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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64화 — 데이터는 환자를 모른다

14,610일 · 64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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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시뮬레이션 모델이 첫 번째로 대규모 과거 데이터를 돌린 날, 결과는 엉망이었다.

병원 A의 평균 응급실 체류시간.

27분.

미나가 화면을 보고 말했다.

“말도 안 돼요.”

대니얼이 데이터를 확인했다.

“기록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7분이면 응급실이 아니라 카페예요.”

회의실에서 웃음이 터졌다.

IT담당은 웃지 못했다.

원인은 금방 나왔다.

병원 A는 ‘응급실 체류 종료’를 의사 처치 종료시간으로 기록했다.

실제 병상에서 나간 시간은 별도.

병원 B는 퇴실시간.

병원 C는 입원결정시간.

같은 지표명.

세 가지 뜻.

대니얼이 말했다.

“이걸 합쳐서 평균 낸 겁니까?”

개발자가 고개를 숙였다.

“데이터 정의문서 기준으로…”

“정의문서가 틀렸습니다.”

IT담당이 말했다.

“틀린 게 아니라 기관별 정의가 달랐습니다.”

대니얼은 이마를 문질렀다.

또 의미.

숫자는 정확했다.

열의 이름도 맞았다.

의미가 달랐다.

그날 모델 작업은 중단됐다.

코드 대신 데이터 사전.

병원별 정의.

변환규칙.

신뢰도.

누락률.

대니얼은 처음엔 답답했다.

미나가 말했다.

“환자기록은 원래 연구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이렇게…”

“진료하려고 만든 거니까.”

목적이 다르다.

병원의 기록은 의료진이 일하기 위해 만든다.

나중에 시스템 모델을 만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니얼은 공장 데이터 생각이 났다.

생산기록도 비슷했다.

현장에서 필요한 만큼.

외부 투자자가 원하는 형태와 다르다.

데이터가 존재한다고 바로 지식이 되는 건 아니다.

그 주 내내 Helioxen 직원들이 병원을 돌았다.

간호사.

응급구조사.

행정.

의사.

IT.

“이 버튼 언제 누릅니까?”

“이 시간은 누가 입력합니까?”

“자동입니까?”

“환자 몰리면 나중에 입력할 때도 있습니까?”

질문 하나마다 데이터의 의미가 달라졌다.

대니얼은 병원 C 간호사에게 물었다.

“왜 이 시간은 항상 정각 근처가 많습니까?”

간호사가 웃었다.

“밀리면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해서.”

“그럼 실제시간이 아니고?”

“대략.”

대니얼은 화면을 봤다.

통계적으로 예쁜 패턴.

현실에서는 기록 습관.

만약 이걸 그대로 모델에 넣었으면 존재하지 않는 병원 행동을 학습했을 것이다.

미나가 옆에서 말했다.

“데이터는 환자를 모르죠.”

“무슨 뜻?”

“왜 저 숫자가 그렇게 생겼는지 모른다고요.”

대니얼은 그 말을 적었다.

Data does not know its own meaning.

그녀가 봤다.

“또 영어로 써요?”

“습관.”

“나중에 책 낼 건가.”

대니얼이 웃었다.

“그럴 계획 없습니다.”

“2046년 이후에?”

대니얼의 펜이 멈췄다.

“왜 그 연도를.”

미나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회의자료에 장기계획 연도 자주 나오던데요.”

회사 내부 자료 일부.

대니얼은 순간 긴장했다.

미나는 눈치 못 챈 듯 계속 말했다.

“40년 계획 세우는 사람 흔치 않잖아요.”

“장기적으로 보려고요.”

“그때 몇 살인데요?”

대니얼이 계산했다.

“64.”

“은퇴할 나이네요.”

대니얼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나가 말했다.

“그 뒤 계획은?”

또.

이선과 같은 질문.

대니얼은 웃었다.

“왜 다들 그걸 물어봅니까?”

“40년짜리 계획 있는 사람이 그다음을 생각 안 하면 이상하니까.”

대니얼은 화면을 봤다.

데이터 사전.

병상.

인력.

응급실.

“모르겠습니다.”

미나가 잠깐 그를 봤다.

“그럴 줄 알았어요.”

“왜요?”

“계속 끝날 것처럼 일하잖아요.”

대니얼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가볍게 말했지만 정확했다.

“오늘 하루도 인생이에요.”

미나가 말했다.

“미래 준비기간 아니고.”

대니얼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너무 단순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오후 모델 회의로 돌아갔다.

Helioxen은 데이터마다 신뢰도 등급을 붙였다.

