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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3화 — 기억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14,610일 · 3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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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의 첫 확신은 사흘 만에 깨졌다.

그는 한 기술주의 상승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첫 삶에서 그 회사는 2000년대 후반 컴퓨팅 산업 변화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됐다. 대니얼의 기억 속에서는 이 시기부터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는 계좌를 열었다.

전 재산을 넣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적지 않은 비중이었다.

주문.

첫날 소폭 상승.

둘째 날 추가 상승.

대니얼은 자신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셋째 날 하락.

넷째 날 더 큰 하락.

다섯째 날 장중 손실률 11퍼센트.

모니터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_곧 오른다._

그 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기억?

분석?

아니면 단순한 자존심?

그는 미리 적어둔 손절 기준을 봤다.

거의 닿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반등할 수 있다.

미래에는 분명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이 그 시점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대니얼은 매도 버튼을 눌렀다.

손실 확정.

계좌 잔고가 줄었다.

“젠장.”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기가 가진 가장 편리한 무기가 생각보다 훨씬 둔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지도교수와 면담이 있었다.

교수는 대니얼의 이력서를 내려놓았다.

“회사에서 답 기다린다더군.”

“알고 있습니다.”

“좋은 자리야.”

“네.”

“그런데 왜 망설이지?”

대니얼은 준비한 답이 없었다.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사?”

“아닙니다.”

“창업?”

“그럴 수도 있고요.”

교수가 안경을 벗었다.

“무엇을 만들 건데?”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고성능 컴퓨팅.

자동화.

에너지.

우주수송.

행성방어.

이걸 그대로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이 맞았다.

“아직 정리 중입니다.”

“그럼 회사를 먼저 가.”

대니얼이 고개를 들었다.

교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창업을 아이디어로 한다고 생각하지. 실제로는 능력과 사람과 돈으로 해. 넌 지금 셋 다 부족해.”

정확해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뭐?”

대니얼은 말을 삼켰다.

교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요즘 자꾸 시간 얘기를 한다더군.”

“제가요?”

“연구실 애들이 그러더라. 마치 마감이 정해진 사람 같다고.”

대니얼은 웃으려다 말았다.

교수는 다시 이력서를 밀었다.

“급한 사람일수록 한 번 더 확인해. 좋은 엔지니어가 되는 건 실패가 아니야.”

면담이 끝났다.

대니얼은 캠퍼스 벤치에 앉았다.

주식 손실.

교수의 말.

둘 다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방향이 맞아도 시점이 틀릴 수 있다.

큰 목표가 맞아도 현재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날 연구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대니얼은 오래된 시뮬레이션 코드를 하나 고치다가, 첫 삶에서 익숙하게 쓰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

문제는 라이브러리가 없었다.

도구도 없었다.

컴퓨팅 자원도 달랐다.

후배가 옆에서 말했다.

“그 방식이면 우리 서버에서 밤새 걸릴 것 같은데요.”

대니얼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이 정도 모델이?”

후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라뇨?”

대니얼은 입을 다물었다.

자기 기준이 틀린 게 아니었다.

시대가 달랐다.

그는 결국 모델을 단순화했다. 정확도를 조금 포기하고, 현재 장비에서 의미 있는 시간 안에 계산이 끝나게 했다.

결과가 나왔을 때 대니얼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2046년의 방법을 억지로 이식한 게 아니라, 2006년의 조건 안에서 답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점심때 연구실 동료가 물었다.

“취업 안 간다며?”

“아직 결정 안 했어.”

“교수님은 네가 창업병 걸렸다고 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고.”

“뭘 만들 건데?”

대니얼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연구가 빨라지는 걸.”

“소프트웨어?”

“그것도.”

“하드웨어?”

“그것도.”

“대체 뭐야.”

대니얼도 웃었다.

“나도 지금 정리 중이야.”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자기가 원하는 끝은 알았다.

하지만 그 끝까지 가는 길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오후에는 취업제안서의 예상 첫해 소득을 계산했다. 세금, 생활비, 저축.

안정적으로 몇 년 일하면 어느 정도 종잣돈은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별도 종이에 썼다.

