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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2화 — 신뢰의 가격

14,610일 · 12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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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첫 외부자금이 들어왔다.

엄청난 돈은 아니었다.

대니얼이 처음 상상했던 규모와 비교하면 우스울 정도였다.

그래도 입금내역을 본 순간 손에 땀이 났다.

자기 돈이 아니었다.

이선이 옆에서 말했다.

“이제 느낌 오지?”

“뭐가요?”

“남의 돈 무서운 거.”

대니얼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네.”

“네 돈 손실나면 네가 멍청한 거고 끝이야. 남의 돈 손실나면 설명해야 해.”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표정인데.”

대니얼은 대답 대신 투자자 서한 초안을 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왜 이 포지션을 잡는가.

왜 주택과 신용시장을 위험하게 보는가.

왜 지금 현금을 많이 들고 있는가.

그는 진짜 이유를 쓸 수 없었다.

_앞으로 벌어질 일을 봤기 때문입니다._

대신 현재의 데이터로만 설명해야 했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자기가 아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의 숫자를 다시 쌓아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가설이 더 좋아졌다.

기억에서는 “금융위기” 하나였던 사건이 현재 데이터에서는 수십 개의 별도 문제로 보였다.

지역별 주택가격.

대출 품질.

자금조달 구조.

신용평가.

기관별 노출.

유동성.

이선이 초안을 읽더니 말했다.

“이 부분 빼.”

“왜요?”

“너무 확신해.”

“확신하니까요.”

“투자자는 예언자한테 돈 맡기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떻게 써요?”

“우리가 뭘 보고 있고, 뭐가 틀리면 어떻게 행동할지.”

대니얼은 문장을 지웠다.

Housing credit will deteriorate sharply.

대신 썼다.

If delinquency and funding spreads continue to worsen together, we will increase defensive exposure. If either reverses materially, we will reduce it.

한참 바라봤다.

“약해 보이는데.”

“강한 척하는 문장보다 낫지.”

이선이 말했다.

“그리고 이게 진짜잖아.”

맞았다.

미래는 알아도 이번 세계의 세부 움직임은 모른다.

첫 외부자금이 들어온 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수익률이 아니었다.

전화가 늘었다.

질문도 늘었다.

“이번 달 왜 현금이 이렇게 많습니까?”

“시장 오르는데 왜 더 안 샀습니까?”

“지난번 포지션은 왜 줄였습니까?”

처음에는 대니얼이 직접 다 답했다.

사흘 뒤 이선이 막았다.

“이러다 거래 못 해.”

“투자자 질문인데 답해야죠.”

“그래서 보고서 쓰는 거고.”

“사람마다 궁금한 게 다릅니다.”

“그럼 공통 질문 정리해서 보내.”

대니얼은 불만이었지만 따랐다.

월간 보고서.

주요 리스크.

포지션 변화.

현금비중.

틀린 판단.

특히 마지막 항목에서 매번 손이 느려졌다.

이선은 일부러 빠뜨리지 않았다.

“이거 써.”

“굳이요?”

“굳이.”

“투자자가 싫어할 텐데.”

“틀린 적 없는 사람을 더 싫어해.”

대니얼은 마지못해 적었다.

그런데 다음 달 한 투자자에게서 예상 밖의 답장이 왔다.

실수 자체보다 수정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대니얼은 그 메일을 두 번 읽었다.

신뢰는 완벽함에서 생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오류를 숨기지 않는 방식에서 생길 때가 있었다.

그는 PROJECT 2046의 조직 원칙에 새 줄을 추가했다.

Errors must be visible before they become expensive.

이선이 보고 말했다.

“투자회사 운영원칙에 왜 자꾸 세상 구하는 문장 쓰냐.”

대니얼이 펜을 멈췄다.

“그냥 습관입니다.”

“너 습관 진짜 수상해.”

이번에는 대니얼도 웃었다.

외부자금이 생기자 법률문서도 늘었다.

대니얼은 계약서 두께를 보고 질렸다.

“이걸 다 읽어야 합니까?”

이선이 말했다.

“당연하지.”

“변호사가 있잖아요.”

“그래서 네가 나중에 ‘몰랐다’고 하지 말라고 변호사가 있는 거야.”

대니얼은 결국 전부 읽었다.

수익배분.

해지.

환매.

이해상충.

책임.

투자자별 권리.

한 문장 때문에 회의가 한 시간 넘게 이어지기도 했다.

대니얼은 짜증이 났다.