높음.

중간.

낮음.

미확인.

불확실한 데이터는 모델이 같은 무게로 쓰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대니얼은 미래기억 등급 A/B/C/D/X를 떠올렸다.

자기도 이미 같은 방법을 쓰고 있었다.

기억도 데이터였다.

출처가 자기라는 이유로 완벽하지 않다.

그날 그는 개인 노트를 열었다.

`2046 Impact Date — A`

`Asteroid size 7–9km — A/B`

`Exact orbit — D`

`Specific technology timing — C`

몇 항목을 다시 낮췄다.

A1 실패 뒤에도 아직 지나치게 자신 있던 것들.

미나가 한 말은 의료데이터 얘기였지만 Daniel 자신의 미래에도 적용됐다.

데이터는 자기 의미를 모른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해석한다.

그 해석이 틀릴 수 있다.

그날 모델 정확도는 한 줄도 좋아지지 않았다.

대신 잘못 믿고 있던 데이터 수십 개를 제거했다.

대니얼은 그게 진짜 진전이라고 느꼈다.

데이터 정리 중 더 위험한 문제가 나왔다.

결측값.

병원 D의 특정 시간대 CT 대기시간이 비어 있었다.

개발자는 평균값으로 채우는 방안을 제안했다.

대니얼이 물었다.

“왜 비었습니까?”

“기록 누락일 수도 있습니다.”

“장비가 안 돌아간 건?”

“가능합니다.”

“시스템 전환 중이었을 수도?”

“그것도.”

평균으로 채우면 깔끔하다.

하지만 비어 있는 이유를 모른다.

미나는 말했다.

“모르는 걸 정상이라고 가정하면 위험하죠.”

대니얼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측을 숨기지 않는다.

`unknown`.

모델은 불확실성을 높인다.

상황에 따라 보수적으로 추천순위를 낮춘다.

다만 모든 unknown을 위험으로 처리하면 작은 병원이 항상 불리해질 수 있다.

데이터가 덜 자동화된 병원.

기록이 느린 병원.

실제 역량이 낮은 게 아니라 정보 시스템이 약한 곳.

대니얼은 그 부작용을 알아챘다.

“데이터 품질 때문에 환자 배분이 한쪽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은 병원은 더 안 쓰게 되고.”

“데이터도 더 안 쌓이고.”

악순환.

IT담당이 말했다.

“그럼 데이터 품질과 의료능력을 분리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좋았다.

병원 역량.

데이터 신뢰도.

두 축.

시스템은 ‘능력이 낮다’가 아니라 ‘현재 상태를 확실히 모른다’고 표현한다.

그 차이는 중요했다.

언어 하나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

대니얼은 투자시장에서 비슷한 걸 봤다.

정보가 적다고 자산이 나쁜 건 아니다.

단지 불확실성이 크다.

그 불확실성에는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

그날 병원 D 담당자는 말했다.

“우리 데이터가 약한 건 압니다.”

방어적인 말투.

대니얼이 말했다.

“그래서 능력 낮다고 표시하지 않을 겁니다.”

상대 표정이 조금 풀렸다.

“대신 상태확인 요청이 더 자주 갈 수 있습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신뢰는 시스템 안의 표현에서도 생겼다.

평가받는 조직이 왜 낮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모델이 사람과 기관을 몰래 순위매기기 시작하면 협력이 깨질 수 있다.

대니얼은 이 프로젝트가 기술보다 거버넌스를 더 많이 가르친다고 느꼈다.

저녁 무렵 미나가 말했다.

“오늘은 몇 시까지 일할 거예요?”

“왜요?”

“데이터 사전 밤새 본다고 빨리 안 끝나요.”

“집에 가라는 겁니까?”

“네.”

대니얼은 시계를 봤다.

8시 40분.

예전 같으면 아직 초저녁.

“한 시간만.”

미나가 한숨을 쉬었다.

“고치는 중 맞아요?”

대니얼이 웃었다.

“30분.”

“협상도 하네요.”

결국 9시 15분에 나왔다.

정확히 35분.

미나가 이미 없어서 아무도 확인하진 않았다.

그런데 대니얼은 이상하게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사소한 약속.

PROJECT 2046과 아무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약속.

아마 그래서 더 필요했다.

그날 이후 팀은 빈칸을 채우기보다 먼저 빈 이유를 물었다. 데이터 정제의 첫 질문이 기술에서 현장으로 옮겨갔다.

대니얼은 그 원칙을 데이터팀 첫 페이지에도 그대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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