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21화 — 불은 옮겨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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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시장의 문제는 뉴스보다 빨랐다.
신문에는 아직 ‘우려’라는 단어가 붙었다.
대니얼과 이선의 화면에는 ‘거래 불가’가 늘었다.
어제까지 가격이 있던 상품이 오늘은 호가만 남았다.
호가가 있던 상품이 오후에는 아예 사라졌다.
가격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일.
가격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
“여기.”
이선이 화면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또 넓어졌어.”
대니얼은 신용스프레드를 확인했다.
“포지션 늘리죠.”
“안 돼.”
“왜요?”
“또 시작이네.”
“지금은 데이터가—”
“내가 데이터 때문에 그러냐?”
이선이 다른 화면을 띄웠다.
거래상대방별 노출.
담보.
현금.
결제일.
대니얼의 표정이 굳었다.
“여기 너무 몰렸네요.”
“그러니까.”
“옮기면 비용이 커집니다.”
“알아.”
“수익도 줄고.”
“그것도 알아.”
대니얼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자신은 시장이 더 나빠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 포지션을 늘리는 게 맞다.
논리적으로.
하지만 이선이 보고 있는 건 다른 위험이었다.
대니얼의 거래가 맞아도, 거래상대방이 흔들리면 돈을 못 받을 수 있다.
맞는 베팅.
틀린 배관.
2046년의 기억이 스쳤다.
완벽한 편향체.
그러나 발사체가 없었다.
완성된 원자로.
하지만 운반할 우주선이 없었다.
시스템은 가장 약한 연결부에서 실패한다.
대니얼이 말했다.
“분산하죠.”
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용은?”
“냅니다.”
“수익 줄어.”
“압니다.”
“좋아.”
둘은 며칠 동안 거래구조를 다시 짰다.
포지션을 여러 곳으로 분산했다.
현금을 늘렸다.
일부 거래는 아예 포기했다.
대니얼은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불편했다.
예상수익률.
자본효율.
모두 나빠졌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한 거래상대방이 특정 상품의 신규거래를 갑자기 중단했다.
이선이 화면을 가리켰다.
“저기.”
대니얼은 말이 없었다.
며칠 전까지 그곳에 노출을 더 몰아넣으려 했었다.
“운이 좋았네요.”
대니얼이 말했다.
이선이 고개를 저었다.
“운 아니야.”
“그럼요?”
“의심한 거지.”
“결과적으로 맞은 거고.”
“댄.”
며칠 뒤, 거래상대방 하나가 실제로 결제조건을 바꿨다.
규정 위반도 아니었다. 계약상 가능한 범위였다. 다만 평소에는 쓰지 않던 조항을 꺼냈을 뿐이었다.
그 주 후반, 대니얼은 처음으로 ‘틀렸을 때의 하루’를 연습하자고 제안했다.
이선이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뭘 연습해?”
“거래상대방 두 곳이 동시에 멈춘다고 가정하고요.”
“지금 멀쩡한데?”
“그래서 지금 해야죠.”
둘은 가상의 위기를 만들었다.
첫 번째 기관에서 담보 추가요구.
두 번째 기관에서 결제 지연.
한 투자자의 환매.
동시에 공장 운전자금 요청.
처음 계산은 엉망이었다.
현금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날 여러 곳에서 나가면 부족했다.
대니얼이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빡빡한데요.”
이선이 웃었다.
“재난은 하나씩 예약하고 안 와.”
대니얼은 그 말을 적었다.
둘은 계좌 사이의 자금이동 시간을 확인하고, 비상현금 기준을 높였다. 일부 현금은 수익률이 낮더라도 별도로 두기로 했다.
대니얼은 처음엔 아까웠다.
놀고 있는 돈.
그러나 훈련이 끝났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비상자원은 평소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여야 정상이다.
평소에도 최대효율로 쓰고 있다면, 위기 때 꺼낼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 논리는 훗날 전력망과 우주수송, 식량비축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며칠 뒤 실제로 작은 결제지연이 발생했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둘은 연습한 순서대로 처리했다.
대니얼은 사건이 끝난 뒤 묘한 기분을 느꼈다.
미래를 알아서 대비한 게 아니었다.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서 대비했다.
그 차이가 중요했다.
이선이 문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위기야.”
대니얼이 화면을 봤다.
“가격이 아니라?”
“가격은 보이는 거고.”
이선이 계약서를 두드렸다.
“사람들이 숨겨둔 선택권을 쓰기 시작하는 게 더 무서워.”
대니얼은 그 말을 기억했다.
