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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44화 — 그래도 만든다

14,610일 · 44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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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팀은 줄지 않았다.

늘지도 않았다.

대니얼은 약속을 지켰다.

최소한 인원에 대해서는.

그 대신 자기 시간을 더 넣기 시작했다.

이게 더 나빴다.

아침에는 Helioxen 전체 회의.

오전에는 고객.

오후에는 A1.

저녁에는 투자회사.

밤에는 PROJECT 2046.

대니얼의 일정은 다시 빽빽해졌다.

이선이 물었다.

“잠은?”

“잡니다.”

“몇 시간.”

“충분히.”

“숫자.”

대니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선이 한숨을 쉬었다.

A1의 문제는 명확했다.

소프트웨어 생태계.

고객이 가진 코드를 새 하드웨어에 맞춰야 했다.

그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

Helioxen이 전부 지원하면 제품마진이 사라진다.

고객이 부담하면 안 산다.

대니얼은 중간 방법을 찾았다.

가장 많이 쓰이는 계산루틴부터 라이브러리화.

고객이 코드를 전부 바꾸지 않고 일부 호출만 바꿀 수 있게.

좋은 접근이었다.

개발은 어려웠다.

라이브러리 하나가 빨라도 고객 전체 코드에서 예상 못 한 충돌이 났다.

컴파일러 버전.

정밀도.

메모리.

운영체제.

대니얼은 점점 세세한 문제에 들어갔다.

어느 날 팀장이 말했다.

“대표님, 다른 고객 제안서 승인 필요합니다.”

“메일로.”

“사흘째 메일에 있습니다.”

대니얼의 손이 멈췄다.

또.

“바로 보겠습니다.”

“그리고 채용 두 명.”

“팀에서—”

“이번 건 연봉이 기준 넘습니다.”

“아.”

“냉각업체 계약도.”

“그건 운영책임자—”

“예산한도 초과.”

대니얼은 책상 위에 손을 올렸다.

자기가 다시 병목이 되고 있었다.

A1 때문에.

이선이 말했다.

“그래도 만든다며.”

“지금 그 얘기 하지 마세요.”

“왜. 제목 좋잖아.”

대니얼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권한을 더 넘겼다.

예산한도 상향.

기술책임자에게 제품결정권 추가.

채용조건 범위 확대.

자기는 A1에서 빠져야 했다.

그날 팀 회의에서 선언했다.

“저는 주 1회만 들어옵니다.”

연구원이 물었다.

“진짜요?”

“왜 못 믿습니까?”

회의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대니얼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행동으로 보여드리죠.”

첫 주.

성공.

두 번째 주.

성공.

세 번째 주.

연구팀이 중요한 설계변경을 했다.

대니얼은 보고서만 받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접 회의를 잡고 싶었다.

참았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네 번째 주.

실제 오류 하나가 생겼다.

대니얼은 즉시 들어갔다.

연구원이 말했다.

“대표님 주 1회라면서요.”

“긴급이잖아요.”

“아닙니다. 이미 원인 찾았습니다.”

대니얼은 멈췄다.

“그럼 왜 보고했습니까?”

“주간보고 자동발송입니다.”

대니얼은 조용히 돌아갔다.

복도에서 이선이 웃었다.

“쫓겨났냐?”

“아닙니다.”

“표정이.”

A1에서 한발 물러난 뒤 대니얼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시간이 생겼다.

하루 두 시간 정도.

처음에는 그 시간을 다시 A1 자료를 보는 데 썼다.

이선이 알아챘다.

“그건 빠진 게 아니잖아.”

“보고서는 봐야죠.”

“주 1회라며.”

대니얼은 결국 다른 일을 찾았다.

기존 고객 인터뷰.

H-001 운영데이터.

새 고객 영업.

놀랍게도 회사의 현재 사업에서 할 일이 많았다.

한 고객은 계산대기열이 늘어 시스템 추가구매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고객은 설치를 원하지만 전력시설이 부족했다.

새 고객 후보는 월 단위 과금을 원했다.

A1만 보고 있을 때는 ‘작은 문제’처럼 보였던 것들.

실제로는 매출과 고객을 만드는 문제였다.

대니얼은 H-001 설치현장에 하루를 보냈다.

지원팀 직원이 말했다.

“대표님 요즘 잘 안 오시네요.”

“좋은 일 아닙니까?”

“조금 편합니다.”

너무 솔직해서 대니얼이 웃었다.

현장에서는 A1보다 평범한 질문이 많았다.

케이블 길이.

