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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6화 — 현금

14,610일 · 16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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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이상해질수록 대니얼의 계좌는 좋아졌다.

그게 불편했다.

연체율이 올라갔다.

일부 대출업체가 신규 취급을 줄였다.

신용상품 가격이 흔들렸다.

그리고 대니얼과 이선의 방어적 포지션이 수익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장이 끝난 뒤 이선이 말했다.

“일부 이익실현하자.”

대니얼은 바로 반대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알아.”

“그럼 왜요?”

“현금.”

“지금 포지션이 더 유리한데.”

“유리한 것과 현금인 건 달라.”

대니얼은 화면을 봤다.

첫 삶의 기억이 계속 속삭였다.

_더 큰 게 온다._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기서 줄이면 미래의 큰 수익 일부를 포기한다.

이선이 말했다.

“댄.”

“네.”

“네가 맞다고 가정해도 현금 필요해.”

“왜?”

“기회가 더 싸질 테니까.”

대니얼이 고개를 들었다.

이선은 시장 화면이 아니라 공장 투자자료를 보고 있었다.

“신용경색 더 오면 좋은 자산도 돈 없어서 팔려나와. 네가 진짜 제조업 한다며.”

그 말에 대니얼이 멈췄다.

자신은 금융위기를 돈 버는 사건으로만 보고 있었다.

이선은 다음 단계까지 봤다.

“포지션 전부 유지해서 계좌 최대화할래?”

이선이 말했다.

“아니면 일부 현금 만들어서 자산 살래?”

대니얼은 한참 생각했다.

목표는 금융부자가 아니었다.

시간을 사는 것.

산업을 사는 것.

사람과 설비가 사라지기 전에 붙잡는 것.

“얼마나 줄이죠?”

이선이 웃었다.

“이래서 같이 하는 거야.”

둘은 일부 이익을 확정했다.

대니얼은 그날 계좌의 최고 수익률을 포기했다.

현금을 늘린 뒤 며칠 동안 대니얼은 계속 손익표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조금 더 버텼으면 얼마를 벌었을지 계산했다.

그 숫자는 볼 때마다 커졌다.

이선이 결국 모니터 옆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돈을 못 번 것 ≠ 돈을 잃은 것.

대니얼이 떼려고 하자 이선이 손을 막았다.

“놔둬.”

“유치합니다.”

“네 행동이 더 유치해.”

“분석하는 겁니다.”

“후회하는 거지.”

대니얼은 반박하지 못했다.

며칠 뒤 실제로 산업자산 하나가 급매물로 나왔다.

소형 측정장비 업체의 설비와 특허 일부.

대니얼이 현금이 없었다면 접근도 못 했을 기회였다.

그제야 수익률 그래프의 ‘놓친 돈’이 다르게 보였다.

포지션을 닫아 생긴 현금이 다른 형태의 수익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현금을 만든 뒤 대니얼은 이선과 함께 첫 번째 ‘위기 매입 목록’을 만들었다.

규칙이 있었다.

싼 회사가 아니라 필요한 능력을 산다.

단순히 부채가 많아서 싸진 곳은 제외.

기술은 있지만 고객이 한 곳에 몰린 회사.

좋은 엔지니어가 있지만 자금이 말라가는 회사.

장비는 낡았지만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공정을 가진 업체.

목록은 빠르게 늘었다.

대니얼은 흥분했다.

“이 회사도.”

“안 돼.”

“왜요?”

“세 개째야.”

“좋은데요.”

“네가 직접 볼 수 있냐?”

“사람 뽑으면.”

“그 사람은 누가 뽑는데?”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돈보다 관리능력이 병목이었다.

또 병목.

그는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모든 데 병목이 있어서요.”

“세상이 원래 그래.”

대니얼은 목록을 절반으로 줄였다.

대니얼은 현금을 들고 처음으로 경매장에 갔다.

폐업한 작은 제조업체의 설비가 매물로 나왔다.

기계들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사진에서는 좋아 보였다.

실제로 보니 마모.

정비이력 불명.

교체부품 부족.

대니얼은 사고 싶은 마음이 빠르게 줄었다.

옆에 있던 정비기사가 말했다.

“이건 비추.”

“왜요?”

“스핀들 상태 안 좋아.”

“수리하면?”

“돈 많이 먹어.”

대니얼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직접 확인했다.

결론은 같았다.

그는 입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샀다.

이선이 물었다.

“아쉽냐?”

“조금.”

“싸게 나왔는데.”

“싼 이유가 있었네요.”

“대부분 그래.”

대니얼은 그날 경매장에서 장비보다 정비기사의 연락처를 얻었다.

