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ory Box
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2화 — 살아 있는 사람들

14,610일 · 2 / 287약 8분0자
지난 화 끝부분 다시 보기

어머니는 늙지 않았다.

대니얼은 식탁 건너편에 앉은 로라 머서를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결국 들켰다.

“내 얼굴에 뭐 묻었니?”

“아뇨.”

“그런데 왜 그렇게 봐?”

그는 포크 끝으로 스크램블에그를 건드렸다.

“그냥… 오랜만이라서요.”

옆에서 신문을 넘기던 토머스가 고개를 들었다.

“어젯밤에도 봤는데?”

“그러게요.”

둘은 웃었다.

대니얼만 웃지 못했다.

첫 삶에서 아버지는 오래전에 죽었다. 병원 침대에서 가족이 손을 잡고 작별할 수 있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2046년 마지막 날과 비교하면 그 죽음들은 잔인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대니.”

로라가 물었다.

“정말 괜찮니?”

“네.”

토머스가 신문을 접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대니얼은 물을 마셨다.

_두 분 다 죽었어요._

_그리고 나도 죽었습니다._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도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아침을 먹고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갔다.

책상 위의 종이.

D-14,610

대니얼은 뒤집어 놓았다.

먼저 검증해야 했다.

기억도 감정도 증거가 아니었다.

그는 노트 첫 장에 썼다.

VERIFICATION

그리고 자신이 비교적 강하게 기억하는 것들을 적었다.

이번 주 발표될 경제지표의 방향.

며칠 뒤 예정된 기술업계 발표.

지역 스포츠 결과 하나.

대학 연구실에서 곧 생길 작은 인사 변화.

쓰다 보니 손이 느려졌다.

생각보다 기억나는 게 적었다.

당연했다.

2046년에 2006년의 매일을 누가 기억하겠는가.

그가 기억하는 건 굵은 줄기였다.

금융위기.

스마트폰.

클라우드.

GPU.

인공지능.

배터리.

우주산업.

그리고 끝.

캠퍼스로 향하는 길도 이상했다.

도로는 기억보다 좁았고 차들은 낡아 보였다.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카페 앞 학생 몇 명은 노트북 대신 프린트 뭉치를 들고 있었다.

대니얼은 버스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스물네 살.

그 사실은 거울보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더 실감났다.

2046년의 그는 회의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기다렸다. 질문을 하면 분야 책임자가 답했다. 한 번의 결정으로 수천 명의 일정이 바뀌었다.

지금은 학생이었다.

실험실 출입카드 하나가 가진 권한의 거의 전부였다.

연구실에 들어가자 지도교수가 그를 불렀다.

“머서, 잠깐.”

책상 위에는 채용 제안서 사본이 있었다.

“회사에서 다시 연락 왔다.”

“네.”

“추천서는 내가 썼지만, 선택은 네 거야.”

대니얼은 종이를 봤다.

엔진 구조해석.

열관리.

시험평가.

좋은 일이었다.

첫 삶의 자신이라면 이런 종류의 일을 사랑했다.

“교수님.”

“왜.”

“만약 어떤 기술을 이십 년쯤 앞당기고 싶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수가 웃었다.

“먼저 그 기술이 왜 이십 년 뒤에 나오는지 묻겠지.”

“돈이 없어서라면요?”

“돈을 찾고.”

“장비가 없어서라면?”

“장비를 만들고.”

“그 장비 만드는 기술도 없으면?”

교수가 대니얼을 잠깐 바라봤다.

“그때부터 연구가 되는 거지.”

단순한 답이었다.

그러나 대니얼은 그 문장을 오래 생각했다.

미래의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결과가 나올 조건을 앞당긴다.

그날 연구실에서 진행하던 구조해석 하나를 열어봤다. 첫 삶에서는 교육용 예제로도 쓰지 않을 수준의 모델이 계산을 끝내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진행률 막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대니얼은 그것만 보고 십 분을 보냈다.

2046년에는 기다릴 필요도 없던 계산.

이 속도 차이를 마흔 년 동안 몇 번이나 곱해야 하는가.

그때 처음으로 그는 ‘미래 기술을 기억한다’는 말의 허망함을 느꼈다.

기억 속에는 완성품이 있었다.

여기에는 기반이 없었다.

오후에는 캠퍼스로 갔다.