랙 위치.

백업.

직원 계정.

그러나 고객은 이 문제들에 돈을 냈다.

대니얼은 깨달았다.

회사를 키우는 일은 가장 흥미로운 기술을 따라가는 게 아니었다.

반복해서 돈을 내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

그게 기반이 있어야 장기연구도 버틴다.

오후 늦게 새 고객이 계약했다.

A1이 아니라 H-001 계열.

계약금.

대니얼은 서명하며 웃었다.

한동안 미래를 놓았더니 현재 매출이 늘었다.

기분이 묘했다.

자기가 틀린 것 같으면서, 회사 입장에서는 맞는 일이었다.

그날 A1 주간회의에서도 달라진 게 있었다.

팀이 자체적으로 세 가지 실험을 끝냈다.

대니얼이 생각하지 않은 순서.

결과는 좋았다.

“왜 이 순서로 했습니까?”

“위험 큰 것부터 확인하려고요.”

대니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이었다.

자기가 없어도 팀은 판단했다.

오히려 자기 개입이 줄자 실험방향이 덜 흔들렸다.

그 사실도 조금 아팠다.

“일하세요.”

조금씩 나아졌다.

문제는 시장이었다.

6개월 시한이 절반 지나갔는데 선주문은 여전히 0.

대신 평가의향은 늘었다.

“관심은 있습니다.”

영업담당이 말했다.

“다만 구매로 안 넘어옵니다.”

“왜?”

“다들 기다립니다.”

“뭘.”

“다음 버전.”

대니얼이 얼굴을 찌푸렸다.

“왜 지금 버전 안 사고.”

“소프트웨어 더 좋아질 것 같아서요.”

역설.

A1이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구매를 늦췄다.

고객은 말했다.

“조금 더 안정되면.”

“다음 세대 나오면.”

“우리 코드 지원되면.”

미래를 믿기 때문에 현재 제품을 안 산다.

대니얼은 자기와 고객이 반대방향으로 같은 미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는 미래가 오니까 지금 만든다.

고객은 미래가 오니까 지금 안 산다.

누가 더 합리적인가.

답이 뻔해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A1 팀은 기술적으로 진전했다.

전체 작업 1.7배.

일부 연구코드 3배 이상.

전력효율 개선.

설치시간 단축.

좋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고객이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뿐.

이선이 말했다.

“‘뿐’이라고 하지 마.”

대니얼이 고개를 들었다.

“회사에서 그게 제일 큰 문제야.”

“압니다.”

“표정은 모르는데.”

대니얼은 창밖을 봤다.

A1을 중단하면 기술을 늦춘다.

계속하면 현재 자원을 태운다.

둘 다 비용.

정답은 없었다.

그날 저녁 Daniel은 처음으로 프로젝트 종료 시나리오를 직접 작성했다.

팀 해체는 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른 제품으로 이동.

라이브러리는 H-001 계열에 재사용.

냉각기술도 재사용.

드라이버와 모니터링 일부 유지.

하드웨어는 연구용으로 남김.

A1이 죽어도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위로가 됐다.

실패에도 회수 가능한 부품이 있다.

Daniel은 아직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실패할 준비는 시작했다.

권한을 다시 나눈 뒤 대니얼은 자기 일정도 세 종류로 나눴다.

반드시 자신이 해야 하는 일.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

애초에 안 해도 되는 일.

세 번째가 생각보다 많았다.

매일 보는 세부 로그.

모든 채용후보 이력서.

모든 기술회의.

모든 고객메일.

대니얼은 하나씩 지웠다.

첫날은 불안했다.

둘째 날도.

일주일 뒤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오히려 답변속도가 빨라졌다.

직원들은 대니얼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그 경험을 A1과 비교했다.

기술에 기능을 계속 추가하는 것과 대표가 일에 계속 관여하는 건 비슷했다.

좋아 보이는 걸 계속 더하면 어느 순간 전체가 느려진다.

빼는 것도 설계였다.

그날부터 대니얼은 월말마다 한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What can we stop doing?

PROJECT 2046에는 해야 할 일만 수천 개 있었다.

그중에서도 언젠가는 하지 않을 일을 고르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 달 뒤 권한표를 다시 보니 Daniel에게 직접 올라오는 안건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대신 중요한 문제는 더 선명하게 보였다.

자기가 모든 걸 보는 것보다, 정말 자기 판단이 필요한 것만 보는 편이 오히려 전체를 더 잘 이해하게 했다.

대니얼은 그 사실이 조금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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