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47화 — 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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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여섯 대 중 네 대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한 대는 연구실 평가 연장.
한 대는 대학에 남았다.
나머지는 랙에 꽂혀 있었다.
꺼져 있는 장비는 이상하게 무거워 보였다.
대니얼이 물었다.
“왜 안 돌립니까?”
연구원이 대답했다.
“돌릴 일이 없어서요.”
“내부 작업.”
“범용 서버로 충분합니다.”
“벤치마크.”
“이미 했습니다.”
대니얼은 말이 없었다.
빠른 장비.
쓸 일이 없다.
그게 재고였다.
이선은 회계자료를 들고 왔다.
하드웨어 원가.
개발비.
외부 설계비.
지원비.
평가설치비.
대니얼이 예상한 것보다 컸다.
“이건 연구개발비 포함이잖아요.”
“돈 나간 건 같아.”
“기술자산으로 남습니다.”
“그래.”
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장부에 현금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
대니얼은 손익표를 봤다.
Helioxen 전체가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금융자산과 다른 사업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실패한 제품을 돈으로 숨길 수 있다.
대니얼 개인자산으로 계속 먹여 살릴 수 있다.
적자가 작게 느껴질 수 있다.
“판매가를 낮추죠.”
이선이 말했다.
“얼마나.”
대니얼이 숫자를 적었다.
“그 가격이면 팔수록 손해야.”
“초기 설치기반을 만들면.”
“또 미래.”
대니얼의 표정이 굳었다.
“하드웨어 플랫폼은 설치기반이 중요합니다.”
“맞아.”
“그러면.”
“공짜로 뿌리면 설치기반 제일 빨리 늘겠네.”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논리를 끝까지 밀면 이상해졌다.
가격을 낮춰도 전환비용 문제는 남는다.
지원.
교육.
소프트웨어.
보안.
장비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업팀은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리스.
고객이 큰 초기비용 없이 월 단위로 사용.
대니얼은 반색했다.
“좋네요.”
재무담당이 계산했다.
“우리가 장비 소유하고 지원까지 하면 회수기간이 너무 깁니다.”
“얼마나?”
숫자가 나왔다.
대니얼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선이 말했다.
“서비스 사업이랑 비슷해지네.”
또 서비스.
고객은 계속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장비를 갖고 싶지 않다.
빠른 계산은 쓰고 싶다.
대니얼은 여전히 하드웨어 제품을 살리고 싶었다.
A1은 미래가 맞다는 증거 같았다.
7배.
3배.
실제 작동.
버리면 시간을 버리는 느낌.
어느 날 밤 대니얼은 서버실에서 A1 한 대를 직접 켰다.
팬.
부팅.
테스트.
정상.
너무 잘 돌아갔다.
“왜 안 팔리지.”
혼잣말.
뒤에서 연구원이 말했다.
“안 가셨어요?”
대니얼이 돌아봤다.
“잠깐 보려고.”
연구원이 A1 옆에 섰다.
“저는 이거 좋아합니다.”
대니얼이 웃었다.
“저도요.”
“근데 제품은 아닌 것 같아요.”
대니얼의 미소가 사라졌다.
“왜?”
“우리 같은 사람 아니면 너무 귀찮습니다.”
연구원은 솔직했다.
“환경 맞추고, 코드 고치고, 드라이버 보고. 저는 재밌어요. 고객은 일하려고 컴퓨터 쓰는 거잖아요.”
대니얼은 화면을 봤다.
“나중엔 다 이런 구조가 됩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해야죠.”
연구원이 잠깐 생각했다.
“연구는요.”
재고장비를 정리하면서 재무담당은 감가와 손상차손 이야기를 꺼냈다.
대니얼은 처음엔 기술적으로 멀쩡한데 왜 가치가 줄어드느냐고 물었다.
재무담당이 대답했다.
“팔 수 있는 가격이 줄었으니까요.”
“연구에는 쓸 수 있습니다.”
“그건 사용가치고요.”
두 가치.
시장가치.
사용가치.
대니얼은 그 차이가 마음에 들었다.
A1은 시장에서는 실패에 가까웠다.
Helioxen 내부에서는 아직 쓸모가 컸다.
한 물건에 두 평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그걸 섞으면 실패를 숨기게 된다.
대니얼은 회계상 손실을 그대로 반영하라고 했다.
이선이 말했다.
“이번엔 안 싸우네.”
“싸워도 숫자가 바뀝니까?”
“아니.”
“그럼.”
