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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4화 — 맞아도 못 받는 돈

14,610일 · 24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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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가격이 아니었다.

결제였다.

금요일 오후, 이선이 갑자기 욕을 했다.

대니얼이 고개를 들었다.

“뭡니까?”

“이쪽이 담보 요구조건 바꿨어.”

“얼마나?”

숫자를 본 대니얼의 표정이 굳었다.

“지금?”

“지금.”

거래상대방 하나가 시장불안을 이유로 추가담보를 요구했다.

대니얼과 이선에게는 현금이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계좌였다.

다른 거래.

다른 결제일.

한쪽 요구를 전부 맞추면 다른 쪽 여유가 줄었다.

대니얼은 빠르게 계산했다.

“이 포지션 청산하면 됩니다.”

“가격 나빠.”

“그래도—”

“잠깐.”

이선이 전화를 들었다.

다른 거래상대방.

또 다른 계좌.

십 분.

이십 분.

그는 여러 곳과 동시에 이야기했다.

일부 거래를 옮겼다.

일부 담보구조를 바꿨다.

일부 포지션은 손해 보고 닫았다.

대니얼은 옆에서 숫자를 맞췄다.

두 시간 뒤.

위기는 지나갔다.

손실은 있었다.

계획보다 큰 손실.

하지만 파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선이 의자에 몸을 던졌다.

“물.”

대니얼이 생수병을 건넸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대니얼이 말했다.

“제가 처음 짠 구조였으면.”

“끝났지.”

“방향은 맞았는데.”

“그 말 오늘 금지.”

이선이 물을 마셨다.

“맞는 포지션으로 망하는 사람 많아.”

대니얼은 모니터를 봤다.

시장 자체는 자신들이 예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돈을 받을 구조가 무너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

“배관.”

대니얼이 중얼거렸다.

“뭐?”

“시스템 배관이요.”

이선이 웃었다.

“금융을 수도관 취급하는 공대생.”

“맞잖아요.”

“맞긴 해.”

그날 밤 대니얼은 혼자 사무실에 남았다.

PROJECT 2046을 열었다.

행성방어에는 항상 화려한 것들이 주목받았다.

로켓.

원자로.

그날 위기를 넘긴 뒤 이선은 화이트보드에 세 단어를 썼다.

PRICE

LIQUIDITY

COUNTERPARTY

“이 셋 헷갈리지 마.”

대니얼이 물었다.

“지금까지 헷갈렸습니까?”

“너무.”

“어떻게?”

“가격 내려가면 싸졌다고 생각하고.”

거래상대방 위기를 겪은 뒤 대니얼은 법률자문과 함께 계약서를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투자계약이 아니라 거래계약.

평소에는 읽지 않았던 부속조항.

담보.

조기종료.

불가항력.

평가가격 산정.

대니얼이 한숨을 쉬었다.

“왜 계약은 항상 중요한 게 뒤에 있습니까?”

변호사가 웃었다.

“앞에 있는 건 모두가 읽으니까요.”

이선이 말했다.

“뒤에 있는 걸 읽으라고 돈 주는 거지.”

몇 시간 동안 세 사람은 한 조항을 두고 논쟁했다.

대니얼은 특정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권한이 너무 크다고 봤다.

변호사는 그 조건 없이는 거래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이선은 비용과 유동성을 계산했다.

아무도 멍청하지 않았다.

각자 보는 위험이 달랐다.

결국 완벽한 계약은 만들지 못했다.

대신 어떤 위험을 받아들이는지 명시적으로 적었다.

대니얼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모든 위험을 제거하려 하면 아무 행동도 못 한다.

중요한 건 위험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슨 위험을 선택했는지 아는 상태였다.

그날 Daniel은 PROJECT 2046에도 같은 항목을 추가했다.

Accepted risk

소행성을 막는 날에도 완벽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어떤 위험은 거부할지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작은 금융계약이었지만, 결정의 구조는 같았다.

첫 번째.

“거래 안 되면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

“상대방 흔들리면 계약 있으니까 된다고 생각해.”

세 번째.

대니얼은 반박할 수 없었다.

이선이 말했다.

“위기 때는 자산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연결이 끊어지는 게 더 무서워.”

대니얼은 화이트보드를 사진으로 남겼다.

