 관심이 생겼다.

“왜요?”

대니얼이 물었다.

“시스템이 사람을 바로 때리잖아요.”

“무슨 뜻?”

“평소에는 의료시스템 문제라고 하면 행정처럼 들려요.”

미나가 수프를 저었다.

“근데 재난 오면 병상, 인력, 물류, 정보가 바로 환자 몸에 영향을 줘요.”

대니얼은 그 말을 좋아했다.

자기가 Helioxen에서 배우는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시스템 쪽 연구를?”

“아마.”

“아마?”

“아직 확정 안 했어요.”

대니얼은 놀랐다.

자기는 모든 사람이 장기계획을 가져야 할 것처럼 생각했다.

미나는 스물몇 살의 자기 미래를 아직 고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

“불안하지 않습니까?”

“뭐가요?”

“아직 결정 안 한 게.”

“조금.”

미나가 웃었다.

“근데 바뀔 수도 있죠.”

대니얼은 그 말이 낯설었다.

자기 미래는 바뀌면 안 된다.

2046년.

고정점.

그를 향해 모든 걸 역산한다.

미나가 물었다.

“대표님은 언제부터 그렇게 계획적으로 살았어요?”

대니얼이 대답을 골랐다.

“어느 순간부터.”

“무슨 일 있었어요?”

정확한 질문.

대니얼은 컵을 봤다.

“큰 실패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사업?”

“그보다 큰 거.”

미나는 기다렸다.

대니얼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도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걸 미리 막으려고 해요?”

대니얼의 시선이 올라갔다.

“그렇게 보입니까?”

“조금.”

“나쁜 겁니까?”

“모르겠어요.”

미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대신 다 막을 수는 없잖아요.”

대니얼은 대답하지 않았다.

첫 삶.

맞다.

다 막지 못했다.

“그래서 준비하는 겁니다.”

“준비는 해야죠.”

미나가 말했다.

“근데 준비하는 동안에도 시간이 가잖아요.”

“그게 문제입니다.”

“왜 문제예요?”

대니얼이 미나를 봤다.

“시간이 줄어드니까.”

“누구한테나 줄어들죠.”

너무 단순한 답.

미나는 말했다.

“근데 그 시간도 사는 시간이에요.”

대니얼은 이미 비슷한 말을 들었다.

Laura.

친구.

Mina 자신도 예전에 말했다.

오늘 하루도 인생.

이번에는 더 조용하게 들렸다.

“전 자꾸 미래 준비기간처럼 느껴집니다.”

대니얼이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미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미래 오면요?”

“뭐가요?”

“언제부터 사는데요?”

말이 막혔다.

2046년 이후.

또 같은 질문의 다른 형태.

대니얼은 웃었다.

“다들 그 질문 좋아하네요.”

“다들?”

“이선도.”

“답은?”

“아직 없습니다.”

미나가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은 그냥 저녁으로 해요.”

“프로젝트 회의 아니고?”

“네.”

대니얼은 웃었다.

그 뒤로 정말 일 얘기를 덜 했다.

좋아하는 음식.

어릴 때.

대니얼이 별을 좋아했다는 로라의 이야기.

미나는 여행 얘기를 했다.

대니얼은 출장과 여행의 차이를 잘 몰랐다.

미나가 웃었다.

“심각하네요.”

“그 정도입니까?”

“네.”

샌드위치집이 문 닫을 시간이 됐다.

둘은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미나가 말했다.

“다음 회의는 목요일.”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일 얘기 해도 돼요.”

“허락 감사합니다.”

둘이 웃었다.

미나는 주차장 반대쪽으로 갔다.

“잘 가요, 대니얼.”

“한 박사도요.”

미나가 돌아봤다.

“아직 박사 아니에요.”

대니얼이 멈췄다.

또.

“죄송합니다.”

미나가 웃었다.

“정말 사과는 빨라졌네요.”

그녀가 떠났다.

대니얼은 차에 탔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회사 메일.

열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그냥 저녁.

미나가 한 말.

그 정도는 지켜볼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로라가 거실에 있었다.

“늦었네.”

“저녁 먹고 왔어요.”

“회사?”

대니얼이 잠깐 생각했다.

“아뇨.”

로라가 아주 잠깐 웃었다.

“좋네.”

대니얼은 방으로 올라갔다.

D-Day는 확인하지 않았다.

하루가 줄었다.

그래도 그 하루를 전부 잃은 건 아니었다.

샌드위치집에서 돌아오는 길, 대니얼의 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다.

회사 메시지.

그는 화면을 봤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미나가 물었다.

“안 봐도 돼요?”

“Level 3 아니면요.”

“그런 것도 있어요?”

“회사 경보등급.”

“병원 같네요.”

“병원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미나가 웃었다.

둘은 잠깐 걸었다.

주차장까지 5분도 안 되는 거리.

대니얼에게는 이상하게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일 얘기를 안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침묵이 생기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미나는 별로 불편해하지 않았다.

“별 좋아한다면서요.”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어릴 때 얘기했잖아요.”

“아.”

대니얼은 하늘을 봤다.

도시 불빛 때문에 별은 많지 않았다.

어딘가에 그 돌이 있다.

NEXUS-46.

아직 이름도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천체.

대니얼은 몇 초 동안 하늘을 오래 봤다.

미나가 말했다.

“또 멀리 갔죠?”

“조금.”

“뭘 봐요?”

대니얼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잠깐 멈췄다.

“미래.”

미나가 웃었다.

“하늘 보고요?”

“그런 셈입니다.”

“저는 오늘 내일도 잘 모르겠는데.”

그 말이 대니얼에게 신기했다.

미나는 불안해하면서도 현재를 살 수 있었다.

자기는 미래를 알아서 현재를 못 살 때가 많았다.

둘은 주차장 갈림길에 섰다.

미나가 말했다.

“목요일에 봐요.”

“네.”

“그리고.”

“뭐죠?”

“오늘 저녁을 일정표에 성과로 넣지는 마세요.”

대니얼이 웃었다.

“왜요?”

“그냥 먹은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녀가 떠났다.

대니얼은 차에 타고 잠깐 생각했다.

자기는 모든 걸 의미 있게 만들려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그런데 모든 시간이 목적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아무 목적 없이 밥을 먹고.

조금 걷고.

별을 보고.

그게 그냥 하루의 일부일 수 있다.

그 생각이 아직 낯설었다.

집에 도착한 뒤 회사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용은 사소했다.

서비스 가격표 문구 수정.

내일까지면 되는 일.

대니얼은 답하지 않았다.

아침에 보기로 했다.

그날 밤 7시간을 잤다.

알람 전에 깼다.

D-Day는 한 칸 줄어 있었다.

대니얼은 이번에는 숫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하루를 살았다는 사실만 남겼다.

오늘 하루는 아무 성과도 남기지 않았지만, 대니얼은 그게 실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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