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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62화 — 병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14,610일 · 62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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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ioxen의 첫 의료 시뮬레이션은 보기 좋게 틀렸다.

화면에는 지역지도가 있었다.

다섯 병원.

구급대 기지.

가상의 대형사고 지점.

환자 40명.

중증도별 분류.

모델은 이송시간과 병원용량을 계산했다.

결과.

병원 A 12명.

B 9명.

C 8명.

D 6명.

E 5명.

깔끔했다.

대니얼은 말했다.

“부하가 균형입니다.”

미나는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망했네요.”

대니얼이 그녀를 봤다.

“어디가요?”

“병원 C.”

“병상 남습니다.”

“외상외과 한 팀뿐이에요.”

“모델에 외상수용량 넣었습니다.”

“동시에 몇 명까지?”

대니얼이 화면을 확인했다.

“중증외상 4.”

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하루 수용능력에 가까워요.”

“실시간 자료 아니고?”

네트워크 담당자가 말했다.

“보고양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대니얼의 표정이 굳었다.

같은 ‘4’가 다른 의미.

시간단위가 없었다.

미나가 말했다.

“첫 한 시간에 네 명이 들어오면 이미 과부하일 수 있어요.”

대니얼은 모델을 멈췄다.

“그럼 throughput이 필요합니다.”

“뭐라고요?”

“처리속도.”

미나가 잠깐 그를 봤다.

“환자 처리라는 표현은 여전히 별로예요.”

대니얼이 한숨을 쉬었다.

“진료 흐름 속도.”

“그건 낫네요.”

또 대화.

이제 익숙해지고 있었다.

팀은 병원별로 단순 재고가 아니라 시간당 능력을 보기 시작했다.

CT 한 대.

검사 하나에 시간.

수술실.

한 환자 끝나야 다음.

간호사.

동시에 맡을 수 있는 환자 수.

혈액.

재고뿐 아니라 보충속도.

구급차.

병원에 도착한 뒤 바로 다음 환자에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환자 인계.

세척.

재배치.

“병상은 안 움직입니다.”

미나가 말했다.

대니얼이 웃었다.

“당연하죠.”

“근데 모델은 병상을 숫자로만 보니까 움직이는 것처럼 써요.”

그녀는 화면을 가리켰다.

환자 하나를 병원 A 대신 B로 보내면 B의 ‘남은 병상’이 하나 줄었다.

너무 단순하다.

실제 환자는 병상을 점유한다.

얼마 동안?

1시간?

6시간?

2일?

환자 종류마다 다르다.

응급실에서 입원병동으로 이동하면 응급병상은 다시 열린다.

반대로 병동이 꽉 차면 응급실 환자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Boarding.

미나가 설명했다.

대니얼은 바로 이해했다.

공장 재공품과 비슷했다.

뒷공정이 막히면 앞공정이 멈춘다.

“병동이 병목이면 응급실 병상 늘려도 안 풀리네요.”

“맞아요.”

“퇴원도 변수고.”

“맞고.”

“검사도.”

“네.”

대니얼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미나가 말했다.

“왜 좋아해요?”

“문제가 구조적으로 보이니까요.”

“사람 아픈 문제인데.”

“그래서 풀어야죠.”

미나는 잠깐 그를 봤다.

“그건 맞네요.”

시뮬레이션은 다시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환자를 ‘점’처럼 순간 이동시키지 않았다.

도착.

평가.

영상.

수술.

입원.

퇴원.

단계를 지나간다.

각 단계에 시간분포.

확률.

자원.

데이터가 부족했다.

대니얼은 물었다.

“과거 기록 있습니까?”

병원마다 있었다.

문제는 형식이 달랐다.

타임스탬프도 제각각.

어떤 곳은 접수시간.

어떤 곳은 의사 첫 평가.

어떤 곳은 병상배정.

대니얼은 머리를 감쌌다.

“다 같은 용어인데 정의가 다릅니까?”

IT담당이 말했다.

“의료 데이터 처음 보시죠?”

“네.”

“환영합니다.”

회의실에 웃음.

Helioxen은 처음부터 데이터를 통합하지 않았다.

각 병원의 의미를 먼저 정의했다.

`ED arrival`.

무슨 시점.

`bed available`.

무슨 조건.

`OR available`.

수술실만 비면 되는가.

팀까지 준비돼야 하는가.

미나가 계속 질문했다.

“마취팀 없으면 available 아니죠?”

“그럼 수술팀 availability를 별도.”

“혈액 없으면?”

“조건.”

“중환자실 없으면?”

“수술 후 갈 곳이 없으니 제한.”