매사추세츠의 사립 공과대학. 대니얼은 기계·항공우주공학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컴퓨터과학 과목을 지나치게 많이 들은 탓에 지도교수에게 “전공을 몇 개나 할 생각이냐”는 말을 듣곤 했다.

연구실 문을 열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가 났다.

금속.

납땜.

오래된 냉각팬.

“머서?”

박사과정 선배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안 올 줄 알았는데.”

“왜요?”

“어제 교수님한테 취업 제안 받은 거 아니야?”

대니얼이 멈칫했다.

기억이 뒤늦게 떠올랐다.

미국 서부의 항공우주 회사.

젊은 엔지니어에게는 훌륭한 자리.

첫 삶에서 그는 결국 다른 경로로 업계에 들어갔지만, 당시 이 제안을 두고 꽤 오래 고민했었다.

“아직 답 안 했어요.”

“나 같으면 바로 간다.”

“그럴 만하죠.”

대니얼은 연구실의 컴퓨터를 켰다.

부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2006년.

컴퓨팅 자원도, 데이터도, 네트워크도 자신이 기억하는 시대와 비교할 수 없었다.

2046년에는 몇 분이면 끝낼 계산이 여기서는 장시간을 요구했다.

그는 손을 멈췄다.

사십 년.

검증은 그날 밤까지 이어졌다.

대니얼은 자신이 기억하는 작은 사건 하나를 일부러 기다렸다.

지역 방송에서 짧게 다뤄졌던 사고.

첫 삶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던 뉴스였다.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밤 열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방송 하단 자막에 사건이 떴다.

지역 고속도로 다중추돌.

대니얼은 리모컨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기억이 맞았다.

기뻐할 수 없는 종류의 확인이었다.

잠시 후 그는 자막에 나온 사망자 수를 봤다.

기억과 달랐다.

자기는 두 명이라고 기억했다.

화면에는 한 명이었다.

“…”

그 차이가 더 중요했다.

기억은 사실이지만 완벽하지 않다.

혹은 첫 삶에서 자기가 기억을 잘못 만든 것이다.

대니얼은 노트에 적었다.

Event: occurred

Details: inconsistent

그리고 빨간 선을 그었다.

Never trade or decide on a single remembered detail.

그 순간 처음으로 무서워졌다.

소행성은 기억이 틀리면 안 되는 사건이었다.

2046년.

날짜.

크기.

궤도.

그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오염된 기억인가.

그 불안 때문에 다음날까지 잠을 설쳤다.

하지만 오히려 필요한 공포였다.

자기 기억을 신앙처럼 믿지 않게 해주는 공포.

갑자기 짧아졌다.

저녁 무렵, 검증 결과가 몇 개 돌아왔다.

지역 경기 결과는 맞았다.

경제지표 방향도 대체로 맞았다.

기술발표는 날짜가 달랐다.

연구실 인사 변화는 기억과 달랐다.

대니얼은 노트에 등급을 만들었다.

A — direct memory

B — strong memory

C — direction only

D — fragment

그리고 마지막.

X — invalidated

아직은 쓰지 않았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다.

자신이 역사를 바꾸기 시작한다면.

집에 돌아오자 로라가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학교 갔다 왔니?”

“네.”

“취업은?”

“아직 생각 중이에요.”

“좋은 자리라며.”

“좋죠.”

“그런데?”

대니얼은 현관에 서서 잠깐 망설였다.

안정적인 엔지니어.

좋은 회사.

좋은 경력.

십 년 뒤에는 업계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누군가의 프로젝트에 들어가서는 세상의 기술순서를 바꿀 수 없다.

“조금 다른 걸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로라가 책을 덮었다.

“무슨 일?”

“아직 모르겠어요.”

“모르는데 기존 길을 버리려고?”

정확한 질문이었다.

대니얼은 웃었다.

“그래서 아직 안 버렸어요.”

방으로 올라간 그는 종이를 다시 뒤집었다.

D-14,610

하루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곧 14,609가 된다.

그는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Knowing what happens is not enough.

I need the ability to change what happens.

그 능력을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돈.

기술.

사람.

그리고 권한.

안정적인 엔지니어의 길은 훌륭했다.

너무 훌륭해서 더 무서웠다.

그 길을 가면 자신은 성공할 것이다.

세상은 실패한 채로.

END OF CHAPTER

읽은 화로 기록했습니다. 다음 화는 바로 이어집니다.

다음 화

읽는 흐름을 끊지 않고 바로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읽던 위치를 저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