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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제국
001 / 130LONG-FORM EDITION

ORIGINAL FICTION

제1화 — 11초

14,610일 · 1 / 287약 8분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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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숫자가 하나 줄었다.

00:00:11

대니얼 머서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하 수백 미터의 행성방어 통제실은 세상의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콘크리트, 강철, 충격흡수층, 독립전력, 폐쇄형 공조.

그 설계를 검토한 사람 중 하나가 대니얼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곳이 버틴다고 해서 바깥이 버티는 건 아니었다.

주 화면의 절반은 이미 죽어 있었다. 궤도 관측망 일곱 곳 중 세 곳이 응답하지 않았고, 달 중계망도 십여 분 전부터 신호가 끊겼다.

살아 있는 화면 하나가 지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푸른 행성.

너무 평온해서 잔인했다.

“최종 벡터.”

대니얼이 말했다.

뒤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변화 없습니다.”

“숫자로.”

짧은 침묵.

“충돌 확률 100퍼센트. 대형 파편 세 개. 주 파편 추정 직경 2.1킬로미터. 첫 번째 예상 충돌점은 북태평양, 두 번째는 북미 내륙. 세 번째는—”

“오차범위는?”

“아직 큽니다.”

00:00:08

여덟 초.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대니얼은 물었다.

“마지막 편향체는?”

“통신 두절입니다.”

“언제?”

“4분 12초 전.”

“추진계 데이터.”

“없습니다.”

옆자리의 젊은 엔지니어가 입술을 깨물었다.

“닥터 머서.”

대니얼이 돌아봤다.

그의 얼굴은 새하얬다.

“끝났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화가 났다.

소행성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돌덩이에게 악의가 있을 리 없다.

누군가의 음모 때문도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계산했고, 엔지니어들은 만들었다. 정부들은 돈을 썼고, 공장들은 밤낮없이 돌아갔다. 수많은 사람이 잠을 줄이고, 가족을 미루고, 자기 분야의 모든 것을 쏟았다.

그런데도 부족했다.

다섯 해.

그들이 실제로 가진 시간은 다섯 해뿐이었다.

대니얼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들이 어디에서 틀렸는지를 세고 있었다.

통제실 왼쪽 벽에는 마지막 일주일의 발사 기록이 남아 있었다. 성공, 실패, 부분 성공. 세 가지 색으로 나뉜 점들이 너무 많아 이제는 그림처럼 보였다.

열여덟 시간 전에는 달 쪽 조립시설에서 마지막 편향체의 연료탱크를 닫았다. 원래라면 석 달이 걸릴 시험을 열흘로 줄였다. 그마저도 완전한 기체는 아니었다.

“5호기는요?”

대니얼이 물었다.

누군가 대답했다.

“지구 저궤도에서 대기 중입니다. 창이 없습니다.”

“6호기.”

“추진제 부족.”

“달 쪽 예인선.”

“도달시간이 모자랍니다.”

무엇을 물어도 답은 비슷했다.

없다.

부족하다.

늦었다.

그것들이 지난 다섯 해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세 단어였다.

한때 전 세계가 돈을 쏟으면 뭐든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돈은 쏟아졌다. 평시라면 수십 년 걸릴 예산이 몇 달 만에 승인됐다.

그래도 공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숙련공은 인쇄할 수 없었다.

원자로는 회의실에서 결재한다고 바로 완성되지 않았다.

발사장은 돈을 태운다고 한 달에 열 배의 로켓을 쏠 수 있는 시설이 아니었다.

대니얼은 그것을 너무 늦게 배웠다.

화면 한쪽에서 지상의 마지막 공개방송이 흘러나왔다. 앵커는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있으십시오.

창문에서 떨어지십시오.

해안 저지대의 대피는 이미—

방송이 끊겼다.

대니얼은 음소거된 화면을 한 번 보고 다시 궤도 데이터로 돌아왔다.

통제실 뒤쪽에서 누군가 작게 말했다.

“가족한테 연락하세요.”

대니얼은 듣지 못한 척했다.

그 말을 들으면 손이 개인 단말로 갈 것 같았다.

아직 계산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계산을 해야 했다.

그게 옳은지는 몰랐다.

그저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대니얼의 머릿속에 숫자들이 튀었다.

발사체 생산량.

궤도 조립능력.

우주용 원자로 출력.

방사선 내성 반도체 생산량.

자동공장 전환속도.

달 연료 생산량.

그리고 가장 싫은 숫자 하나.

62%.

첫 대형 편향임무.

목표 편향량의 62퍼센트.

전 세계가 성공이라고 떠들던 날.

