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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1화 — 남의 돈

14,610일 · 11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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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습니다.”

대니얼은 예상보다 빨리 대답했다.

이선이 옆에서 눈을 감았다.

맞은편의 중년 남자가 천천히 서류를 덮었다.

“내가 금액을 잘못 말했나?”

“아뇨.”

“백만 달러를 맡기겠다고 했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싫다?”

대니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대니얼과 이선이 굴린 돈은 전부 자기 자본이었다.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손실이 날 때 어떻게 줄였는지가 눈에 띄었다.

그 기록을 본 몇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오늘 만난 남자는 그중 가장 돈이 많았다.

문제는 조건이었다.

그는 높은 수익을 원했다.

정확히는, 대니얼이 가장 확신하는 거래에 돈을 몰아넣길 원했다.

“왜?”

남자가 물었다.

“자네는 큰 위기가 온다고 보는 거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크게 걸어야지.”

“그럴 수 없습니다.”

“확신이 없나?”

대니얼은 잠깐 생각했다.

“방향에는 있습니다.”

“그런데?”

“시점에는 없습니다.”

남자가 웃었다.

“투자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아니군.”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선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대니얼은 계속 말했다.

“저희는 중간 변동성을 버틸 구조로 움직입니다. 손실 한도도 정해놨고요. 맡겨주신 돈이라고 해서 그 규칙을 깨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내가 왜 자네한테 맡기지?”

“안 맡기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이선이 대니얼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아팠다.

대니얼은 표정을 유지했다.

남자는 몇 초 동안 그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브룩스.”

“네.”

“얘 원래 이래?”

이선이 한숨을 쉬었다.

“요즘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게?”

“처음엔 더 심했습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지.”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이선이 바로 말했다.

“미쳤냐?”

“조건이 안 맞잖아요.”

“백만 달러였어.”

“그래서 더 위험하죠.”

“말을 좀 부드럽게 할 수는 없었어?”

대니얼이 정강이를 문질렀다.

“발로 차는 것도 부드럽진 않았는데요.”

“그건 교육.”

이선은 서류를 다시 펼쳤다.

“그래도 거절은 맞아.”

대니얼이 눈을 들었다.

“맞다고요?”

“돈이 크면 실수도 커져. 저 사람은 우리가 원하는 구조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도박을 하려는 거야.”

“그럼 왜 화냈어요?”

“거절을 사람 기분 나쁘게 했잖아.”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그 부분은 인정했다.

첫 번째 투자자와의 미팅이 끝난 뒤 이선은 바로 다음 약속을 잡지 않았다.

대니얼을 근처 식당으로 끌고 갔다.

“밥부터.”

“다음 미팅 있잖아요.”

“한 시간 뒤.”

“자료 다시 봐야죠.”

“네가 봐야 할 건 자료가 아니고 말하는 법이야.”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이선이 메뉴를 내려놓았다.

“넌 틀린 말은 거의 안 해.”

“좋은 거 아닙니까?”

“사람 상대할 때는 꼭 그렇진 않아.”

“왜요?”

“상대가 왜 그 조건을 원하는지 안 봤잖아.”

대니얼은 잠깐 생각했다.

“높은 수익을 원해서.”

“그것도 맞지. 그런데 저 사람은 이미 크게 잃어봤어.”

“어디서요?”

“작년에.”

이선은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빨리 만회하고 싶은 거야. 네가 거절한 건 맞아. 근데 네가 그 사람한테 ‘당신 조건은 틀렸습니다’라고 말한 건 아니지.”

“그렇게 들렸습니까?”

“응.”

대니얼은 물컵을 돌렸다.

자기는 숫자를 보고 있었다.

상대는 실패 후의 조급함을 들고 왔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자신과 닮았다.

“다음엔 다르게 하죠.”

“뭐가?”

“조건부터 거절하지 말고 이유부터 묻겠습니다.”

이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투자받는 것보다 중요할 수도 있어.”

대니얼은 웃었다.

“이선이 사람 얘기까지 하네요.”

“너보다는 낫다.”

둘은 웃었다.

한 시간 뒤 만난 두 번째 투자자는 훨씬 덜 화려했다.

질문은 느렸고, 돈도 적었다.

대신 모든 답을 메모했다.

“이 전략이 실패하는 경우를 세 가지 말해보세요.”

다음 주, 첫 번째 남자가 다시 연락해왔다.

대니얼은 거절당한 줄 알았다.

이번에는 남자가 먼저 말했다.

“조건 바꿨네.”

“어떻게요?”