숫자 하나가 계속 복잡해졌다.

대니얼은 피곤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이거 언제 끝납니까?”

누군가 물었다.

대니얼이 자동으로 일정을 말하려 했다.

미나가 먼저 말했다.

“그 질문 대니얼한테 하지 마세요. 짧게 말할 겁니다.”

사람들이 웃었다.

대니얼이 미나를 봤다.

“제가 그렇게 유명합니까?”

“교육 때 들었어요.”

“누가요?”

“공장 쪽에서.”

“무슨 얘기를.”

“뭐든 빨리 하려고 한다고.”

대니얼은 한숨을 쉬었다.

“평판이 좋네요.”

“고치는 중이라면서요.”

“네.”

“그럼 일정은?”

대니얼은 팀을 봤다.

IT.

의료.

Helioxen.

각자 계산했다.

“첫 실사용 가능한 버전 12주.”

Helioxen 개발자가 말했다.

대니얼은 8주를 생각했다.

입을 다물었다.

“좋습니다.”

미나가 웃었다.

“진짜 많이 고치셨네요.”

“12주가 길긴 합니다.”

“그 말까지 안 하면 더 좋고요.”

12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첫 4주는 데이터 정의.

코드는 생각보다 적었다.

대니얼은 처음엔 답답했다.

컴퓨팅 회사가 회의와 정의에 시간을 쓴다.

그런데 정의가 틀리면 계산은 더 빨리 틀릴 뿐이다.

5주차.

첫 통합 데이터.

6주차.

환자흐름 모델.

7주차.

병원 C 과부하 재현.

이번에는 첫 한 시간 중증외상 4명만 들어가도 수술실·CT·ICU가 연쇄적으로 막혔다.

화면에 대기시간이 급격히 올라갔다.

미나가 말했다.

“이제 실제랑 비슷하네요.”

대니얼은 그 말을 들으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빠르다’가 아니다.

‘비슷하다.’

모델의 첫 성공은 현실보다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현실의 답답함을 제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그날 대니얼은 연구팀에 말했다.

“최적화는 나중입니다.”

“먼저?”

“망하는 걸 맞혀야죠.”

시스템이 정상일 때 잘 돌아가는 모델보다 어디서 막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모델.

또 병목.

모든 길이 그 단어로 돌아왔다.

병원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대니얼은 반나절 동안 응급실 동선을 직접 따라다녔다.

물론 환자진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행정·물류 동선만.

접수.

대기.

검사.

영상.

병상배정.

입원.

이송.

처음 한 시간 동안 가장 놀란 건 사람들이 계속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간호사가 환자를 보러 간다.

검사실에서 사람을 부른다.

운송직원이 휠체어를 가져온다.

가족이 질문한다.

청소가 끝나야 다음 환자가 들어간다.

컴퓨터 화면에는 ‘bed available’이라고 떠도 실제로는 청소 중인 경우도 있었다.

대니얼이 물었다.

“이 시간은 시스템에 들어갑니까?”

간호사가 말했다.

“어떤 시간요?”

“환자 나간 뒤 다음 환자 받을 때까지.”

“보통은 따로 안 봅니다.”

대니얼은 메모했다.

십 분.

십오 분.

재난 때는 그런 작은 시간이 병상 전체를 줄인다.

미나는 멀리서 그가 계속 시계를 보는 걸 보고 말했다.

“환자들 쳐다보면서 시간 재지 마세요.”

대니얼이 당황했다.

“동선을 보는 겁니다.”

“알아요. 그래도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어요.”

그는 바로 시계를 내렸다.

또 하나.

측정 자체가 현장에 영향을 준다.

관찰자도 시스템 밖에 있지 않다.

그날 오후 한 환자가 입원결정을 받고도 응급실에 오래 남아 있었다.

대니얼이 이유를 물었다.

병동 병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환자는 응급실 병상을 계속 점유했다.

새 환자는 대기.

“뒤가 막혀서 앞이 막히는 거네요.”

대니얼이 말했다.

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공장처럼 보이나요?”

“조금.”

“사람한테 공정이라고만 안 하면 돼요.”

대니얼이 웃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그날 병원에서 돌아와 모델 구조를 바꿨다.

응급실만 최적화하지 않는다.

입원병동으로 빠져나가는 흐름까지.

그렇지 않으면 병목을 잘못 찾는다.

병원 하나만 보는 모델에서 병원 내부의 여러 단계까지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니얼은 그 복잡성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현실은 모델보다 복잡하다.

좋은 모델은 현실을 단순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결정에 필요한 복잡성만 남기는 것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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