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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50화 — 제품을 죽이는 날

14,610일 · 50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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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의 마지막 재고평가 날.

서버실 한쪽 랙에 보드 네 대가 놓여 있었다.

두 대는 서비스 시험.

한 대는 연구.

한 대는 예비.

‘재고’라는 말이 더 이상 정확하지 않았다.

그래도 회계상으로는 정리해야 했다.

재무담당이 물었다.

“판매재고에서 연구자산으로 전환하겠습니다.”

대니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평가는?”

숫자가 나왔다.

원래 생산원가보다 훨씬 낮았다.

대니얼은 순간 아까웠다.

기술적으로 멀쩡한 장비인데.

하지만 시장가치는 기술적 자존심과 다르다.

“그대로.”

서명.

A1 판매제품의 마지막 행정절차가 끝났다.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필요도 없었다.

그날 팀 회의에서 대니얼은 A1 제품 아카이브를 보여줬다.

설계.

실험.

고객 인터뷰.

실패한 데모.

거절사유.

손실.

전부 남겼다.

“이걸 왜 이렇게 자세히 보관합니까?”

새 직원이 물었다.

대니얼이 대답했다.

“다음에 똑같이 틀리지 않으려고요.”

“다음 A2 만들려고?”

회의실에 웃음이 났다.

대니얼도 웃었다.

“언젠가는.”

이선이 바로 말했다.

“날짜는?”

“없습니다.”

“좋아.”

“시장조건이 맞을 때.”

팀장이 물었다.

“무슨 조건?”

이번에는 대니얼이 혼자 정하지 않았다.

팀이 같이 만들었다.

고객 워크로드에서 의미 있는 전체 성능개선.

전환비용을 상쇄할 경제성.

지원 가능한 소프트웨어 범위.

최소 고객의향.

생산규모.

각 항목에 숫자를 붙였다.

미래기억이 아니라 현재 데이터로 다시 시작할 조건.

대니얼은 그 문서를 저장했다.

Accelerator Product Re-entry Criteria

A1은 죽었다.

가속기 기술은 죽지 않았다.

둘을 분리하는 데 6개월과 많은 돈이 들었다.

오후에는 계산서비스 첫 시험고객이 접속했다.

작은 재료연구 스타트업.

데이터 업로드.

작업 설정.

가격은 시험기간이라 낮게 잡았다.

고객이 물었다.

“우리 컴퓨터 꺼도 됩니까?”

지원담당이 웃었다.

“네. 저희 쪽에서 돕니다.”

“결과는 내일?”

“예상 두 시간 반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

“진짜요?”

대니얼은 옆에서 그 말을 들었다.

그 반응이 A1 데모 때와 달랐다.

고객은 장비 구조를 묻지 않았다.

드라이버도.

전력도.

냉각도.

자기 코드가 어디서 돌든, 결과가 빨리 나오면 된다.

물론 모든 고객이 이럴 수는 없다.

보안 때문에 데이터 반출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대용량 모델은 전송이 병목.

그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첫 반응이 달랐다.

고객이 실제로 원하는 형태와 가까웠다.

작업이 시작됐다.

범용 노드에서 전처리.

A1에서 핵심 계산.

다시 범용 노드.

결과 저장.

대니얼은 진행률을 봤다.

이번에는 특정 하드웨어의 최고속도를 보지 않았다.

작업 전체 시간.

2시간 21분.

예상보다 빨랐다.

결과 전송.

고객 확인.

잠시 뒤 이메일.

결과 확인했습니다.

다음 작업도 같은 방식으로 가능한가요?

대니얼은 메시지를 이선에게 보여줬다.

“두 번째 작업.”

이선이 말했다.

A1 종료문서 마지막 페이지에는 ‘다시 시작할 조건’ 외에 한 칸이 더 있었다.

What did Daniel get wrong?

이선이 넣은 항목이었다.

대니얼이 보자 얼굴을 찌푸렸다.

“왜 제 이름입니까?”

“프로젝트가 혼자 결정했냐?”

“팀 전체 결정이었습니다.”

“시작은 네가 밀었지.”

대니얼은 결국 인정했다.

자기가 썼다.

1. 기술방향의 확신을 시장시점의 확신으로 착각했다.

2. 고객 인터뷰에서 불편한 신호를 과소평가했다.

3. 최고성능을 전체가치로 착각했다.

4. 개인자본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조직시간 비용을 낮게 봤다.

5. ‘학습’을 제품지속의 명분으로 사용했다.

마지막 줄에서 펜이 멈췄다.

조금 더 생각하고 추가했다.