위기가 오면 사람은 평소에 안 하던 일을 한다. 은행은 대출을 줄이고, 투자자는 돈을 빼고, 고객은 지급을 늦추고, 기업은 채용을 미룬다.
각 행동은 개별적으로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모두 동시에 일어나면 시스템이 얼어붙는다.
대니얼은 PROJECT 2046에 새 질문을 적었다.
What options do actors use only under stress?
첫 삶에서 자신들이 놓쳤던 것도 이런 것들이었다.
평시에는 아무 문제 없던 계약. 평시에는 충분했던 생산량. 평시에는 안 쓰던 비상권한.
재난은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평소 숨겨져 있던 규칙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날 밤 대니얼은 모든 거래상대방을 색으로 표시했다.
녹색. 노란색. 빨간색.
이선이 보더니 말했다.
“신호등 좋아하네.”
“한눈에 보이잖아요.”
“사람은 한눈에 안 보여.”
이선은 신용등급보다 최근 행동을 더 중요하게 보라고 했다. 담보요구가 갑자기 늘어난 곳, 결제조건을 바꾼 곳, 전화응답이 느려진 곳.
숫자보다 행동이 먼저 변하는 순간이 있었다.
대니얼은 그 목록을 매일 업데이트했다.
2046년의 관측망도 결국 비슷했다. 천체의 궤도뿐 아니라 센서 자체의 건강상태를 봐야 했다.
관측값과 관측시스템을 동시에 의심하는 것.
금융에서 배운 습관이 훗날 천문학에도 이어질 줄은 아직 몰랐다.
이선이 의자를 돌렸다.
“리스크 관리는 맞히는 일이 아니야.”
대니얼이 그를 봤다.
“틀렸을 때 안 죽는 일이지.”
주말에는 작은 모의훈련을 다시 했다.
이번에는 대니얼이 조건을 더 거칠게 잡았다.
두 거래상대방 중 하나는 아예 연락두절.
한 투자자는 같은 날 대규모 환매.
공장에서는 급여일.
그리고 시장은 휴장 직전.
이선이 말했다.
“재난영화 찍냐?”
“최악을 봐야죠.”
“최악만 보면 평소에 돈 못 벌어.”
그 말도 맞았다.
둘은 훈련 뒤 기준을 다시 낮췄다.
모든 최악을 대비하면 자본이 놀았다.
아무 최악도 대비하지 않으면 위기 때 죽었다.
대니얼은 처음으로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투자운용에 넣었다.
최대한 버는 시스템이 아니라, 충격을 받고도 다시 움직이는 시스템.
그게 훗날 도시와 전력망, 우주인프라를 설계할 때 반복될 철학이 됐다.
말이 남았다.
그날 저녁 공장에서도 전화가 왔다.
큰 고객 하나가 발주량을 줄였다.
사장은 불안해했다.
“뉴스에선 괜찮다는데 왜 주문이 먼저 줄어?”
대니얼은 대답하지 못했다.
신용은 숫자보다 먼저 행동을 바꾼다.
은행이 조심한다.
회사가 현금을 쌓는다.
투자를 미룬다.
주문을 줄인다.
그러면 다른 회사의 현금이 마른다.
그날 대니얼은 신호등 표를 인쇄해 책상 옆에 붙였다.
이선이 물었다.
“매일 볼 거야?”
“네.”
“색 바뀔 때마다 겁먹겠네.”
“그래야죠.”
대니얼은 빨간 칸 하나를 바라봤다.
위험을 모르는 것보다, 위험을 보고 불편한 편이 나았다.
불은 옮겨붙는다.
금융에서 제조로.
제조에서 고용으로.
고용에서 소비로.
대니얼은 처음으로 위기가 ‘시장 이벤트’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
PROJECT 2046에서 Capital과 Manufacturing 사이에 새 화살표를 하나 그렸다.
Credit → Industry
그리고 그 아래.
Financial systems are industrial infrastructure too.
이선이 나중에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이제 금융도 공장 취급하냐?”
대니얼이 대답했다.
“멈추면 다 같이 멈추잖아요.”
이선은 웃지 않았다.
“그건 맞네.”
창밖의 도시는 평범했다.
아직은.
그러나 불은 이미 옮겨붙고 있었다.
◆그는 그날부터 비상훈련을 분기마다 반복하기로 했다. 위기를 기억하는 것보다 위기 때 움직이는 습관이 더 오래 남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빨간 칸 하나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여기부터 매일 확인하죠.”
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을 없애진 못해도, 늦게 보는 일은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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