나중에 더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

자산을 볼 줄 아는 사람.

좋은 기계를 사는 능력보다 좋은 기계를 알아보는 능력이 먼저였다.

그날 처음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운영할 수 있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배웠다.

현금을 확보한 뒤 대니얼은 일부러 하루를 아무것도 사지 않고 보냈다.

다음날도.

사흘째가 되자 견디기 힘들어졌다.

“이게 맞습니까?”

이선에게 물었다.

“뭐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거.”

“현금 들고 있는 것도 포지션이야.”

“너무 수동적인데.”

“네가 뭘 안 해야 하는지도 결정하는 게 운용이지.”

대니얼은 이해는 했지만 좋아하진 않았다.

그래서 시장 밖으로 나갔다.

산업단지를 돌았다.

매물로 나온 창고.

중단된 설비.

구인공고가 사라진 회사.

위기 전에는 비싸서 접근도 못 했던 능력들이 조금씩 시장에 나오고 있었다.

한 소형 소프트웨어 업체의 창업자를 만났다.

직원은 열 명도 안 됐다.

회사는 당장 망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음 투자유치가 막혔다.

창업자는 말했다.

“기술은 있는데 돈이 없습니다.”

대니얼은 그 말을 공장에서 이미 들었다.

일은 있는데 돈이 없다.

이번에는 소프트웨어였다.

그는 바로 투자하지 않았다.

질문했다.

고객은?

코드는 누가 관리하는가?

핵심인력이 나가면?

제품이 없이도 서비스 매출은 가능한가?

창업자는 몇 질문에서 막혔다.

대니얼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했다.

이선이 나중에 물었다.

“살 거야?”

“아직.”

“웬일.”

“현금 있으니까 더 천천히 보려고요.”

이선이 웃었다.

“그 말 녹음해두자.”

대니얼도 웃었다.

며칠 뒤 같은 회사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기술팀과 이야기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병렬연산 이야기를 꺼냈다.

대니얼의 관심이 달라졌다.

아직 제품은 작았다.

하지만 사람에게 가능성이 있었다.

현금을 들고 기다린 시간이 처음으로 특정 사람을 만날 기회로 바뀌었다.

대니얼은 그날 이해했다.

현금은 단순히 ‘살 돈’이 아니었다.

좋은 선택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래의 Helioxen이 모든 걸 직접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도 이미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선이 말했다.

“기회비용은 한쪽 방향만 있는 게 아니야.”

대니얼은 포스트잇을 다시 붙였다.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테이프까지 덧댔다.

며칠 뒤 시장이 더 악화됐다.

기존 포지션을 전부 유지했으면 더 벌었을 것이다.

대니얼은 숫자를 보고 기분이 이상했다.

후회가 올라왔다.

이선이 눈치챘다.

“또 최대값 보고 있지?”

“조금.”

현금이 많아진 뒤 대니얼은 불안해서 오히려 투자하고 싶어졌다.

돈이 놀고 있다는 느낌.

기회를 놓치는 느낌.

그는 하루 동안 세 곳의 투자안을 들고 이선에게 갔다.

이선이 전부 돌려줬다.

“급해 보여.”

“좋은 회사들입니다.”

“그래서?”

“가격도 내려왔고.”

“그래서?”

대니얼이 짜증냈다.

“그럼 언제 삽니까?”

이선은 웃었다.

“살 이유가 ‘현금이 있으니까’가 아닐 때.”

대니얼은 그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며칠 뒤 세 회사 중 하나가 추가 자금난을 발표했고 가격이 더 내려왔다.

이번에는 이선도 말했다.

“이제 보자.”

기다림이 수익이 될 수도 있었다.

“차트 뒤에서 제일 부자 되는 건 누구나 해.”

“알아요.”

“아니, 아직 몰라.”

이선은 현금잔고를 띄웠다.

“이게 선택권이야.”

대니얼은 그 숫자를 오래 봤다.

선택권.

몇 달 전 자기가 적었던 단어.

Optionality.

처음에는 거대한 미래를 바꿀 권한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단순했다.

누군가 급하게 팔아야 할 때 살 수 있는 현금.

사업이 멈출 때 몇 달 더 버틸 돈.

연구가 실패해도 다시 시험할 돈.

현금은 단순한 미사용 자본이 아니었다.

실패를 견디는 시간이었다.

그날 밤 PROJECT 2046의 Capital 항목에 새 문장을 적었다.

Cash is time you haven't committed yet.

이번에는 영어 문장을 바로 지우지 않았다.

꽤 마음에 들었다.

경매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니얼은 매입목록보다 사람 연락처가 더 늘어난 걸 봤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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