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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5화 — 첫 손실

14,610일 · 5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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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은 돈을 벌기 전에 잃는 법부터 배웠다.

첫 본격 포지션은 자신 있었다.

장기 흐름.

산업구조.

현재 재무상태.

이번에는 기억만 믿지 않고 자료도 봤다.

그래도 틀렸다.

정확히는 방향보다 시점이 틀렸다.

첫날 소폭 상승.

둘째 날 추가 상승.

셋째 날부터 하락.

닷새째 손실률이 두 자릿수를 넘었다.

그는 화면을 보며 손절 기준을 다시 계산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반등할 것 같다.

미래에는 결국 오른다.

그 생각이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문제는 돈만이 아니었다.

손절하면 생활비가 줄어든다.

학교를 마친 뒤 소득 없이 버틸 수 있는 기간도 짧아진다.

창업을 시도할 수 있는 선택권도 줄어든다.

그날 우편함에는 항공우주 회사의 정식 제안서가 와 있었다.

연봉.

보험.

이주지원.

첫 삶의 스물네 살짜리 대니얼이라면 크게 기뻐했을 조건.

지금은 그 종이가 안전망처럼 보였다.

안전망.

그 단어가 싫었다.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더 싫었다.

모니터의 손실률이 미리 정한 선을 넘었다.

대니얼은 매도했다.

손실 확정.

“젠장.”

의자를 밀고 일어나 방을 한 바퀴 돌았다.

다시 앉았다.

노트를 폈다.

Trade #2

Thesis: plausible

Timing: wrong

Loss: contained

Rule followed: yes

마지막 줄에서 한참 멈췄다.

돈을 잃었는데 잘했다고 적는 건 이상했다.

그래도 맞았다.

살아남았다.

다시 할 수 있다.

그 아래 썼다.

Survival > being right.

저녁 식사에서 로라가 제안서를 물었다.

“답은 했니?”

“아직요.”

“왜?”

“조금 더 생각하려고요.”

토머스가 말했다.

“돈 잃었다며.”

대니얼의 포크가 멈췄다.

“누가 말했어요?”

“네 엄마가 네 표정 보면 다 안다.”

로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나?”

대니얼이 대략적인 금액을 말했다.

둘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토머스가 말했다.

“전부는 아니지?”

“아니에요.”

“그럼 됐네.”

“됐다고요?”

“배웠으면.”

대니얼이 웃었다.

“요즘 다들 같은 말 하네요.”

로라가 물었다.

“취업하면서 투자하면 안 돼?”

정상적인 제안이었다.

대니얼은 잠깐 생각했다.

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월급을 받고, 투자하고, 경험을 쌓고.

문제는 속도였다.

하지만 이번 손실은 반대쪽 위험도 보여줬다.

너무 빨리 뛰다가 넘어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

“아직 결정 못 했어요.”

로라가 말했다.

“결정 못 했으면 못 했다고 해. 이미 답 정해놓고 우리한테 허락받으려고 하지 말고.”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정확했다.

그는 이미 마음 한구석에서 취업을 거절하고 있었다.

손실 이후 며칠 동안 대니얼은 생활비까지 다시 계산했다.

부모 집에 머무는 동안은 지출이 적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부모에게 기대며 세계를 구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보험.

교통.

세금.

장비.

데이터 서비스.

몇 달 뒤 별도 사무실을 얻는 비용.

사소해 보이는 숫자들이 모이면 생각보다 컸다.

그는 처음으로 ‘런웨이’라는 말을 자기 삶에도 적용했다.

현재 현금으로 몇 달 버틸 수 있는가.

수입이 0이면?

투자에서 추가 손실이 나면?

가족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면?

대니얼은 생활비 계좌를 별도로 떼어냈다.

투자자금과 절대 섞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규칙을 써 벽에 붙였다.

1. Never risk living expenses.

2. No leverage without defined exit.

3. A future memory is not evidence.

4. If the thesis changes, exit.

토머스가 방에 들어왔다가 그 종이를 봤다.

“도박 끊는 사람 규칙 같다.”

“투자 규칙이에요.”