“한 번에 크게 넣는 건 안 하겠어. 반만.”

이선이 대니얼을 봤다.

남자는 계속했다.

“대신 자네가 왜 그렇게 확신하면서도 레버리지는 줄이는지 설명해.”

대니얼은 잠깐 웃었다.

이 질문은 마음에 들었다.

“제가 맞아도 중간에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하면서 죽는다는 말을 자주 쓰는군.”

“버티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같은 뜻이니까요.”

남자는 한동안 듣고 있었다.

이번 대화에서는 수익률보다 실패조건을 더 많이 물었다.

어떤 상황이면 포지션을 접는지.

어떤 데이터가 나오면 자기 가설을 버리는지.

투자자가 중간에 돈이 필요하면 어떻게 되는지.

대니얼은 아는 만큼만 답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뒤 이선이 말했다.

“아까보단 낫네.”

“뭐가요?”

“사람 말투.”

대니얼이 웃었다.

“투자는요?”

“아직 몰라.”

며칠 뒤 남자는 실제로 작은 금액을 넣었다.

처음 제안의 절반보다도 적었다.

그런데 대니얼은 이상하게 만족했다.

큰돈을 얻은 게 아니라, 잘못된 조건을 고쳐서 들어온 돈이었다.

그 차이가 중요했다.

대니얼이 첫 번째를 말했다.

이선이 두 번째.

둘이 세 번째를 놓고 잠깐 논쟁했다.

투자자는 그 장면을 보고 오히려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의견이 다르네요.”

“자주 다릅니다.”

이선이 말했다.

“좋습니다.”

“좋다고요?”

“한 사람이 모든 걸 맞다고 믿는 팀보다 낫죠.”

대니얼은 그 말을 기억했다.

투자자의 돈보다 더 중요한 평가 같았다.

오후에는 두 번째 잠재 투자자를 만났다.

이번에는 반대였다.

돈은 적었다.

조건은 훨씬 까다로웠다.

중년 여성은 첫 질문부터 수익률을 묻지 않았다.

“최대 손실은?”

이선이 답했다.

“현재 기준으로—”

“예상이 아니라 실제.”

그녀가 잘랐다.

이선이 실제 거래기록을 보여줬다.

“이 손실 때 왜 포지션을 줄였죠?”

대니얼이 말했다.

“저희 가정이 틀렸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결국 올랐는데.”

“그건 결과고요.”

그녀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그럼 다시 같은 상황이면?”

두 번째 투자자를 보낸 뒤 이선은 대니얼에게 메모장을 건넸다.

“다음부터 투자자 평가표 만들어.”

“우리가 평가한다고요?”

“당연하지. 돈 준다고 다 받냐?”

대니얼은 항목을 적었다.

자금의 성격.

예상 투자기간.

손실 감내도.

개입 성향.

유동성 필요.

이선이 마지막 항목을 추가했다.

Can we say no to them?

대니얼이 물었다.

“이게 왜 중요하죠?”

“돈 받는 순간부터 네가 그 사람 눈치만 보면 끝이니까.”

대니얼은 한참 그 문장을 봤다.

좋은 자본은 단순히 싼 자본이 아니었다.

자기 판단을 망가뜨리지 않는 자본.

그 기준은 훗날 회사 투자자를 고를 때도 반복될 것이다.

“같이 줄일 겁니다.”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버티는 사람은 돈 맡길 수 없어요.”

대니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자기 돈은 얼마나 같이 넣을 거죠?”

이선이 대니얼을 봤다.

대니얼이 숫자를 말했다.

생활비와 비상현금을 뺀 대부분.

여성은 서류를 덮었다.

“좋아요.”

이번에는 대니얼이 놀랐다.

“맡기시겠다고요?”

“아직.”

그녀가 말했다.

“한 달 더 봅니다.”

이선이 웃었다.

“정상이시네요.”

여성도 웃었다.

“그래야 돈이 남죠.”

회의가 끝난 뒤 둘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선이 말했다.

“오늘 배운 거.”

대니얼이 대답했다.

“돈 많은 사람이 좋은 투자자는 아니다.”

“하나 더.”

“거절도 예의 있게.”

“그게 더 중요해.”

대니얼은 거리 건너편 전광판의 시장지수를 봤다.

숫자는 평온했다.

그러나 신용시장의 안쪽에서는 작은 균열들이 계속 번지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만졌다.

한 달.

투자자는 한 달 더 보겠다고 했다.

대니얼에게 한 달은 길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재촉하지 않았다.

신뢰도 자본이었다.

그리고 신뢰는 돈처럼 한 번에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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