Safe path: slower, high survival

Independent path: faster potential, high failure

둘 중 어느 쪽이 인류에게 더 유리한가.

그 질문은 아직 숫자로 풀 수 없었다.

그래서 대니얼은 당장 취업을 거절하지 않았다.

자기가 조급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대편 선택지를 태워버리는 것도 또 하나의 도박이었다.

그는 노트를 폈다.

Memory is not data.

그 아래.

Do not confuse knowing the future with understanding the present.

며칠 뒤 교수는 대니얼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논문 초안 때문이었다.

“여기.”

교수가 빨간 펜으로 표시한 부분을 보여줬다.

“너 예전보다 결론을 너무 빨리 내린다.”

대니얼이 문장을 읽었다.

해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증거보다 한 발 먼저 가 있었다.

“데이터는 여기까지야.”

교수가 말했다.

“그다음 문장은 네 믿음이고.”

그 말이 또 금융거래와 겹쳤다.

대니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치겠습니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교수가 펜을 내려놓았다.

“좋은 연구자는 빨리 답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럼요?”

“틀릴 여지를 남기는 사람이지.”

대니얼은 조용히 웃었다.

“요즘 그런 말만 듣네요.”

“그럼 주변 사람들이 다 같은 문제를 본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연구실을 나온 뒤 그는 PROJECT 2046 메모에도 같은 원칙을 옮겼다.

Evidence first. Memory second.

쓰고 한참 바라봤다.

2046년의 자신은 이 문장을 너무 늦게 배웠다.

첫 삶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은 모든 결정이 시간압박 속에서 이뤄졌다. 불완전한 데이터를 가지고 결론을 내려야 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확신을 키우는 데 쓸 게 아니라 검증을 늘리는 데 써야 했다.

저녁에는 첫 손실 거래를 다시 처음부터 재현했다.

진입 근거.

뉴스.

공시.

당시 밸류에이션.

그리고 자신이 왜 ‘지금’이라고 생각했는지.

마지막 항목에서는 펜이 멈췄다.

근거가 없었다.

그냥 기억 속 장면과 현재를 겹쳐놓았을 뿐이었다.

대니얼은 해당 줄 옆에 크게 썼다.

TIMING WAS INVENTED.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확했다.

기억의 빈칸을 자기 확신이 메웠다.

그게 가장 위험했다.

그날부터 그는 거래일지에 반드시 한 항목을 추가했다.

What would prove me wrong?

처음에는 답을 쓰는 게 어려웠다.

자기 주장에 반대되는 조건을 스스로 적는 일이 생각보다 불편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자 조금씩 익숙해졌다.

미래를 아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확신을 깨뜨릴 장치일지도 몰랐다.

집에 돌아오니 토머스가 차고에서 오래된 잔디깎이 엔진을 분해하고 있었다.

“렌치.”

대니얼이 맞는 규격을 건넸다.

토머스가 말했다.

“여기 뭐가 문제 같아?”

대니얼이 잠깐 보고 답했다.

“연료계통.”

“왜?”

“증상이…”

분해해보니 아니었다.

점화 쪽이었다.

토머스가 웃었다.

“아는 척하지 말고 봐. 기계는 네 자존심 신경 안 써.”

대니얼도 웃었다.

“오늘 그런 말 많이 듣네요.”

“그럼 네가 문제겠지.”

몇 시간 뒤 엔진이 다시 돌아갔다.

토머스가 손을 닦으며 말했다.

“고장난 건 미래를 예측한다고 고치는 게 아냐. 어디가 막혔는지 찾는 거지.”

대니얼이 아버지를 봤다.

토머스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날 밤, 대니얼은 기술로드맵을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미래 제품 이름을 적지 않았다.

질문을 적었다.

Why can't this exist now?

AI.

왜 지금 안 되는가.

컴퓨팅.

데이터.

전력.

알고리즘.

우주산업.

왜 지금 비싼가.

발사체.

추진.

소재.

생산량.

수요.

행성방어.

왜 지금 불가능한가.

관측.

발사량.

궤도 인프라.

동력.

국제 권한.

질문을 바꾸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정답을 외우는 것보다 이게 중요했다.

병목을 찾는 것.

그게 자신이 원래 잘하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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