“차이가 크냐?”

“크죠.”

“돈 잃으면 둘 다 기분 나쁜 건 똑같고.”

대니얼은 웃었다.

“그건 맞네요.”

토머스가 제안서를 가리켰다.

“회사 답은?”

“며칠만 더.”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엄마랑 말이 다르네요.”

“네 엄마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토머스는 문을 나가다 말고 돌아봤다.

“다만 네가 급하다고 해서 우리가 다 같이 급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대니얼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도 맞았다.

자기에게는 2046년이 기억이었다.

부모에게는 오지도 않은 미래였다.

그 차이를 잊으면 안 됐다.

다음날.

대니얼은 회사에 답장을 보냈다.

즉시 거절하지 않았다.

답변기한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계좌를 세 구역으로 나눴다.

생활비.

며칠 뒤 손실 난 종목은 반등했다.

대니얼이 매도한 가격을 넘었다.

그는 화면을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만약 버텼다면 손실을 회복했을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렸다면 오히려 수익이 났을 수도 있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 순간 자기 규칙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알았다.

결과가 좋으면 잘못된 결정도 옳아 보인다.

대니얼은 거래일지를 다시 열었다.

Was the exit wrong?

한참 생각한 뒤 썼다.

No.

그리고 다음 줄.

A bad process can produce a good outcome.

2046년의 마지막 임무도 반대였다.

좋은 과정이 항상 좋은 결과를 주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뿐이었다.

그날부터 대니얼은 손실보다 규칙 위반을 더 심각하게 기록하기로 했다.

장기자금.

기회자금.

마지막에 별도 계정.

DO NOT TOUCH.

비상현금.

그걸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2046년에 필요했던 건 영웅적인 한 번의 도박이 아니었다.

수십 년을 버틸 시스템이었다.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PROJECT 2046에 한 줄을 추가했다.

No single point of failure.

잠깐 생각한 뒤.

applies to me too.

그날 밤 대니얼은 일부러 계좌를 닫고 현금봉투를 하나 꺼냈다.

졸업 전부터 모아둔 비상금.

지갑 속 카드.

은행잔고.

모든 걸 종이에 적었다.

너무 구식이라 웃겼다.

2046년에는 자산상태를 실시간 통합해서 보는 게 당연했다.

2006년에는 계좌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생활비를 월 단위로 계산했다.

기름값.

보험.

전화.

식비.

학교 관련 비용.

부모 집에 머문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보조인지 처음으로 숫자로 봤다.

다음날 아침, 로라에게 말했다.

“집에 있는 동안 생활비 일부 낼게요.”

로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취업도 안 했으면서?”

“투자로 조금 벌어요.”

“조금 벌어서 집세부터 내겠다고?”

“그게 맞잖아요.”

“지금은 모아.”

“그래도.”

“대니.”

로라는 단호했다.

“네가 여기 있는 건 투자가 아니야.”

대니얼이 웃었다.

“엄마도 투자용어 쓰네요.”

“네가 맨날 하니까.”

결국 큰돈은 받지 않았다.

대신 대니얼이 장을 보고, 공과금 일부를 맡기로 했다.

작은 합의였다.

그런데 그 합의가 이상하게 중요했다.

세상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주변 사람의 자원을 공짜처럼 쓰지 않는다.

그 원칙도 처음부터 필요했다.

다음 거래를 열기 전에는 일부러 하루를 기다렸다.

시장 때문이 아니라 자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지나도 같은 판단이면 들어간다.

처음에는 그 하루가 낭비처럼 느껴졌다.

막상 해보니 반대였다.

충동과 판단을 구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였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친구의 문자.

금융 쪽 사람 알아본다 했지?

아는 선배 하나 있음. 파생 쪽.

이름 Ethan Brooks. 성격은 별로래.

대니얼이 문자를 두 번 읽었다.

미래기억에 없는 이름.

그래서 좋았다.

현재에서 만나야 할 사람.

그가 답했다.

소개해줘.

그날 대니얼은 거래 화면을 평소보다 일찍 껐다. 이기는 법보다 오래 남아 있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END OF CHAP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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