대니얼만 축하하지 않았던 날.

_한 번쯤은 기뻐해도 되잖아요._

그때 한 엔지니어가 물었다.

대니얼은 대답했다.

_궤도가 안 바뀌었는데 뭘 축하해._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십 년.

아니, 이십 년.

그의 콘솔 한쪽에 개인 메모가 떠 있었다.

Earlier detection

Cheap launch

Orbital industry

Autonomous manufacturing

High-density power

AI-assisted R&D

Continuity

맨 아래에는 오늘 적은 마지막 한 줄.

40 years

00:00:03

대니얼은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허탈함에 가까웠다.

“사십 년이면.”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00:00:02

개인 단말 오른쪽 위에 읽지 않은 메시지 세 개가 떠 있었다.

대니얼의 손이 화면으로 갔다.

멈췄다.

00:00:01

읽을 시간이 없었다.

카운터가 0이 됐다.

주 화면이 먼저 새하얗게 포화됐다.

궤도 카메라가 충돌 섬광을 받아낸 것이었다.

0.몇 초 뒤 통신채널들이 한꺼번에 비명을 질렀고, 그 다음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대니얼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아직 지진파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 짧은 틈이 오히려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닥이 솟구쳤다.

천장에서 먼지와 패널이 쏟아졌다. 비상등이 한 번 깜빡이고, 모든 화면이 꺼졌다.

귀를 때리는 굉음.

몸이 의자째 옆으로 내던져졌다.

어둠 속에서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읽지 못한 세 개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대니얼이 숨을 들이켰다.

너무 깊게.

폐가 아팠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천장이 있었다.

방폭 패널이 아니었다.

낡은 회색 페인트.

창문 틈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자동차 경적.

멀리서 개 짖는 소리.

어딘가에서 진공청소기가 돌아가는 소리.

대니얼은 얼어붙었다.

작은 책상.

두꺼운 모니터.

쌓여 있는 공학책.

접이식 의자.

침대 옆 오래된 휴대전화.

그가 그것을 집었다.

손이 떨렸다.

화면을 켰다.

September 17, 2006

대니얼은 침대에서 내려오다 무릎을 부딪쳤다.

아팠다.

그 통증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화장실로 뛰어갔다.

거울.

검은 머리.

깊지 않은 눈가.

턱에 덜 깎인 수염.

스물네 살의 얼굴.

그가 자기 뺨을 만졌다.

“아니.”

목소리도 젊었다.

문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니? 일어났니?”

몸이 굳었다.

그 목소리.

수십 년 동안 듣지 못했던 목소리.

“아침 먹을 거면 내려와.”

대니얼은 입을 열었다.

“엄마?”

“왜?”

너무 평범한 대답.

그게 무너뜨렸다.

십여 분 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두 날짜를 적었다.

2006.09.17

2046.09.17

윤년을 넣어 계산했다.

다시 계산했다.

컴퓨터까지 켜 확인했다.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14,610

문밖에서 로라가 다시 불렀다.

“대니?”

대니얼은 대답하려다 목이 막혔다.

문이 열렸다.

로라는 젊었다.

그 사실 하나가 모든 계산보다 강했다.

첫 삶의 마지막 몇 년, 대니얼은 어머니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봤다. 살아 있을 때의 목소리도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졌다.

지금 그녀가 바로 앞에 있었다.

“너 진짜 괜찮니?”

로라가 다가와 이마에 손을 댔다.

평범한 행동.

대니얼은 몸을 피하지 못했다.

손의 온도까지 기억과 달랐다.

아니.

기억이 너무 오래돼서 비교할 수 없었다.

“열은 없는데.”

“엄마.”

“왜?”

말하고 싶었다.

_다시 봐서 다행이에요._

그런데 그 말을 하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대니얼은 대신 물었다.

“오늘 날짜가 정말 9월 17일 맞죠?”

로라가 표정을 굳혔다.

“병원 갈래?”

그제야 대니얼은 웃었다.

“아뇨.”

“확실해?”

“네.”

“그럼 내려와서 밥부터 먹어.”

문이 닫혔다.

대니얼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14,610일.

숫자만 보고 있으면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문 하나만 열면 사람이 있었다.

그 차이를 잊으면 안 됐다.

대니얼은 종이 한가운데 크게 적었다.

D-14,610

세상이 끝났던 날까지 남은 시간.

그 아래.

DON'T WASTE ONE.

한참 뒤에야 숨을 내쉬었다.

사십 년.

전에는 없었던 시간.

이번에는 있었다.

“이번엔 시간이 있어.”

그 말이 희망인지 선고인지.

그때는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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