다만 내부 연구문서에는 사용가치를 별도로 적었다.
남아 있는 성능.
테스트 가능성.
재사용 부품.
대니얼은 그 방식을 마음에 들어 했다.
실패를 손실로 정확히 기록하면서도, 남은 가치를 버리지 않는다.
감정도 비슷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2046년의 기억은 실패였다.
그렇다고 그 삶 전체가 쓸모없었던 건 아니다.
그 생각은 너무 커서, 대니얼은 곧 다시 A1 장부로 시선을 돌렸다.
대니얼이 그를 봤다.
“제품은 나중에 해도 되지 않습니까?”
또 같은 말.
이번에는 팀 내부에서.
“경험을 잃습니다.”
“왜 잃어요? 연구 계속하면.”
“고객문제를 못 배우잖아요.”
“그럼 서비스로 고객문제 배우면 되죠.”
대니얼의 손이 멈췄다.
연구원은 자기가 중요한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서비스.
하드웨어는 Helioxen이 관리한다.
고객은 계산만 쓴다.
전환문제 일부를 Helioxen이 떠안는다.
지원환경도 통제할 수 있다.
보안이 허용되는 고객부터.
“그거.”
대니얼이 말했다.
“네?”
“다시 말해보세요.”
연구원이 당황했다.
“서비스로…”
대니얼의 머릿속에서 구조가 빠르게 조립됐다.
A1을 팔지 않는다.
Helioxen 내부에 둔다.
고객 코드를 Helioxen이 포팅.
시간 단위 또는 작업 단위 과금.
범용 시스템도 함께 제공.
A1이 잘하는 작업만 가속.
고객은 장비 구매가 필요 없다.
대니얼이 웃었다.
연구원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또 뭐 시작하려는 표정인데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냥 말한 건데.”
“그래서 좋은 겁니다.”
다음날 이선에게 말했다.
이선은 듣고 한마디 했다.
“그거 고객들이 몇 달 전부터 말하지 않았냐?”
대니얼의 웃음이 멈췄다.
맞았다.
서비스.
네 번.
아홉 번째 인터뷰에서도.
자기는 들었다.
기록했다.
하지만 제품을 살리고 싶어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선이 말했다.
“새 아이디어 아니야.”
대니얼은 고개를 숙였다.
“네.”
“이제 들린 거지.”
그 말이 더 아팠다.
데이터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자기가 듣지 않았던 것이다.
A1 랙은 그대로 있었다.
재고처럼.
그리고 동시에 다음 사업의 장비처럼.
같은 물건의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다.
재고 랙 앞에는 어느 순간 농담이 붙었다.
누군가 종이에 썼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반
대니얼은 처음엔 떼려고 했다.
이선이 막았다.
“놔둬.”
“보기 안 좋습니다.”
“그래서 좋아.”
“왜요?”
“다음에 네가 또 20대 만들자고 하면 보라고.”
대니얼은 종이를 다시 봤다.
기분은 나빴다.
그대로 뒀다.
며칠 뒤 새 직원이 물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연구원이 A1 이야기를 해줬다.
최고성능.
선주문 0.
현장평가.
전환비용.
새 직원은 웃지 않았다.
“왜 제품 전에 안 물어봤습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대니얼이 직접 대답했다.
“물어봤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듣고 싶은 쪽만 들었습니다.”
새 직원이 당황했다.
대니얼은 오히려 계속했다.
“그래서 이 종이 안 떼는 겁니다.”
그날부터 A1은 회사의 공식적인 ‘실패사례’가 됐다.
신입교육에서도 짧게 다뤘다.
성공한 H-001만 보여주지 않는다.
왜 A1은 기술적으로 성공하고 사업적으로 실패했는지.
대니얼은 처음에 조금 창피했다.
몇 번 반복하자 오히려 편해졌다.
회사가 자기 체면보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창업자의 실패도 조직기억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재고 네 대는 실제로 점점 덜 ‘재고’가 됐다.
하나는 열테스트.
하나는 드라이버 회귀시험.
하나는 서비스 프로토타입.
하나는 예비.
쓸 일이 생겼다.
대니얼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동시에 장부상의 손실도 지우지 않았다.
재사용 가능하다는 사실은 처음 제품화가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문장을 A1 포스트모템 첫 장에 추가했다.
그날 대니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반’이라는 종이 아래에 작은 메모를 하나 더 붙였다.
Ask before building.
단순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A1 전체보다 훨씬 늦게 배운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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