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FICTION
제13화 — 신용이 끊기는 곳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토머스에게 전화가 온 건 저녁 식사 중이었다.
“뭐?”
그가 포크를 내려놨다.
“언제부터?”
표정이 달라졌다.
대니얼이 어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토머스는 몇 마디 더 듣더니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에요?”
“전에 갔던 공장 기억하지?”
대니얼은 바로 알았다.
정밀가공 업체.
병목이라는 단어를 처음 현재의 현실로 느낀 곳.
“네.”
“은행이 운전자금 한도를 줄였대.”
“왜요?”
“은행 마음이지.”
토머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주문은 있는데 자재 살 현금이 부족하대.”
대니얼의 손이 멈췄다.
“얼마나 심한데요?”
토머스가 그를 봤다.
“왜.”
“그냥요.”
“투자라도 하게?”
농담이었다.
대니얼은 웃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이선에게 상황을 말했다.
이선의 첫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안 돼.”
“아직 아무 말 안 했는데요.”
“아버지 아는 회사에 돈 넣겠다는 거잖아.”
“좋은 회사면요?”
“그래서 더 안 돼.”
“왜?”
“네가 좋게 보고 싶은 이유가 너무 많아.”
대니얼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맞았다.
그는 그 공장을 좋아했다.
아버지와 갔기 때문에.
숙련공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미래 산업계획에 ‘제조’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선이 말했다.
“보고 싶으면 보자.”
“그러면서 안 된다며.”
“투자하지 말랬지, 분석하지 말란 건 아니야.”
둘은 공장을 다시 찾았다.
사장은 대니얼을 기억했다.
“그때 병목 얘기하던 학생?”
“맞습니다.”
“이젠 금융도 해?”
“조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바쁘네.”
농담은 금방 끝났다.
장부를 보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주문은 있었다.
기술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현금흐름이었다.
큰 고객이 지급조건을 늘렸다.
원자재는 먼저 사야 했다.
은행은 신용한도를 줄였다.
돈이 들어오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빨랐다.
이선이 물었다.
“연체?”
“없습니다.”
“세금?”
“밀린 거 없고.”
“설비담보?”
사장이 대답했다.
대니얼은 현장을 돌아봤다.
기계 몇 대는 낡았지만 숙련공들의 손은 좋았다.
검사기록도 정돈돼 있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자금구조였다.
공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대니얼은 처음으로 숫자가 사람의 표정과 연결되는 걸 봤다.
매출채권 회수일수.
재고일수.
운전자금.
엑셀에서는 셀 몇 칸이었다.
현장에서는 다른 모습이었다.
원자재 창고 담당자가 말했다.
“이번 주 물량 줄이면 납기는 맞추기 힘들어요.”
사장은 말했다.
“현금이 없어.”
작업자는 말했다.
“잔업 줄이면 좋긴 한데 월급 줄어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니얼은 각 문장을 따로 듣다가 깨달았다.
재무구조 하나를 바꾸면 현장에 여러 방향으로 파장이 간다.
이선은 숫자를 보고 말했다.
“지급조건부터 협상해.”
“고객이 받아줄까요?”
“안 물어보면 절대 안 받아주지.”
대니얼은 사장과 함께 주요 고객을 만났다.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두 번째는 일부 조건만 바뀌었다.
대니얼은 공장 직원들과 한 명씩 짧게 이야기했다.
누가 핵심인력인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사장에게 물었다.
“가장 없어지면 곤란한 사람이 누굽니까?”
사장이 세 명을 꼽았다.
현장에서는 다르게 말했다.
한 작업자는 검사 담당자를 꼽았다.
다른 사람은 설비보전 담당자를 말했다.
관리자는 구매 담당자를 지목했다.
대니얼은 이상해서 물었다.
“왜 다 다릅니까?”
이선이 말했다.
“자기한테 중요한 사람이 다르니까.”
그제야 이해했다.
조직에는 한 명의 ‘핵심인재’가 있는 게 아니었다.
공정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했다.
대니얼은 역할별 의존도를 그렸다.
누가 빠지면 무엇이 멈추는가.
누가 대체 가능한가.
누가 후배를 가르칠 수 있는가.
사장은 그 표를 보더니 말했다.
“사람을 기계처럼 그려놨네.”
대니얼이 멈칫했다.
“그렇게 보입니까?”
“조금.”
그는 다시 표를 고쳤다.