며칠 뒤엔 사무실 벽에 같은 구조를 산업 버전으로 적었다.

PRODUCT

CASH

SUPPLIER

공장 하나가 멈추는 이유도 비슷했다.

좋은 제품, 돈, 공급망.

하나만 좋아서는 안 된다.

Daniel의 시스템 사고가 금융과 제조 사이에서 처음으로 같은 언어를 찾기 시작했다.

위기를 넘긴 다음날, 대니얼은 일부러 거래를 줄였다.

이선이 물었다.

“겁먹었냐?”

“네.”

솔직한 대답.

이선이 웃지 않았다.

“좋아.”

“좋다고요?”

“겁 안 먹는 놈이 제일 위험해.”

대니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첫 삶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사람들은 두려워할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두려움을 정보로 쓸 수 있었다.

어디가 약한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공포를 없애는 대신 공포가 가리키는 곳을 보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 더 맞는 방식이었다.

편향체.

계약검토가 끝난 날 변호사가 농담처럼 말했다.

“머서 씨는 모든 걸 시스템으로 보네요.”

대니얼이 웃었다.

“직업병일 겁니다.”

“직업이 뭡니까? 투자자? 엔지니어?”

대니얼은 잠깐 멈췄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변호사는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럼 하나만 기억하세요. 시스템은 책임소재까지 있어야 시스템입니다.”

대니얼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죠?”

“문제 생겼을 때 누가 결정하고, 누가 멈추고, 누가 설명하는지.”

그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첫 삶의 마지막 해에는 책임이 너무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었다.

누가 기술적으로 옳아도 승인권이 없었고, 누가 승인권이 있어도 데이터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니얼은 PROJECT 2046 옆에 한 칸을 더 만들었다.

Decision rights

기술이 있어도 권한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그것도 병목이었다.

AI.

그러나 첫 삶을 끝낸 것은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부품을 제때 보내지 못한 물류.

인증이 늦어진 장비.

생산계약.

보험.

법적 권한.

데이터 인터페이스.

그리고 오늘처럼 거래와 결제의 배관.

대니얼은 시스템의 가장 화려하지 않은 부분이 가장 자주 전체를 멈춘다는 걸 다시 배웠다.

다음 주.

며칠 뒤 대니얼은 계약 검토표를 만들었다.

기술 위험.

재무 위험.

법적 위험.

그리고 마지막 칸.

Who can stop this?

이선이 읽고 말했다.

“왜 중단권을 따로 봐?”

“문제 생겼을 때 아무도 못 멈추는 구조가 제일 위험해서요.”

첫 삶에서 몇 번 봤던 장면이었다.

모두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전체 프로그램을 중단할 권한은 없는 상태.

대니얼은 작은 거래에서도 중단권이 어디 있는지 보기 시작했다.

권한은 책임과 붙어 있어야 했다.

그 원칙이 지금은 계약 한 줄이었지만, 나중에는 Helioxen 조직구조 전체로 커질 것이다.

그들이 거래하던 대형 금융기관 하나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선이 말했다.

“노출 더 줄여.”

“이미 많이 줄였는데요.”

“더.”

“비용—”

“댄.”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선이 손을 멈췄다.

“요즘 왜 이렇게 말 잘 들어?”

“한 번 죽을 뻔했으니까요.”

농담처럼 말했다.

이선이 웃었다.

대니얼은 따라 웃지 못했다.

그 말은 생각보다 사실에 가까웠다.

화이트보드의 세 단어는 지우지 않았다. 며칠 뒤 새 직원이 들어와도 가장 먼저 그 설명부터 들었다.

며칠 뒤 실제 계약조건 하나가 예상보다 불리하게 작동했다.

손실은 작았다.

하지만 대니얼은 일부러 사례를 기록했다.

We accepted this risk knowingly.

문장을 쓰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실수를 후회로 남기는 것보다, 선택한 위험과 예기치 못한 실수를 구분하는 편이 훨씬 정확했다.

대니얼은 그날의 결론을 다음 결정의 기준으로 남겼다.

그날부터 새 계약을 검토할 때 대니얼은 마지막에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이게 깨질 때 어디가 먼저 깨집니까?”

변호사는 처음엔 웃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좋은 계약은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계약이 아니라, 문제가 생길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 수 있는 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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