“이 시간에 시장 보면 더 낫지 않습니까?”

법률자문이 대답했다.

“시장에서는 돈을 잃고 계약서에서는 회사를 잃을 수 있습니다.”

이선이 박수를 쳤다.

“좋은 말.”

대니얼은 못마땅한 얼굴로 메모했다.

나중에 생각하면 이 시기가 중요했다.

세상을 구하려면 과학자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기술이 만들어진 뒤 누가 소유하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어떤 권리로 중단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이 문서로 바뀌어야 현실에서 작동한다.

그때는 아직 행성방어까지 생각을 연결하지 않았다.

그저 계약서가 지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지루한 것들이 시스템을 오래 버티게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투자자에게 매달 보고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첫 투자자 보고회를 마친 뒤 대니얼은 작은 실수를 하나 발견했다.

보고서 표 하나의 계산식이 잘못 연결돼 있었다.

결론이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숫자 몇 개가 소수점 단위로 어긋난 정도.

이선은 말했다.

“다음 달에 고치면 돼.”

대니얼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보내죠.”

“이 정도를?”

“우리가 발견했는데 안 보내면 숨긴 겁니다.”

결국 수정 공지를 보냈다.

투자자 한 명이 답했다.

이런 걸 굳이 알려주는 회사는 처음 봅니다.

대니얼은 그 문장을 오래 봤다.

좋다는 뜻인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음 줄에서 의미가 분명해졌다.

계속 그렇게 해주세요.

그날 대니얼은 보고서 검토절차를 하나 더 만들었다.

자기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다른 사람이 다시 계산한다.

작은 회사에는 번거로운 절차였다.

하지만 작은 실수일 때 잡지 못하면 큰 조직에서는 더 큰 숫자로 번질 것이다.

좋은 달.

나쁜 달.

포지션을 줄인 이유.

늘린 이유.

틀린 판단.

대니얼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신뢰는 수익률만으로 생기지 않았다.

설명 가능한 과정.

일관된 규칙.

그리고 틀렸을 때 인정하는 기록.

몇 달 뒤, 첫 투자자가 추가자금을 제안했다.

대니얼은 바로 받지 않았다.

“왜 또 고민해?”

이선이 물었다.

“운용규모 늘어나면 우리 전략 그대로 안 되잖아요.”

이선이 웃었다.

“이제 좀 금융인 같네.”

“기분 나쁘네요.”

“칭찬이야.”

그들은 전략별로 가능한 자금 규모를 다시 계산했다.

대니얼이 기억하는 미래에는 이런 과정이 없었다.

첫 삶에서 금융시장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이번 삶에서 처음 배우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첫 분기 말, 투자자들과 직접 회의를 열었다.

대니얼은 예상보다 긴장했다.

돈을 벌었는데 왜 긴장하는지 스스로도 이상했다.

한 투자자가 물었다.

“앞으로 더 큰 자금을 받을 생각입니까?”

대니얼은 바로 그렇다고 하지 않았다.

“받을 수 있는 규모와 받아야 하는 규모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선이 옆에서 아주 작게 웃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시장 전망.

리스크.

현금.

어느 누구도 2046년을 묻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런데 대니얼은 회의가 끝난 뒤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현재의 질문에 현재의 답만 해도 되는 시간.

그것도 하나의 정상적인 삶이었다.

모든 것을 기억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사람이 되고 있다는 것.

그날 저녁, 로라가 식탁에서 물었다.

“요즘 일은 어때?”

“괜찮아요.”

“돈 많이 벌었니?”

“아직요.”

토머스가 말했다.

“그런데 표정은 회사 사장 같네.”

“사장은 아니에요.”

“그럼?”

대니얼은 잠깐 생각했다.

“남의 돈 조금 맡고 있어요.”

로라의 표정이 바로 진지해졌다.

“그럼 더 조심해야겠네.”

“네.”

“사람 돈은 사람 시간이라고 생각해.”

대니얼이 고개를 들었다.

로라는 아무렇지 않게 샐러드를 덜고 있었다.

“돈 모으려고 일한 시간이 들어 있는 거잖아.”

대니얼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 시간.

그에게 돈은 미래를 앞당길 시간이었다.

투자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방향이 달랐다.

그날 밤 그는 투자자 서한 마지막 줄을 고쳤다.

We treat capital as stored time.

이선에게 보내려다 멈췄다.

너무 철학적이었다.

삭제했다.

대신 자기 노트에만 남겼다.

Money is stored time. Don't waste ei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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