6. 실패를 인정하면 시간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실패한 제품을 오래 붙잡을수록 더 많은 시간을 잃는다.

대니얼은 문서를 저장했다.

파일명은 간단했다.

`A1_POSTMORTEM_FINAL`

이선이 화면을 보더니 웃었다.

“FINAL2 안 만들게?”

대니얼도 웃었다.

“노력하죠.”

그날 저녁 서비스 시험고객에게서 결제가 들어왔다.

아주 작은 금액.

A1 개발비와 비교하면 의미 없을 정도.

그래도 Daniel은 첫 Helioxen 매출 때처럼 잠깐 화면을 봤다.

이번 돈은 실패한 기술을 다른 형태로 바꿔 받은 첫 돈이었다.

대니얼은 A1 종료문서와 입금내역을 나란히 열었다.

한쪽에는 손실.

한쪽에는 작은 시작.

과거를 지우지 않고 다음 사업을 만든다.

그게 이번 10화가 남긴 가장 큰 결과였다.

“돈은?”

“이번 건 시험.”

“다음은?”

대니얼이 웃었다.

“유료.”

“그게 제품이지.”

대니얼은 고개를 저었다.

“서비스.”

“돈 받으면 됐어.”

그날 저녁 팀은 A1 판매 페이지 대신 새로운 페이지 초안을 만들었다.

Engineering Compute Service

대니얼은 이름을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거창한 브랜드가 필요 없었다.

고객이 이해하면 된다.

팀장이 물었다.

“성능 몇 배라고 쓸까요?”

대니얼이 말했다.

“고정 숫자 쓰지 맙시다.”

“그럼?”

“샘플 작업 받아서 예상시간 보여주죠.”

“마케팅 약하지 않습니까?”

대니얼은 A1의 7.2배 벤치마크를 떠올렸다.

그 숫자는 진짜였다.

그런데 고객에게는 종종 의미가 없었다.

“약해도 정확한 게 낫습니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지 하단에는 작은 문장이 들어갔다.

실제 성능은 작업 특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평범한 문구.

대니얼에게는 비싼 수업료로 산 문장이었다.

밤.

직원들이 돌아간 뒤 대니얼은 서버실로 갔다.

A1 보드 LED가 켜져 있었다.

더 이상 팔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 뒤에서 일하는 장비.

실패한 제품이 새로운 형태로 살아 있었다.

대니얼은 랙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너무 일찍 태어났네.”

혼잣말.

2046년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기술은 언젠가 시장을 만날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회사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

이번 실패는 그걸 가르쳤다.

대니얼은 PROJECT 2046을 열었다.

Compute 항목 아래 새 문장을 적었다.

Do not drag the future into the present. Build the bridge to it.

잠깐 보고.

한 줄 더.

Customers live in the present.

저장.

창을 닫았다.

50화 동안 대니얼은 미래를 앞당기려고 달렸다.

처음으로 한 기술을 뒤로 미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선택이 오히려 미래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A1 종료회의 마지막에는 실패 축하라는 이상한 시간이 있었다.

이선의 아이디어였다.

맥주와 피자.

대니얼은 싫다고 했다.

“실패를 왜 축하합니까?”

“중단한 걸 축하하는 거지.”

팀은 반신반의했다.

이선이 종이컵을 들었다.

“A1은 안 팔렸고.”

누군가 웃었다.

“돈도 많이 썼고.”

대니얼이 얼굴을 찌푸렸다.

“대표는 몇 달 동안 말 안 들었고.”

이번엔 더 큰 웃음.

대니얼이 말했다.

“그만하죠.”

이선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도 회사는 살아 있고, 팀도 남았고, 다음 사업도 생겼다.”

컵을 들었다.

“죽여야 할 때 죽인 첫 제품에.”

사람들이 잔을 들었다.

대니얼도 결국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2046년의 첫 삶에서는 중단이 실패처럼 느껴져 너무 오래 붙잡은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이미 들어간 돈.

시간.

명성.

중단하면 그 모든 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쓴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 쓸 것을 결정할 수 있을 뿐.

A1은 작은 규모에서 그걸 가르쳤다.

회식이 끝난 뒤 대니얼은 혼자 남은 A1 랙을 봤다.

LED가 천천히 깜빡였다.

실패한 제품이 서비스 작업을 처리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제품으로는 죽었다.

기술로는 일하고 있다.

대니얼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도 프로젝트도 하나의 실패로 전부 정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실패한 부분을 정확히 이름 붙여야 한다.

그래야 남은 걸 제대로 쓸 수 있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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