이름 옆에 역할만 적지 않았다.
후계자.
교육 가능 여부.
업무지식이 문서화돼 있는지.
조직의 취약점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만 알고 있는 일이 많다는 데 있었다.
그 발견은 훗날 Daniel이 ‘자신만 아는 미래’를 위험하다고 느끼는 이유와도 연결될 것이다.
공장 분석을 하던 어느 날, 은행 담당자가 직접 찾아왔다.
대니얼은 처음에는 불편했다.
은행이 신용한도를 줄여놓고 이제 와서 상황을 보러 온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담당자는 사과하지 않았다.
“저희도 자금비용이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건전한 회사까지 줄입니까?”
대니얼이 물었다.
“건전한지 확인하러 온 겁니다.”
말투는 차분했다.
그는 장부와 주문서를 보고, 고객집중도와 재고를 물었다.
질문은 합리적이었다.
대니얼은 점점 화를 내기 어려워졌다.
은행도 자기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담당자가 말했다.
“운전자금 일부는 다시 열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수준 전부는 어렵습니다.”
사장은 불만이었지만 협상했다.
결국 일부 한도가 복원됐다.
대니얼은 돌아가는 담당자를 보며 생각했다.
은행이 악당이라서 신용이 줄어든 게 아니다.
각자 자기 위험을 줄이다 보니 전체 시스템의 신용이 줄어든 것이다.
누구도 전체를 망치려 하지 않았는데 전체가 나빠질 수 있다.
이건 중요한 교훈이었다.
2046년에도 비슷했다.
모든 조직이 자기 합리성을 따랐고, 그 결과 전체 최적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수없이 있었다.
대니얼은 그걸 이번에는 더 일찍 이해하고 싶었다.
세 번째 고객은 의외로 빨리 동의했다.
이유를 묻자 담당자가 말했다.
“너희가 망하면 우리도 새 공급처 찾느라 손해니까.”
대니얼은 그 말을 듣고 또 하나 배웠다.
협력은 호의가 아니라 상호의존에서 나오기도 한다.
공장 하나의 현금흐름 문제도 혼자 해결하는 게 아니었다.
고객.
은행.
공급업체.
작업자.
모두 연결돼 있었다.
그 구조가 대니얼에게는 이상하게 익숙했다.
행성방어도 결국 같은 문제일 것이다.
천문학자와 로켓회사만 모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연료.
금융.
법.
공급망.
사람.
그는 아직 너무 먼 미래라고 생각하며 메모를 닫았다.
하지만 이미 생각은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저녁에 사무실로 돌아와 이선이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아.”
“그렇죠.”
“그래도 네가 직접 투자하는 건 다른 문제야.”
“왜요?”
며칠 뒤 공장 사장이 대니얼에게 직원 명단을 보여줬다.
“혹시 돈 더 넣게 되면 이 사람들 급여도 보는 건가?”
대니얼은 잠깐 당황했다.
“왜요?”
“투자자면 비용 줄이라고 할 것 같아서.”
대니얼은 쉽게 아니라고 답하지 않았다.
인건비가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줄이면 기술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는 말했다.
“먼저 어떤 사람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보겠습니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니얼은 명단을 숫자로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누구는 검사.
누구는 셋업.
누구는 설비보전.
한 줄씩 역할을 적었다.
그제야 인건비가 비용이면서 동시에 역량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우린 투자 파트너십이야. 제조업 구제기금이 아니고.”
대니얼이 물었다.
“수익이 나면?”
“그래도 이해상충은 남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이선이 그를 봤다.
“정말 투자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살리고 싶은 거야?”
질문이 날카로웠다.
대니얼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첫 삶의 2046년.
없어서 못 구했던 생산능력.
공작기계.
숙련공.
공장.
이 공장 하나가 세상을 구할 리 없다.
하지만 이런 공장 수천 개가 결국 필요했다.
그건 미래의 이유였다.
현재의 투자논리는 별도로 성립해야 했다.
“둘 다면요?”
“그럼 둘 다 증명해야지.”
이선이 말했다.
“감정 빼고 투자로도 맞다는 걸.”
대니얼은 장부를 다시 열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그는 공장을 하나의 기술자산이 아니라 하나의 사업으로 봤다.
고객.
마진.
납기.
인력.
설비.
현금전환주기.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다.
좋은 기술과 좋은 회사는 같은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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